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
10층. 동생이 옮긴 병실은 거의 꼭대기층이다. 층수는 높지 않지만 산 중턱에 있어서 도시를 한눈에 다 내려다볼 수 있었다. 벚꽃이 드문드문 피어있다. 집 앞 공원 벚꽃이 참 이쁘게 피는데. 작년 이맘때쯤 온 가족이 집 앞에 나가 벚꽃구경을 했었다.
조카를 안아 들고 창문에 기대에 기대서서 한참을 구경했을 때 엄마는 하얀 가운을 입은 분과 함께 상담실에서 걸어 나왔다. 멀리 우리가 서있는 걸 알아채고는 서둘러 인사를 하고 우리에게 왔다.
엄마는 우리의 눈치를 보며 유전자 검사를 부탁했다. 사실 가족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고, 언니는 물론 형부도 같은 생각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50%의 확률이지만 혹시 모르니 먼저 검사를 했다고 했다. 최대한 젊은 사람이 이식을 해주면 좋다는 말에 우리는 물론, 막내 이모에게 까지 검사를 부탁했다고 했다.
검사는 아주 간단했다. 보통의 피검사처럼 따끔하고 끝났다. 간호사 언니는 최대한 빨리 결과를 말해주겠다며 살짝 미소를 짓는 친절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어린 조카 때문에 병원에 오래 머물지 못해 검사를 마치고 갔고, 나는 엄마와 함께 아빠를 기다려야 했다.
"아, 깜빡했네."
빨갛게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적힌 문 앞에서 엄마는 말했다. '호출'이라고 적힌 버튼을 누르자 누군가가 수화기를 받은 신호음이 들렸다.
"ㅇㅇㅇ환자 보호자인데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렸다.
"카드가 있으면 여기에다 찍으면 되는 거고, 아니면 호출을 눌러서 간호사랑 통화하면 돼. 네 동생 이름 대고 보호자라고 하면 들여보내 줄 거야."
병실로 들어가기 위해선 2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 두 개의 문 사이에 마련된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소독을 해야지만 들어갈 수 있단다. 그새 간호사분들은 엄마의 얼굴을 익혔는지 상담을 잘하셨냐고 안부를 묻는다.
"여기가 그 누나예요?"
엄마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엄마는 하루도 안돼서 이 생활에 벌써 익숙해져 버린 것 같았다.
병실은 간호사실 바로 앞이었다. 병실에 들어서니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된 커튼 속 동생이 누워있는 게 보였다. 그전에 있던 병동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는 내가 왔는데도 누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동생 침대 옆 한동안 조용히 앉아있었다.
"동생이 이식해줄 수 있는데, 그 와이프가 계속해주지 말라고 한대."
나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러냐고 맞장구쳤다. 가족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엄마의 소식통에 의하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에게 이식을 받을 수 있지만 못 받고 있다고 한다. 기증센터 통해서 일치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는데, 기증을 해준다고 했다가 의사를 번복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엄마는 요즘은 전과는 달리 이식도 간단해졌다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항암 치료하고 퇴원했는데 재발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래."
엄마는 나이 많은 노모가 아침마다 와서 들여다보고 간다고 말까지 덧붙였다. 친화력 좋은 건 알았지만 이런 정보를 다 어디서 들었는지 의문이었다.
하얀 가운 가슴팍에 펜자루를 가득 꽂은 의사를 선두로 세명의 의사들이 뒤따라 병실로 들어왔다. 동생의 상태를 물으며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어떠냐고 동생에게 물었다. 그는 태연하게 아직은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의사가 가고 얼마 안 돼서 아까 안부를 물은 간호사가 들어왔다. 동생 병원복 상의 단추를 하나 풀더니 가슴팍에 달려있는 호스 상태를 확인했다. 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주사를 무서워하는데 꽤나 큰 호스가 들어있는 모습을 보니 그때의 아픔이 상상이 갔다. 동생은 별거 아니라는 듯 나를 보며 웃는다.
병실에 있는 화장실은 환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보호자들은 되도록이면 외부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무균실 안에는 보호자를 위한 화장실이 없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을 빠져나와 휴게실 옆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거리가 머니 너무 오래 참으면 안 되겠다, 싶어 화장실에 갔다. 손을 씻는데 번뜩 '아... 출입증.'
쭈볏쭈볏 문 앞에 서서 저 호출 버튼만 누르면 되는 건데 괜히 떨렸다. 아무래도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을 내 멋대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동생 만나러 왔는데요."
내 동생이 누군지 저 사람들이 어떻게 아냐고. 환자 이름은 말하지도 않고 동생이라고 말해버렸다. 스르륵-문이 열렸다. 얼떨결에 들어와 화장실에서 씻었지만 인터폰을 눌렀으니 다시 닦아야지, 라는 생각으로 손을 씻고 2번째 문으로 다가갔다. 저 멀리 동생의 담당 간호사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나가는 거 봤어요."
나는 멋쩍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도 엄마처럼 이 생활이 익숙해질 날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