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째한 누나는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동생이 입원한지도 거의 한달이 되었다. 격리병동 인터폰을 눌러 내 소개를 하는 일도, 자연스럽게 들어가 간호사님들과 눈인사를 하는 것도 어색할만큼 익숙해져버렸다. 줄지어진 병실 사이 자그마한 휴게 공간에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엄마가 앉아있다. 눈이 마주치자 이리오라며 나에게 손짓한다. 주변 사람들은 이 딸이 그 딸이냐며, 잘됐다고 말한다. 완벽한 문장을 말한건 아니지만 분명 이 모든 사람들이 내가 기증자라는걸 아는게 분명하다. 엄마는 이미 이 생활에 완벽히 적응했고, 꽤나 전문가스럽게 동생의 병명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저기서 민간요법에 대해 말하면, 그런거 믿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긴 하지만, 엄마도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정보를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한다.
밥은 먹었냐, 피곤하지는 않냐, 학교 수업은 들을 만 하냐. 평범한 대화같지만 어딘가 모르게 엄마의 말투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병원이라는 곳이 어색한걸까, 이곳에 완벽히 적응한 엄마가 어색한걸까.
동생의 병실. 동생이 누워있어야할 침대가 비었다. 하얀 침대 시트에는 뭔가 거뭇거뭇한게 묻어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수북하게 빠진 머리칼이다. 꼭 이불에서 머리를 잘라낸 것 같은 모습이다. 화장실에서 동생이 나와 힘겹게 침대로 돌아온다. 키가 멀대만한 놈이 침대에 걸터앉으니, 그제서야 듬성듬성 머리가 빠져 생긴 땜빵이 눈에 들어온다. 멍-하니 동생의 머리를 바라보고 있는다. 약 때문에 속이 좋지 않은지 또다시 화장실행이다. 난 재빨리 머리맡에 놓인 테이프로 슥슥- 머리칼을 치워낸다. 군인이었던지라 짧은 머리칼이 이불을 파고 들어 빠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 나는 손톱 끝으로 간신히 머리칼을 뽑아낸다. 동생이 나오기 전에 다 치우고 싶은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사람이 하루에 빠지는 머리카락은 평균적으로 50가닥이라는데 일주일치 머리가 다 빠져버린 것 같다.
이건 그냥 머리카락인데...침대에 머리카락이 묻어있는건데 왜 안간힘을 쓰며 머리카락을 치우면서 계속해서 속이 울렁거리는걸까.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다시 한번 목구멍 깊숙히 감정을 눌르려 애쓴다. 동생이 나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머리카락을 뜯어내던 테이프를 냉큼 치운다. 엄마와 눈이 마주친 순간 우린 말하지 않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어색함을 깨려고 또 괜한 헛소리를 시작한다.
난 평소에 눈치없이 실없는 소리를 많이 한다. 침묵이 금이라는 말이 뭔지 오래 전 깨달았지만 그래도 실없이 떠들어대며 웃는 시간들이 좋다. 헛소리 좀 그만하라는 동생의 당부 아닌 당부도 많이 들었다. 그의 쓴소리가 괜히 그리워진다. 그의 쓴소리도 나의 실없는 소리도 한동안은 듣지 못할 것 같다.
엄마가 집으로 향하고 혼자 동생 옆을 지킨다. 그냥 옆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거니 지킨다고 칭하기는 민망스럽다. 동생이 말한다. 기증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주고 싶으면 주고, 주기 싫으면 주지 말라고. 누나가 주기 싫으면 다른 기증자 찾으면 되는거라고. 멍하다.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그의 말처럼 이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동생의 성격상 '네 맘대로해.' 라고 할건 알고 있었지만 나의 마음을 이해해준다는 기쁨과 살짝 서운함이 있었다. 복잡미묘한 마음. 주고 싶다가도 주기 싫은 못된 심보. 주기 싫으면 주지 말라니 확 줘버릴까 하는 청개구리같은 마음.
'이 자식이 날 뭘로 보고 동생한테 고작 백혈구 기증 하나 안해줄 째째한 누나라고 생각했던걸까.' 싶다가도 '그래, 내 마음을 이해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겠지?'라고 이해가 됐다.
저 말을 하려고 얼마나 많이 생각했을까? 속이 울렁거리는 밤에도 저 생각을 하며 태연하게 말하려고 문장을 몇 번이고 다듬었을까?
나는 실없는 소리하는 누나는 맞아도, 째째한 누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