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를 무시하며 걸어갔던 지난날.
1.
나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많았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원하는 건 어떻게 서든 얻으려고도 했던 것 같다. 아 어느 정도였냐면 열다섯 때였나, MP3 플레이어가 너무 갖고 싶어서 세뱃돈을 저금하던 통장을 부모님 몰래 깨서 기계를 샀던 정도. 그랬던 나는 여러 가지 한계를 마주하면서 많이 달라졌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면서. 나는 시도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거라면서. 특히 돈이 많이 들어간다 싶으면 어떤 것이든 재빠르게 포기하곤 했다.
그 이유는 딱 하나, 가난 때문이었다. 아, 가난. 언급도 하기 싫은 이 단어.
나는 가난한 집의 첫째 딸이다. 한계를 경험하고 포기라는 단어와 익숙해지면서부터 은연중에 내가 바로 우리 집의 기둥이라고 생각했다. 성공하고 싶었다. 가난한 우리 집을 내 힘으로 다시 세우고 싶었고, 소위 사회적으로도 잘 나가고 싶었다. 돈으로부터 한없이 작아지는 나와 내 가족을 돈으로 구하고 싶었던 걸까. 그 어린 나이에 이런 무의식이 있던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라... 진부하지만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생각했다. 그중에 내가 선택한 건 바로 의사였다.
공부를 꽤 했고, 그 와중에 수학과 과학이 재밌었고 자연스럽게 이과를 선택했다. 이공계에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라면 의사가 최고 아닌가. 부모님은 공부하는 내 모습을 좋아하셨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건 내가 공부를 잘해서 의대를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고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그때의 내가 이해가 된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때였으니까.
2.
그래서 주구장창 공부만 했냐. 그렇지도 않다. 그런 내가 좋아하는 건 따로 있었다.
하루 종일 듣던 음악, 늘 품에 끼고 살았던 라디오, 피아노, 필름 사진, 그리고... 영국.
학창 시절, 일찍 하교를 하는 날이면 나는 TV를 보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곤 했다. 그 한가로운 시간이 기억이 나는 이유는 어느 유명한 요리사 때문이다. 여느 때와 같이 하교를 하고 TV를 틀었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요리 채널을 틀었는데 왠 잘생긴 외국 남자가 나오는 게 아닌가. 요리사라는 그 훈남이 사용하는 스튜디오의 생김새며,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재료들이며(그때는 로즈마리를 툭툭 뜯어 닭고기 위에 뿌리는 것도 신기했다.) 모든 게 흥미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발음! water를 워러가 아닌 우어터라고 발음하던 그 소리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들렸다. 그는 바로 제이미 올리버였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영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 게.
그 후로 영국은 내가 언젠가 꼭 가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여행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빅벤이나 런던아이가 나와있는 사진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부풀곤 했다. 아 언제 갈 수 있을까? 나도 얼른 가보고 싶다. 사진을 한참 쳐다보면서.
대학생이 되면 다들 한 번쯤 해보는 유럽 배낭 여행? 그런 소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던 음악이나 필름 카메라로 찍는 사진들도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취미라고 생각했다. 아니 뭐 내가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 것들은 대학 가서 하면 되는 거라고. 그러니까 내가 제일 먼저 이루어야 할 목표는 대학이라고. 정확히는 의대에 가야 한다고.
'유럽은, 아니 영국은 의대에 간 후에 가보자. 그런데 의대 가서도 유럽으로 여행을 갈 수 있을까? 몇백만 원 든다던데. 그 돈을 내가 모아서 과연 갈 수 있을까? 일단 공부나 하자. 그건 대학 가서 생각하자.'
넌 성공해야 돼. 가족의 든든한 기둥이야. 공부를 잘해서 의대를 가야만 해. 넌 의사가 되어야 해.
그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강요하지 않았다. 자라온 환경 속에 내가 그렇게 나를 강요했던 것이다.
그 첫째 딸은 이 모양 저 모양 좋아하는 걸 떠올리다가 무시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가난이라는 틀 안에서.
가벼운 거라고 치부했지만 이상하게 사라지지 않는 소원 하나를 품고.
그 소원은 때때로 내 마음을 부풀게 했다가 이성으로 부푼 마음을 잠재우며.
나는 그렇게 뱅뱅 돌고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