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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일휴업 Nov 04. 2021

 연인들의 소울푸드

3일 차 - 금산제면소의 탄탄면과 사람을 달리게 하는 돼지고기튀김

압구정 금산제면소

금산제면소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구의 범어네거리였다. 자주 지나다니는 거리에 새로운 가게가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호기심 많은 남자친구가 먼저 가서 먹어보고는 나를 데려갔다. 탄탄면이라는 다소 생소한 음식이 그곳의 유일한 메뉴였다. 


거기서 나는 탄탄면을 처음 먹었다. 그리고 반했다. 흑식초를 뿌리고 튀긴 양파가 올라간 공깃밥을 비벼 마지막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종종 갔다. 주로 토요일 오전에 남자친구와 함께 갔다. 저녁엔 일찍 문을 닫았고 일요일은 장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다. 해인사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먹었고 수성못 산책을 가기 전에 먹었으며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가기 전에 먹었다. 토요일 오전은 대체로 그런 시간이었다. 권태롭지 않을 정도의 여유가 아직 여유롭게 남아 부드러운 실크 파자마처럼 우리를 감싸주던 시간.




아마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졌던 것 같다. 금산제면소는 문을 닫고 그 자리엔 베트남 음식점이 생겼다. 지금은 그 베트남 음식도 문을 닫고 김밥집이 생겼다. 왜? 나는 도무지 이렇게 맛있는 음식점이 어떻게 망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분노했다. 이상하게 갈 때마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던 건 맞지만 그래도 그렇게 빨리 문을 닫을 줄은 몰랐다. 남자친구는 대구의 물가와 한 그릇에 만 이천 원짜리 면요리에 대한 날카로운 비교분석을 내놓으며 필연적인 결과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난 끄덕이지 않았다. 


어딘가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지 않을까? 있었다. 서울에 두 군데나 있었다. 명동과 압구정에 각각 한 곳씩. 처음 명동을 방문했을 때는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먹었다. 압구정은 늘 한적했다. 후로 서울에 올 때마다 남자친구와 나는 다른 음식점을 찾지 않고 탄탄면을 외치며 그곳으로 향했다. 그보다 맛있는 것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이상하게 우린 줄곧 그곳으로 갔다. 


쌀밥 위의 양파 플래이크를 나에게 덜어주는 남자친구를 보며 문득 소울푸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꼭 어린 시절에 먹은 음식만 소울푸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음식이 단지 음식 이상의 기억과 단단히 결합되면 그것은 먹을 때마다 영혼을 감싸는 역할을 한다. 나란히 앉아 맵싹 한 면을 둘둘 말아 각자의 입에 넣으며 우린 언젠가의 토요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아직 우리에게 남은 토요일이 있다는 사실에 포만감을 느낀다. 




합정 크레이지카츠 

등심돈까스와 감자고로케 두 조각

여자는 떡볶이, 남자는 돈까스. 성별에 따른 식성에 관한 보편적인 명제다. 주변 사람들을 하나하나 대입해 보면 꽤나 맞는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다. 나 같은 예외를 제외한다면.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난 줄곧 돈까스파였다. 심각한 비염 때문에 일 년간 완전 채식을 하던 중에도 한 달에 한 번 돈까스는 먹었다. 일식돈까스도 좋아하고 경양식도 좋아한다. 남자친구도 집에서 직접 돼지고기에 빵가루를 입혀 튀겨먹을 만큼 돈까스에 대해 진지하다. 돈까스는 자연스레 우리 외식의 주요 레퍼토리로 등극했다. 




서울에 왔으니 서울에서 유명한 돈까스를 먹어보자, 해서 찾은 곳은 합정의 크레이지카츠였다. 후기를 읽어보니 테이블링이라는 어플로 웨이팅 등록이 가능하다 했다. 서울숲에서 합정으로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 어플을 깔고 대기를 걸었다. 두 시간 삼십 분 후에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과연 크레이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근처 옷집을 넋 놓고 구경하다 돌연 10분 안에 입장하지 않으면 웨이팅이 취소된다는 카톡을 봤다. 우린 쇼핑몰에서 뛰쳐나왔다. 가게까지 10분 안에 갈 수 있는 걸까? 족저근막염으로 절뚝거리는 남자친구에게 나의 짐을 맡기며 말했다. (비장하게) 자긴 이거 들고 걸어와. 내가 먼저 뛰어갈게. 나는 달렸다. 크레이지 카츠를 향해서. 오랜만의 전력질주였다. 앞머리가 뒤집어지게 달리며 이게 돈까스를 먹기 위한 전력질주라는 걸 생각하면 조금 웃겼다. 다행히 9분 만에 가게에 도착했다. 헉헉거리는 티를 되도록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자리를 안내받았다. 바닥은 온통 기름으로 미끈거렸다. 


After

무사히 먹었고, 맛있었다. 무엇보다 산처럼 쌓여 감질나지 않는 양배추의 물기 없는 신선함이 일품이었다. 고기는 아주 특별하진 않았지만 무난하게 맛있었다. (후에 유튜브를 검색해본 결과 크레이지카츠에서는 특등심을 먹기를 추천한다고 어느 돈까스 마니아께서 말씀하셨다.) 


인상 깊었던 건 음식보다 사람이었다. 저녁 러시가 몇 시간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 듯했는데 그 와중에 서빙을 담당한 직원은 친절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가 잃지 않은 친절의 종류는 아주 특이한 것이었다. 자아라는 걸 포기했을 때 나오는 친절이랄까. 모든 걸 놓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평안함이랄까. 천연덕스러우면서 유쾌한 친절이었다. 나는 정말 너무 힘들지만 너희들은 돈까스를 먹어야 이 자리에서 사라질 테니까 가져다줄게 돈까스. 


서울의 첫 돈까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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