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되었다는 것
어떤 일이 일상이 되었다는 표현은 그만큼 그 일을 자주 하게 되어 특별히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는 뜻을 나타낸다. 어떤 사람은 그 일이 어느덧 마치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대소변을 보거나 혹은 숨을 쉬는 것처럼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생리적인 것들을 예로 들 만큼 자연스러워지는 건 있을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다분히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것들을 포함한다. 이를테면 설거지, 방 청소, 화장실 청소 같은 행위들 말이다. 즉, 어떤 일이 일상이 되었다는 건 그 일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을 넘어 하기 싫을 때도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다는 뜻을 포함한다. 일상은 일반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대부분은 아무 생각 없이 하게 되거나 하기 싫은데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하는 일들로 구성된다. 일탈의 유혹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취미로 시작했던 어떤 일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꽤 많이 본다. 독서, 글쓰기, 음악 듣기, 운동 등의 활동이 그중 절반 이상을 이룬다. 그러나 그들을 오랜 시간 추적 관찰하면, 그 활동들이 일상이 되었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지경인 경우가 많았다. 단순히 예전에는 전혀 하지 않다가 최근에 그 일을 어쩌다가 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취미가 되었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일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를 굳이 비판할 생각은 없다. 얼마나 그런 일들과 담을 쌓고 살았으면 일주일에 한두 번 하게 된 그 일이 일상이 되었다는 표현까지 사용했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되면 측은한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일상이 되었다는 표현의 방점은 하기 싫을 때에도 그 일을 하기로 작정하고 사수하는 행위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설거지가 일상인 사람은 이게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할 것이다. 하고 싶을 때만 노래를 흥얼거리며 하는 사람과 하기 귀찮을 때에도 묵묵히 그 일을 감당하는 사람의 차이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생각한다. 둘 중 누가 설거지가 일상이 된 사람이겠는가? 여기서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둘 중 누가 더 설거지가 무엇인지 일상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누가 더 설거지 아니 일상에 내공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둘 중 누가 설거지에 대해 한 마디 하면 경청하고 싶은가?
일상은 취미가 아니다. 어떤 일이 일상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애씀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 자기 자신으로 벗어나는 것, 자기 자신이 안전하다 여겼던 환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러면서 자아의 발견, 성찰, 성장, 성숙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정착이 주는 안정감을 내려놓고 떠남에 순종하여 그 길 위에서 나를 찾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다.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모든 여정이 그분의 섭리로 이루어짐을 보고 그분을 더욱 신뢰하게 되는 과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체적이지 못하면 누군가를 신뢰할 수 없다. 신뢰하는 주체 없이 신뢰받을 대상만 존재할 수 없다. 순응적인 인간이 아닌 자발적 순종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주체를 확립하는 것이다. 정체성을 아는 것이라 해도 상관없겠다.)
나는 적어도 밥벌이 이외에 한두 가지 일을 일상으로 만드는 일을 누구나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은 아름다우며 그 길 위에는 수많은 소중한 보물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부디 용기를 내어 그 길을 걷길 바란다. 나를 알고 너를 알고 우리를 알고 세상을 알게 되는 여정을 함께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