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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람 Jun 24. 2024

직감은 끝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상 (上)



"알잖아. 이렇니 저렇니 해도 결국엔 끝이 온다는 것을.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억세게 운이 좋든 나쁘든 마지막은 다가온다는 것을. 그걸 무시한다면 우리는 그 이전과 이후의 삶을 쉽게 상상할 수 없다는 것도 말이야."





  끝을 상상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최근의 일은 아니다. 끝이 난다는 건 이제는 마무리 지을 때가 됐다는 말이고, 무언가의 시작과 끝을 구분짓기 위한 기준선을 만드는 일이다.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기에 그 마지막을 늦출 수록 우리는 더더욱 비참해지고 목적은 희미해질 뿐이다. 


  직감을 직감이라고 믿을 수 있는 순간은 직감을 믿었을 때 좋은 결과가 뒤따라온 순간, 그리고 직감을 믿지 않았을 때 나쁜 결과가 뒤따라온 순간. 딱 두 가지 경우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직감을 직감이라고 신뢰할 수 없다. 살아남기 위해 다년간 쌓아온 인체 속 빅데이터. 그 이름 때문에 생존의 갈림길에 섰을 때 쉽게 믿을 수만은 없는 나침반. 직감의 이름을 바꾼다면 우리는 직감에 온전히 자신을 맡길 수 있을까.










"저 사람과 친구가 될 것만 같아."



  신의 지침이라도 받은 것 마냥, 그 울림 하나만을 믿고 안전한 구역을 벗어나려는 나를 나조차도 막지 못했던 수많은 날들. 끔찍하기만 했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구차한 짓거리들과 서슴없는 감정들, 날이 설 대로 서서 때로는 갈갈이 찢어버리기도 바늘처럼 상처를 기워버리기도 했던 단어들. 피 묻은 낱말들이 다 모여 나를 이룬다는 사실에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던 밤들까지도. 너를 향한 말들은 왜 앞뒤가 똑같아 위기를 모면할 수도 없게 만들어버렸나. 

 


  그런 방황은 처음이었다. 이렇게까지 살가죽을 벗겨낸다고. 이렇게까지 바닥과 천장을 뒤바꿔놓는다고. 쓰레기 같은 자식. 망할 놈. 분해하고 욕을 하면서도 시선은 그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나의 모습에 소름 끼쳐 하면서도 그만 둘 수 없었다. 이 관계는 내가 끝내는 순간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가 되므로. 



 네 이름이 적힌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차가운 차와 더운 공기의 온도차로 인해 컵 겉면을 따라 흐르는 물방울이 그 위로 떨어졌다. 잉크펜으로 적은 네 이름은 번지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나아가기를 그쳤다. 그러니까 여름은, '끝'이라는 단어를 실감하기에 적합한 계절이다. 



  차를 운전할 줄도 알고 마실 줄도 아는 너는 조건없이 뜨거운 사람인 줄 알았지만, 지독하게 차가운 사람이었다. 누구든 쉽게 들일 줄 알면서도 나에게만 유독 매정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미지근해진 관계를 어느 곳에도 두지 못한 채 헤매었다. 그만둬야 하나. 더 나아가라는 신호인가.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리기보다는 나아가기를 택했다. 보이지도 않는 균열을 뚫고 들어가기에 적합한 태도였다.



 쉼 없이 말을 걸었다. '쉼 없이'라는 단어는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너와 가깝다면 가까운 표현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대하는 너와 가까운 단어였다. 쉬지도 않고 가면을 쓰고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느라 자물쇠는 차마 잠그지 못하는 너. 일정한 주기로 말을 걸었다. 대면할 때면 입을 열지 못하니까 비겁하게 뒤에서 말을 거는 나를 견딜 수 없었던 걸까. 그의 앞에서는 입을 잠궈놓은 듯 뻥끗도 하지 않으면서 뒤에서 맥락없이 말을 던지는 나는 나조차도 견딜 수 없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맥락없는 말 속에서 네가 답장을 줄 때까지 나는 무한의 시간 속에서 불편한 감정들을 느꼈다.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벗어난다면, 그렇다면, 알잖아. 어떤 끝이 다가올지. 너는 정확히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지 않고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고 샛길로 빠져나갈 수 있는 말들만 남겼다. 그런 모습조차 나를 닮아서 비참했다. 나의 비겁한 모습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보는 건 참으로 절망적이었다. 



  단순히 선물을 전달할 목적이었다. 초대받고 싶어 만들어낸 구실 따위는 아니었다. 서슴없이 나를 초대한 너는 차를 내왔고, 네가 가장 좋아하는 쿠키를 꺼내왔지. 그리고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드문드문 기억이 나. 마지막에 가서는 나와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폰을 자주 들여다봤던 너도 기억이 나. 그래서 끝내 내가 먼저 끝을 말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들었던 네가 다시 또 미워져. 어김없이 미움은 내 뇌리 어딘가에 자신을 덧칠하고 지워지려 할 때마다 통증을 자아낸다. 내가 더 비참해지길 바라는 만큼. 



 사실 돌이켜보면 네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티는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주파수. 목소리의 높이, 단어가 튀어나오는 빈도수, 문장을 만들어내는 속도, 자연스러운 웃음이 터져나오는 순간들. 너는 네가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럼에도 나는 알아채고 말았다. 커져만 가는 차이를 곁에서 가까이 지켜볼 때마다 나는 곧 터질 풍선처럼 부풀어갔다. 몇 번을 터져도 차이만큼 곧장 부풀어오르고마는 나는 죽을 맛이었다. 나에게 호감이 있어 건넨 말이 아니었다. 그런 말이어야만 했다고 외면하는 내가 강해진 탓이었지. 누구에게든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관심은 없고 적당히 대하고 끝내고 싶은 상대에게 최선으로 할 수 있는 말. 내가 그에게 그런 대상으로 취급당하고 있다는 걸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믿었다. 평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만큼의 호감은 있을 것이라고. 내 마음을 일방적인 집착 따위로 변질시키지 말라고. 



  네가 떠나던 날. 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곁에 함께 하고 싶어 부끄러움 같은 것들은 모르는 척 셋이서 함께 길을 걸었던 그 날. 다른 친구는 반대 방향이라 헤어져야 했던 그 날. 밤공기가 맑았다.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늦었으니까. 너는 네가 싸야 할 짐을 걱정했고, 그래, 그딴 것 때문에 내가 너랑 마트도 갔었지. 그것 때문에 너랑 술도 제대로 못 마시고 이야기는 쥐똥만큼도 못 나눴지. 고백을 가장한 친구로서의 작별인사를 건넸고, 너의 행복과 안녕을 바랐고, 단물이 빠질 때까지 곱씹어댄 너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나열하며 너는 참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너는 똑같은 말을 내게 하며 나보고 꼭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끝까지 겉치레 가득한 인사만 건넸던 거야. 주제 파악도 못하고 하마터면 그것에 눈물이 날 뻔했던 거고. 문이 닫힐 때까지 너는 인사를 건넸지만 나는 문이 닫히고 나서도 그 앞을 떠나지 못했다. 



  십분 서성이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미련을 흩뿌리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초점없이 어딘가를 바라보다 캄캄한 방 안에 홀로 온몸을 구긴 채 침대에 누워 소리내어 눈물을 비수삼아 울던 밤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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