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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일 May 08. 2021

내가 감정 표현을 잘 안 한다고?!

30년 만에 안 충격적인 사실




 지난주 일요일,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와 만났다. 18살 때부터 봤으니까 벌써 12년 지기다. 그 친구와 지금은 호주에 가 있는 한 친구, 이렇게 세 명이 함께 항상 급식을 먹었다. 그냥 셋이 같이 있으면 너무 웃겨서 급식실에서 교실까지 올라가는 길이 힘들었다. 웃다가 배가 아파서 4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을 매일 기다시피 올라가곤 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종종 만났다. 이런저런 사는 얘기도 하고, 힘든 이야기도 하고. 브런치 계정도 당연히 알려주었다. 이번에 만나면 브런치 감상 소감을 말해주겠다고 해서 나는 긴장 반, 두근거림 반인 상태였다. 그런데 약속 날, 친구는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는 내 브런치 글들을 읽고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고 했다.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조심스럽게 '네가 네 이야기를 잘 안 하는 편이니까.', 하는 말에 나는 놀라서 반문했다. '내가? 거기 있는 글 다 네가 아는 얘기잖아!' 나는 좁고 깊게 인간관계를 하는 편이라, 친한 친구들에게는 스스럼없이 내가 겪은 모든 일을 말하기 때문에 조금 황당했다. 친구는 내 말에 웃으며 수긍했다. '그치. 다 아는 얘기지, 다 알지. 근데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잘 안 하니까....' 감정. 그 말에 나는 갑자기 벼락 맞은 사람 마냥 뭔가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내 친구들이 보고 좀 놀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스치듯 했었는데, 그 까닭을 스스로도 몰랐었다. 그런데 친구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왜 그런 생각을 떠올렸는지 곧바로 깨달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했던 독서 모임에서  친구가 나에게 이런 얘기를 했었다. '누나는 감정을  표현해 보는  어때요?' 그때도 나는 비슷한 반응이었다.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감이 전혀  와서. 나는 극단적이라 조용하다가도 신나면 흥분을 주체  하고, 호불호가 매우 뚜렷한 데다가 그걸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감정 이입을 잘하는 편이라 영화같이 짧은 시간 내에 너무 많은 감정이 휘몰아치는  보면 후유증이 심해서 꺼리기도 하고. 감정을 느끼는 것과  감정을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다른 건데, 나는 그걸 구분을  했던  같다.

               

 왜 그럴까 생각해본다. 원래 나는 fact, 사실이 중요한 사람이다. 모든 일을 cause & effect, 원인과 결과로 분석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 사고 회로가 원래 그렇다. 주위에 보면 감정이 엄청 요동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지만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그리고 기분이 태도가 되는 걸 싫어한다. 사회생활이 아닌 이상 주위 사람들에게는 그렇게까지 심각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어쩌면 주위 사람들에게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엄마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엄마는 우리 식구 중에서 감정 변화가 가장 큰 사람이다. 잘 웃고, 잘 울고, 잘 서운해하고, 잘 화내고, 사랑을 잘 표현하고. 그래서 귀엽지만, 나에게는 버겁기도 하다. 특히 몇 년 전 엄마가 우울해했을 때는 가장 최악이었다. 기분이 좋은 척을 하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공포 영화처럼 기괴하게 느껴졌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는데, 지나치게 기분이 좋아 보일 때. 그때는 심장이 다 떨어질 것만 같다. 이런 이유들 때문인가. 기분이 안 좋아도 그걸 유발한 사건에 관해서는 얘기하지만, 어떻게 안 좋은지는 얘기를 해본 적이 별로 없다. 기분이 좋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실 선천적으로 감정이 부족하게 태어났다고 해서 그게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타인과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건 노력하고 있으므로. 하지만 내가 소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그들이 내 감정에 대해 잘 모른다면, 그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관계라는 건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거니까. 나는 내 소중한 사람들과 아주 오래오래, 잘 관계 맺고 싶기 때문에.

               

 역시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하는 존재인가 보다. 30년이 되어서야 이렇게 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친구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더니, 그걸 알 수 있게 해 준 친구가 참 고맙다. 그리고 브런치와 브런치에 글을 올린 스스로에게도 고맙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로 어릴 때부터 글을 쓰고 싶었다고, 왜 그랬는지 이유를 찾고 싶다고 했는데.... 이제야 알 것만 같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글이나 그림으로 해소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너무 슬프고 화가 나서 종이가 찢어질 때까지 이를 악물고 검은 사인펜을 죽죽 그어댔던 언젠가의 어린 내가 떠오른다. 감정 표현을 어떻게, 어디까지 해야 하나 싶다.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그렇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친구들과 얘기하고, 기도하며 연습하면 되겠지.

               

 혹시 나처럼 감정 표현을 잘 못 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 글을 읽고 본인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신다면,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추천해본다. 자신과도, 세상과도 소통하실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좋아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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