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일수 Jan 05. 2021

너와 나의 유전자가 백퍼센트 일치할 확률

하루 아침에 동생의 골수기증자가 되었다.


부모의 유전자는 최대 50%만 일치한다. 가족 중 가장 완벽하게 일치할 수 있는 건 형제들 뿐인데, 그 확률도 25% 정도이다. 그렇지 않으면 유전자가 일치하는 기증자를 만나기까지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만난다고 해서 무조건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사자의 의견은 물론 가끔 아주 가끔 금전적인 대가를 바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동생의 항암치료가 시작되고 얼마 후, 할머니가 찾아왔다. 혹시나 당신의 유전자가 맞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며 검사를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단호하게, 연세가 있어서 유전자가 맞아도 이식은 불가능할 거라고 딱 잘라 말했다. 할머니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동생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했지만, 엄마는 그마저도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 항암 치료가 시작되고 힘들어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할머니는 동생 앞에서 눈물을 흘릴게 뻔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서둘러 할머니를 배웅했다.


수업이 없는 날 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집 근처, 병원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 1시간에 1대씩이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20분 전에 도착해서 늘 기다린다. 출발지를 시작으로 종점에 내려야 하는 나는 사람들의 눈을 가장 잘 피해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자리를 선택한다. 오른쪽 맨 뒷칸 바로 앞줄. 버스 깊숙이 들어오기를 귀찮아하는 사람이 많기에 내 옆은 늘 텅 비었다. 병원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저 멀리 분홍 꽃잎들이 수두룩한 거리가 보인다. 병원 입구 벚꽃나무가 장관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직이라 생각했는데 벌써 이렇게 만개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되돌아가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다. 엄마와 동생에게 보여줄 생각에 마음이 급하다.


허겁지겁 병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만원으로 가득했던 엘리베이터.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간다. 10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엔 나뿐이다. 동생의 병실로 가기 위해 나는 또 격리병동의 인터폰을 누른다. 어색하게 동생의 이름을 말하자 대꾸도 없이 바로 문이 열린다. 손을 닦고 병실로 들어서니 동생이 혼자 누워있다. 엄마는 어디 갔냐고 물었더니, 동생은 힘없는 목소리로 상담하러 갔다고만 대답한다.


엄마가 병실로 돌아왔다. 엄마를 뒤따라온 아빠는 병실로 들어오지 않고 멀찌감치 서서 동생을 바라보고 있다. 아빠에게 다가가 어디 갔다 왔냐 물으니,


"네가 100% 일치한대."


다짜고짜 아빠는 저 한마디를 꽤나 큰소리로 내뱉었다. 응? 내가 25%의 확률을 뚫고 당첨된 혈연 기증자라고? 그 어렵다는 걸 내가 해냈다고? 노력해서 얻은 것은 절대 아니지만 뭔가 희박한 숫자에 내가 포함되었다는 생각에 신기하기도 하고 기뻤다. 엄마는 화들짝 놀라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좋은 소식이었지만 엄마는 선뜻 기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 또한 그들처럼 기증을 하지 않으려 할까 걱정이었을게 분명하다. 이게 분명 기쁜 일이지만 누구 하나 기뻐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내가 이 타이밍에 좋아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옆에 서서 놀라워하던 아빠,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던 엄마 그리고 침대에 누워 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던 동생.


아빠와 함께 집에 가는 길. 보조석에 앉아서 이것저것 검색해본다. '골수기증은 아픈가', '골수기증 걸리는 시간', '골수기증이란?'. 엄살이 심하기로 유명한 나는 이게 아픈가 안 아픈가 그게 가장 중요했나 보다. 정신없이 검색하는 와중에 뭐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묻는 아빠. 그러며 은근슬쩍 기증에 대한 내 생각을 묻는다. 

우리 가족이 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 "무균실에 있는 제 동생 만나러 왔는데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