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은 생물입니다만

전공보다 교양을 더 좋아했던 어느 생물학도.

by 아름나무


1.

의대 입학이라. 이것 참 나에게 쉽지 않은 목표였다. 첫 번째 수능을 말아먹고(?) 재수를 했다. 스무 살을 떠올리면 딱히 이렇다 할 특별한 날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공부만 했다. 재수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을 정도의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터넷 강의를 들어가며 혼자서 어떻게든 그 기간을 버텨냈다. 그렇게 두 번째 수능. 성적은 올랐지만 그 성적도 의대에 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 삼수는 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차선책이 있었는데 바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시험을 봐서 의학전문대학원을 진학하는 것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무조건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니 전공을 선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당연히? 생물학과. 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건지, 그 학문이 나에게 정말 잘 맞는지 둘러볼 생각조차 하지 않던 어린 나였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다. 그런데 이건 웬일. 분자생물학은 무엇이며 생화학은 무엇이람. 세부 전공과목들이 어쩜 다 하나같이 재미가 없는지. 그나마 유일하게 재밌던 과목들은 뭐 이런 거였다. 암의 과학, 면역학, 생식생물학. (주로 사람의 몸과 관련이 깊은.)


'아휴 다행이다. 모든 과목이 재밌을 순 없지. 역시 그럼 그렇지. 아예 다 안 맞으면 어떻게 의사가 되겠어!'


그나마 재밌는 과목들이 있다고 위안 삼았지만 역시나 재미는 더더욱 없고, 영 내 전공에 시큰둥해지기만 했다. 나는 어차피 생물학으로 커리어를 이어갈 게 아니니까. 난 의사가 될 거니까. 그렇게 어영부영 학부생활을 했다.





2.

생물학에 영 관심이 없던 생물학도가 좋아하는 과목은 죄다 교양과목에 있었다. 그녀가 선택해서 재밌게, 그리고 (전공보다 더) 열심히 들었던 과목들은 바로 학창 시절 때부터 좋아하던 것과 비슷했다.


음악의 이해, 예술사, 기초 독일어, 유럽 문화의 역사와 이해.


원래 좋아했던 음악 외에 나머지 과목들은 영국이 좋아서 자연스레 관심이 가게 된 과목들이었다. 영국에 가고 싶던 마음은 유럽에 가고 싶은 마음으로 번졌다.


독일어를 가르치셨던 교수님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기초 독일어> 수업은 이공계 학부생들만 들을 수 있는 수업이었다. 수업 정원이 40명이었는데 수강생은 반도 안 되는 17명 정도였나. 그래서 수업이 폐지될 뻔했는데 교수님이 직접 추진하셔서 개설이 된 수업이었다. 그 수업에 모인 학생들은 1명인가 2명 빼고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 초보자들이었다. 정말 재밌었다. 인상도 온화하신 교수님이 즐겁게 들어오시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 베, 체, 데 (영어의 알파벳 같은.)를 소리 내며 수업이 시작되었다. 교수님은 항상 독일의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여기는 뮌헨이라는 곳이고~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소시지가 정말 맛있고... 어쩌고 저쩌고"


교수님이 이렇게 독일을 소개하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우리 학교와 독일의 어떤 학교로 교환학생을 보내는데 이공계 전공 쪽에서는 지원하는 학부생들이 없었기 때문. 그러니까 제발 관심이 있으면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홍보차 독어 수업을 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교수님 참 대단하시다.


그때가 2학년 1학기였다. 교수님의 그 얘기를 들을 때 내 마음은 분명히 설레었다. 기회를 잡고 싶어서. 그러나 나는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용기가 나지 않을 때마다 나는 돈이 없다는 핑계를 아주 적절하게 사용했고, 그때가 그랬다.


'학비는 안 들어도 생활비는 어떡할 거야. 그것도 독일에서. 이거는 우리 집에서 해줄 수도 없고, 내가 벌어서 만들 수 없을 것 같아. 휴학을 해서 돈을 모으자고? 안돼 난 의사가 돼야 하니까 그렇게 시간을 낭비할 수 없어. 다음에... 다음에 가자. 여행으로 가면 되지.'


그때 교환학생을 갔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만큼 기회를 놓쳐서 많이 아쉽고 후회되었다. 다행히도 그 아쉬움은 내가 런던에 간 후에 비로소 사라졌지만.


뱅뱅 돌고 아쉬움과 미련 뭐 후회 이런 것만 남기던 그때 그 시절은 과연 허송세월이었을까. 주변 친구들이 방학 때 다들 유럽으로 여행 갈 때마다 너무 부러워서 부럽다 말도 못 했던 그때의 나는... 미련했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런던에 간 (구) 생물학도, 자연사박물관에 가다. Photographed by Largo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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