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와 헤세
마흔이 다 되어 갈 무렵 다시 시작된 나의 독서 여정의 출발점은 헤세였다. 유리알 유희를 마지막으로 현대문학에서 출간한 헤세 선집을 모두 읽었을 때 느꼈던 감격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이후 나는 한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어 내려가는 방식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이 되었고, 헤세 다음으로 읽을 작가를 선별했었다. 그러다가 걸린 작가가 도스토옙스키였다. 나는 그 당시 도스토옙스키가 헤세보다 더 어렵고 두꺼운 작품들을 많이 썼다는 사실을 대충 들어 알고 있었는데 바로 그 점이 어떤 도전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대표작이라 부르는 5대 장편만이라도 먼저 읽어 보자고 다짐했었다. '죄와 벌'로 시작해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로 5대 장편을 마쳤을 때 느꼈던 감격 또한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참을 수 없었고 나머지 작품들을 모두 읽어 보기로 작정했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도스토옙스키 전집 읽기가 약 5년 전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3년 차가 되었을 무렵 앞으로 읽을 작품 수보다 읽은 작품 수가 더 많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아쉬운 마음에 아껴 읽으려고 일부러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직도 읽지 않고 남겨 둔 작품 수가 몇 된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 독서모임이 2023년 9월부터 시작되어 이번 달까지 총 열세 작품을 읽었다. 나로서는 그 작품들을 두 번 읽은 셈이다. 한 번도 읽기 힘든 도스토옙스키를 두 번이나 읽다니, 좀처럼 쉽지 않은 이 도전과 실천이 나에게는 성취감은 물론 깊은 만족감을 선사했다. 이제 '미성년'과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만 읽으면 이 독서모임도 끝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이한 경험을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감상문을 선별하고 모아서 책으로 만들 예정이다.
헤세로 시작했던 독서 여정이 도스토옙스키를 두 번 거치고 얼마 전 다시 나는 헤세로 진입했다. '글쓰다짓다' 글쓰기 모임에서 고전문학 읽기에 대한 필요성을 모두가 실감했기 때문에 그것을 충족시키고자 선택한 작가가 헤세였다.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수레바퀴 밑에'를 읽기 시작했다. 다시 읽는 책은 언제나 그것만의 고유한 맛이 있다. 그런데 도스토옙스키를 재독 할 때와 달리 헤세 재독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도스토옙스키를 두 번씩이나 통과한 이후라서 그런 거라 짐작하고 있는데, 뭔가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기분까지 들었던 것이다. 독일철학의 특색과 비슷해서인지 관념적인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졌다. 덕분에 도스토옙스키의 적나라한 현실성이 새삼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수레바퀴 밑에'를 읽는데 이제는 한스 기벤라트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보인다. 그리고 독자로서만이 아니라 작가로서 이 작품을 읽어서 그런지 헤세의 묘사와 서사 기법이 눈에 보인다. 역시 고전문학은 다시 읽어도 여전히 배울 게 있고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어쩌다 보니 도스토옙스키와 헤세를 두 번씩이나 읽게 된 나의 독서 여정. 즐겁다는 말 이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내겐 없다. 함께 읽어나가는 사람들과 함께라서 더욱 즐겁다.
#오블완_티스토리챌린지_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