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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나무 Nov 15. 2021

수영이 내게 말한 것.

시월 중순의 일기.



4천 원을 들고 1년 만에 수영장을 방문했다. 2시간 자유 수영 이용권, 성인 여성 4300원.   

안 입은 지 너무 오래되어 늘어질 대로 늘어진 수영복을 대충 입고, 수경을 끼고, 나는 천천히 물속을 걸었다.

아, 1년 만이라니. 수영을 그렇게 좋아하는 내가. 얼마나 반가웠으면 드넓은 레인 안으로 젖은 발을 내딛을 때부터 가슴이 시원해지는 게 아닌가.


'오랜만에 오니까 더 좋네. 이럴 줄 알았어.'
  

나는 준비운동을 대충하고 바로 수영을 했다. 첨벙첨벙.

오랜만의 발차기. 어쩐지 불안정한 호흡. 어언 1년 만에 수영이니 그럴만하지.  

신기하게도 몸은 참 정직하여서 (수영을 배운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나 보다.) 약간의 적응을 거치고 나니, 자연스럽게 물속을 휘 - 젓고 다녔다.    

10분, 20분, 그렇게 40분. 조금만 더, 55분.

나는 물이 좋다 아니 물속에 있는 게 좋다. 수영이 좋다.  레인을 돌고 난 후의 거친 호흡이 좋고, 레인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뿌연 수경을 닦을 때도 좋고, 수영장 바닥에 보이는 반짝이는 빛의 흐름도 좋다.

내 나름대로의 약속을 정해놓고 될 때까지 해보는 연습도 좋다. 가령,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레인 한쪽에서 반대쪽까지 가는 그런 연습들.


지구력이 뛰어나진 않아 늘 레인 중간 즘에 하던 동작을 멈추곤 했다. 그럴 때면 나 자신을 채근하기 바빴는데 오늘은 생각이 좀 달랐다.


'중간에 멈출 수도 있지 뭐. 포기만 하지 말자.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힘을 빼고 살살 가보는 거야.'


이것 봐라, 힘을 빼고 살살 움직이니, 나 자신과의 싸움 같던 레인 반 바퀴가 수월하게 가지는 게 아닌가.

벽에 도착해 숨을 고르며 나는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한꺼번에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굴면서 애쓰지 말자.

너무 힘주지 말고, 지금 내가 쥘 수 있는 힘으로 천천히 해보자.

그러면 중간에 너무 힘들고, 너무 숨이 가빠서 멈추지 않을 수가 있어.  
아니 힘들어서, 숨이 가빠서 멈추면 어때. 다시 숨을 고르고 가면 되지.

내가 간 수영장은 레인의 2분의 1 지점을 기점으로 수심이 2미터 이상으로 깊어진다. 이곳은 약간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발이 닿지 않는다는 두려움이 나를 찾아오기 때문. 중간에 호흡이 잘 안되면 어떡하지. 너무 힘들어도 멈출 수가 없잖아.

그래, 그런 곳이라면 더더욱 힘을 빼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보다 다른 것에 내 감각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두렵다. 언제 다와 가지? 한참 남았다. 힘든데.'
 

이런 생각을 지워야 호흡의 리듬이 망가지지 않는 것이다. 쓸데없는 두려움을 지워버리고 후, 하, 손의 움직임과 발차기의 감각에 더 집중해보는 것이다.

후, 하, 후, 하, 안정적인 리듬이 계속되도록.
 

한참 동안 레인을 왔다 갔다 하니 몸이 많이 풀렸다. 그러고 나니 수심의 두려움도 어느새 사라지고, 팔과 다리를 움직일 때 불필요하게 많이 들어가는 힘들도 조금씩 사라졌다. 이제야 더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 즐기는 건 처음부터 오는 게 아니지.  


내 힘과 속도에 맞춰, 조급함이나 두려움엔 집중하지 않고,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천천히 나아가는 것.

그렇게 계속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수영을 즐기게 되는 것처럼.
  

지난 1년간 준비했던 영국의 대학원이 붙었고, 가을이 시작되는 10월부터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되었다. 돈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첫 학기는 한국에서 듣고 있는데 아, 이 여정, 참 쉽지가 않다.


몰아치는 공부량, 영어와의 싸움, 아직 하고 있는 일과 비자 준비, 이곳에서의 정리.

모든 것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아 여유가 마음에 잘 써지지 않는 요즘.

균형을 잃고 싶지 않아서, 아니 실은 다 잘해보고 싶어서, 수영을 갔는데 오히려 수영은 이렇게 말했다.

 

‘다 잘해야겠다는 마음은 애쓴다는 거야. 그 마음을 내려놓아도 괜찮아. 흘러가는 대로 그냥 너를 맡겨봐.’

그리고 나는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수영장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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