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스피라시> 시청 후기
지난주 금요일, 모처럼 동생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요즘 화제가 되는 넷플릭스 다큐 <씨스피라시>를 틀었다. 동생은 나와 정반대여서 드라마나 영화 등 미디어 매체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 그런 그마저 몰입하게 한 작품이었다.
이 다큐멘터리가 ‘어업이 생태계 파괴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가’에 관한 이야기라는 건 대부분 아실 것이다. 먼저 개인적으로 충격적이었던 부분들을 중심으로 후기를 시작하려 한다.
충격적인 내용
1. 부수(附隨) 어획의 위험성
우리가 먹는 어종을 포획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씨스피라시에서는 부수 어획의 위험성도 이야기한다. 멸종 위기의 고래, 돌고래에게 가장 위협적인 건 상업적인 어업이다. 프랑스의 대서양 연안에서 부수 어획으로 희생되는 돌고래의 수는 매년 1만 마리다.
2. 플라스틱 빨대 피해 < 어망 쓰레기 피해
한 조사에선 플라스틱 때문에 죽는 전 세계 바다거북의 수를 연간 1천 마리로 추산했다. 어선에 의해 포획되거나 다치거나 죽는 바다거북의 수는 연간 25만 마리다. 약 250배. 그러나 환경 단체들은 플라스틱 빨대보다 어업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3. 환경 단체와 기업 사이의 커넥션
플라스틱 빨대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플라스틱 오염 연대’는 ‘돌고래 안전 참치 라벨’을 허가해주는 ‘지구섬 협회’와 같은 단체다. 돌고래 안전 참치 라벨이 붙어 있는 회사의 어선은 참치 8마리를 잡으려고 돌고래 45마리를 도살하다 발각된 전적이 있다. 앞서 부수 어획의 위험성을 말하기 위해 언급되었던 아이슬란드의 어장이 있었다. 그 어장에 여러 해 동안 상을 준 건 '해양관리협의회(MSC)’였다. ‘지속 가능한 어업’을 하는 회사에 푸른 라벨을 붙여주는 회사다. 그러나 다큐를 보면 알겠지만, 지속 가능한 어업이란 없고, MSC의 창립 단체 중 하나가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 였다는 것으로 밝혀진다. 유니레버는 당시의 주요 해산물 유통 업체였다. 환경 단체들은 해산물을 더 많이 팔기 위해 어업과 협력해왔다. 플라스틱 오염 연대가 어망 쓰레기 얘기는 안 하고 빨대 얘기나 하는 이유다.
4. 기름 유출로 인한 오염 피해 < 어업으로 인한 피해
역사상 가장 큰 기름 유출 사건은 멕시코만에서 일어난 딥 워터 호라이즌호 기름 유출이다. 수개월 동안 막대한 양의 기름이 심해에 마구 쏟아졌다. 그러나 멕시코 만에서 하루 어업으로 죽어 나간 동물의 수가 몇 달간의 기름 유출로 죽은 수보다 많았다.
5. 매년 사라지는 숲의 면적 < 매년 사라지는 바다의 면적
저인망 어업은 가장 파괴적인 어업 방식이다. 무거운 추를 매달아 바다의 밑바닥을 긁고 다니는데, 가장 큰 저인망은 성당 여러 채와 점보제트기 13대를 삼킬 정도의 규모다. 아마존의 열대우림을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것과 같은 행위다. 땅에서 매년 사라지는 숲의 면적은 10만㎢가 넘는다. 1분에 축구장 27개가 사라지는 정도다. 그러나 저인망 어업으로 매년 사라지는 바다의 면적은 1600만㎢로, 1분마다 축구장 4316개의 면적이 사라지는 것이다.
6. 끝나지 않은 대항해시대와 실존하는 대해적시대
씨스피라시는 마지막으로 조금은 다른 성격의 주제까지 꺼낸다. 바로 ‘인권 유린’과 ‘강대국의 횡포’다. 어업 규제를 하기 위한 정부의 참관인들이 바다 위에서 죽임을 당하고 유기된다. 강제 노역을 당하는 사람들도 많다. 바다에 한 번 나가서 몇 년, 어쩔 땐 십여 년을 강제 노동하다가 병들고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소말리아 해적’이 생긴 배경은, 소말리아 내전이 생기자 외국 어선들이 그들의 바다에 침입해 불법으로 조업한 까닭이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원래 ‘소말리아 어부’였던 것이다. 라이베리아 어부들은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맨몸으로 점점 더 먼 바다로 나간다. 불법 약탈이 아니더라도, 현지 어부들은 그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들의 구역 근처까지 상업적인 어업이 허가되었으므로.
무언가를 잡아먹는다는 행위
다큐멘터리 말미에는 비교적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래를 잡는 덴마크의 어부들이 나온다. 피로 붉게 물든 바다와 죽은 고래 위에 앉아 있는 어부. 무언가를 잡아먹는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아주 오래전 인간들은 동물을 직접 잡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숨통을 끊고 손질을 했을 것이다. 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빼앗는다. 그 수고로움과 죄책감을 고스란히 감내한다. 그것이 당연했다. <노인과 바다>의 어부의 낚시질이 어쩐지 숭고해 보이는 것도 그 까닭일 테다. 그러나 어업이 발달하면서, 배는 살육의 기계로 변해갔다. 다큐 중간에는 바다 한가운데서 커다란 배가 물고기를 잡은 후, 피를 콸콸 쏟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죽인 고래 위에 앉아 있는 어부보다 그 장면이 더 차갑고 끔찍하게 느껴진다.
몇 년 전 재밌게 보았던 미국 드라마 <한니발>이 떠올랐다. 악한 인간들을 가축 취급한 한니발이 매력적이었다. 한니발은 그들을 직접 사냥하고 손질해서 정성스레 요리하고 먹는다. 자신도 인간이면서 같은 인간을 그렇게 가치 판단 하는 한니발이 오만해서 꼴 보기 싫다가도, 한니발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통쾌할 때가 있었다(또 다른 주인공인 윌이 한니발을 대하는 태도 또한 통쾌함을 준다.). 그렇게 잘난 척하는 인간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우리가 다른 동물들을 이렇게 취급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가 원할 때,
원하는 메뉴를 골라 먹는 것이 정상인가?
인간은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최상위층이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적인데 대책 없이 많은 인류가 '오늘 점심은 뭐 먹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고민하고 결정한다.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건 돈이지 메뉴 부족이 아니다. 대표적인 수산학 전문가 중 한 명인 코닐리아 딘은 이 상태로라면 2048년에는 바다가 텅 빌 것으로 예측했다. 단순히 바다 생물의 멸종이 문제가 아니다. 물고기와 산호, 해양 식물 등 모든 바다 생물은 탄소를 붙들어 대기권으로 배출되는 걸 막아준다. 그래서 바다 생물의 멸종은 지구의 멸종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이 지구를 멸망으로 이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시청을 끝냈을 때, 우리는 한숨만이 나왔다. 고구마를 100개 정도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었다. 인터넷 앱을 켜 제목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Seaspiracy. 바다를 뜻하는 Sea와 공모를 뜻하는 Conspiracy를 합친 단어였다. 정부, 기업, 환경 단체가 우리에게 진실을 숨기고 이익을 위해 상업적인 어업을 이렇게나 무분별하게 장려했다는 것. 하지만 이제 이 다큐멘터리로 진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있다. 내가 이 다큐를 본 후에도 똑같이 행동한다면 그때는 정말로 그들과 한패가 되어 공모에 가담하게 되는 것이다.
전 세계의 정부와 기업, 환경 단체가 쉽게 바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더 거대한 힘이 필요하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심각성을 알고 다 같이 불편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 시대에서 소비자는 돈으로 말하는 수밖에 없다. 해양 생물을 덜 먹고, 대체 식품 소비를 늘려야 한다. 대체 식품 업계가 더 활발히 개발을 추진할 수 있도록.
나는 아이허브에서 직구로 알래스카에서 추출한 오메가3를 섭취하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식물성 오메가3를 구매할 계획이다. '고기 없는 월요일'이라는 캠페인을 언뜻 들은 적이 있다. 제대로 찾아보니 비틀즈 멤버 폴 매카트니가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토론회에서 제안한 캠페인이라고 한다. 그는 “육식을 제한하는 것이 기후변화 해결책으로 채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는 나도 실천할 때가 온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으로 시작해서 점차 늘려나가고 싶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씨스피라시 얘기를 하고 있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한 친구는 굉장히 괴로워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 다큐를 본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브런치에도 시청 후기를 올려본다. 많은 분이 이 다큐멘터리를 봐주셨으면 좋겠다.
사고의 확장을 위해 2021년 4월 19일 자 그린피스 블로그 글을 첨부한다.
<'씨스피라시'로 본 끔찍한 현실,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글: 그린피스 뉴질랜드 사무소 커뮤니케이터 엘리 후퍼
https://www.greenpeace.org/korea/update/17294/blog-ocean-seaspiracy-what-can-i-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