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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사 Sep 22. 2022

덴마크 엄마가 생기다.

그리고 덴마크 집이 생기다.


2017년 9월 6일, 오후 12시 24분, 코펜하겐은 비와 함께 나를 맞이해 주었다. 날씨 영향 때문인지 도시의 인상은 조금 쌀쌀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공항에서 미리 환전한 덴마크 크로네로 지하철표를 구매한 후  몸 덩이만 한  두 개를 질질 끌다시피 하며 한인교회 목사님 집으로 향했다. 목사님 내외는 덴마크 워홀러들의 초기 정착을 위해 자신들의 집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지낼  있도록 해주었는데, 혹시라도 Karina 집이 사진과는 다르거나 계약 조건이 바뀔  있기 때문에 나는 만일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목사님 댁에 짐을 맡기고 Karina에게 다녀오기로 하였다.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낯선 곳에서의 비는 그리 반갑지 않았다. 나는 Karina에게 출발을 알리는 연락을 하였고, 버스와 S-tog를 한 번씩 타고 Albertslund 역에 내려 그녀를 기다렸다곧이어 뒤로 곱게 땋은 머리와 상반되는 체구가 건장한(세미 보디빌더였던 Karina) 중년 여성이 내게로 다가왔고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아주었다. 


언젠가 Karina와 외출 중 찍은 그녀의 뒷모습 


Karina는 내가 덴마크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마주한 외국인인데, 그녀의 미소 때문인지 괜스레 Albertslund 동네가 포근해 보였다. 그녀는 나와 함께 집을 향해 걸어가며 동네의 곳곳을 소개해 주었고 이곳은 어디인지, 어떤 때 어디를 가야 하는지 설명해주었다. 역에서 집은 그리 가깝지는 않았는데 Karina는 내게 원한다면 딸이 쓰던 자전거를 사용해도 된다고 얘기해주었다. Albertslund는 코펜하겐 도심과는 또 다르게 전원적인 모습이 매력적인 자그마한 동네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도시에선 보기 어려운, 단조로우면서도 아기자기한 집들이 주는 풍경이 너무나도 좋았다.(Albertslund는 실제로 저층 건축물의 계획도시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10여 분 정도를 걸어 Karina의 집에 도착했다. 그녀의 집은 타운하우스 스타일로 똑같은 디자인의 아담한 2층짜리 단독주택들이 즐비한 곳에 위치해있었다. 그녀가 열쇠로 현관을 열고 집에 들어가자 앞쪽 중문 너머로 주방과 야외 공간이 한눈에 보였고, 그 오른쪽으로는 Karina가 생활하고 있는 거실이 있었다. 현관문 바로 오른쪽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화장실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녀는 1층을 구경시켜준 뒤 계단을 올라 내가 머물게 될 방을 보여주었다. 



방은 생각했던 것보다 넓었고, 큰 사이즈의 퀸 침대, 넓은 소파, 넉넉한 수납장, 게다가 텔레비젼까지 모든 게 갖춰져 있었다. 거기다 양쪽으로 큰 창이 나 있어 바깥과 하늘을 보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코펜하겐에서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방의 컨디션과 동네의 분위기, 집주인인 카리나까지. 내겐 더할 나위 없이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나는 지체할 것 없이 그녀에게 계약하겠다고 했고, 우리는 월세를 다시 한번 확인한 뒤 1층으로 내려와 계약서를 작성했다. Karina는 나를 위해 영문으로 된 계약서를 준비해주었고, 나는 한 달 치 월세(4,500 ddk)를 보증금으로 내고 카리나의 집에서 살기로 하였다. 



계약서 작성을 마친 Karina는 내게 짐을 어디에 맡겨두었는지 물었고 자신의 차로 집까지 옮겨와 주겠다고 자처했다. 그녀는 내겐 친숙한 기아의 모닝 모델을 수동으로 갖고 있었는데, 그녀의 얘기를 듣자 하니 덴마크에서는 자동차 세금 부과율이 높아 많은 사람들이 소형차 또는 수동차를 구매한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차의 절반가격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야 하니 소형차가 경제적으로는 제격이었다. 그녀는 한인 교회로 가는 동안 차창 너머로 보이는 여러 건축물과 동네에 대해 소개해주었다. 내 몸덩이만 한 짐을 이리 편하게 옮길 수 있다니,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이 넘쳐나고 있었다. 우리는 교회에서 짐을 빼 왔고, 집으로 돌아와 그녀는 마치 엄마처럼 저녁을 준비해주었다. Karina는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지역의 호텔 주방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녀와 지내는 동안에도 간혹 싱싱한 재료와 조리된 음식들을 가지고 와 내가 편히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내가 머물 방으로 올라왔다. 해가 지면서 어스름히 보이는 노을이 하늘에 가리는 것 하나 없이 선명히 보였다. 1년을 머물 예정이라 꾸깃꾸깃 참 많이도 짐을 가져왔는데, 산더미 같은 짐 정리도 이 넓고 아늑한 방에 채울 생각을 하니 그저 즐겁기만 하였다. 덴마크 하늘 아래 내 한 몸 편히 누울 곳이 이렇게 빨리 생기다니. 감사한 마음과 함께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한인 교회 목사님 집에 체류하는 여러 한국인들은 집을 구하기까지, 적게는 한 달에서 많게는 세 달까지. 어떤 사람들은 끝끝내 지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덴마크에서 Karina를 만나게 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겐 아주 큰 행운이었다. 함께 지내는 동안에도 그녀는 나를 정말 따뜻하게 보살펴주었고, 그렇게 Karina는 내게 덴마크 엄마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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