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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수 Mar 31. 2022

벚꽃이 질 무렵 친구들을 잃었다.

나의 비밀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친구들에게 비밀 아닌 비밀을 털어놓지 못한 것이 발단이었다.



집에 있는걸 좋아한다. 친구를 만나는 약속이 한달에 한번 정도, 약속이 없을 때가 더 많은 편이다. 동생을 간병하는데 있어 이런 점이 엄마를 도와줄 수 있는 최대 장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날은 저녁에 엄마 대신 병원에서 지내야 했던 날이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나름에 기분전환을 하고 싶기도 했다.


친구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나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다들 짐작하고 있었다. 당시엔 '내 동생이 급성백혈병에 걸렸는데, 나랑 골수가 맞아서 내가 기증자고 지금은 어떤 상황이고 곧 이식을 할 수 있을거다.'라며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집에 좀 일이 생겨서..."라고 말한 뒤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어색하게 웃으면 티가 잘 나는 편이라 그런지 친구들도 심각한 일이라 짐작은 했겠지만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이렇게 눈치있는 친구들이 내 친구들이라 사뭇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여행 다녀온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한창 벚꽃이 필 시기여서 그런지 친구들은 모두 가족들과 꽃놀이를 다녀왔다고 했다. 벚꽃은 경주가 이쁘다며, 제주도가 더 낫다며 저마다 여행 다녀온 곳이 예뻤다며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었다. 본인들의 핸드폰에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들이밀며 자랑을 하기 시작한다. 내 눈엔 다 예뻤다. 풍성하게 만개한 벚나무 거리. 뒷배경으로 꽃보다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지만 그게 바로 재미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넌 어디 안다녀왔냐는 한 친구의 말에 나는 이번에 못갔다고, 난 봄에 꽃구경 가는 것보다 가을에 단풍구경 가는게 좋다며 말끝을 흐렸다. 나의 이야기는 안중에도 없는 듯 금세 이야기 주제가 바뀌어버렸다. 
핸드폰을 만지작 대다가 사진첩을 열었다. 나의 핸드폰에도 꽃 사진이 수십장이었다. 병원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에 예쁘게 핀 벚꽃, 병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쭈욱 피어있던 벚나무들. 어디서 찍었는지 알게 뭐람, 그들의 대화에 끼고 싶었지만 꾸욱-참았다. 


정신을 팔고 있었더니 친구들은 올해 뭐할지 본인들의 계획을 열을 내며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래도 하나같이 똑같이 하는 말은 취업 전 여행을 가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탈리아 여행해본 사람있나?"한 친구가 묻자 다른 친구가 나를 지목했다. 대학생 때 여러본 다녀온 기억을 더듬어 여기저기 좋았던 곳을 추천해줬다. 친구는 꼭 가보겠다고 대답한다. 왜일까? 형식상의 대답이라고 바로 알아챌 수 있었던건.  

드디어 친구들과의 만남이 끝났다. 다들 아쉽다는 말을 하며 본인들이 가야할 방향을 찾기 바쁘다. 다들 지하철이며 버스를 타러 향한다. 대강 병원이 있는 방향을 찾아 한참을 걸었다. 
날씨가 꽤나 더워지고 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활짝 폈던 벚꽃이 바닥에 수두룩하게 쌓여있다. 얼마나 짓밟혔는지 꽃잎들이 더럽기 짝이 없다. 아참, 친구들에게 나의 계획을 말하는걸 깜빡했다. 나도 다음 해엔 꼭 가족들끼리 꽃구경하러 가려고 계획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 친구들과는 더이상 만나지 않는다. 아주 가끔 안부만 물으며 지낼 뿐이다. 모두에겐 각자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모든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친구들말이다. 아쉽게도 이 친구들은 그런 친구들이 아니었나보다. 뭐, 그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곧 또다시 벚꽃이 피겠군. 그들은 또 누군가에게 꽃구경하러 여행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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