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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일 Apr 03. 2021

대학을 10년 다닌 여자가 있다?!

영문과 다니다 애니메이션과로 재입학을 해버렸다



2010년 11월 나는 수능을 망쳤다.



 재수는 없었다. 지방에 있는 4년제 학교에 입학했다. 영어영문학과는 그나마 내가 과목 중에 영어를 제일 좋아해서 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1년 후 복수전공을 고민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진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만 고민하던 어린 시절, '일단 공부부터 하고 보자'라는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니까 '뭐로 먹고살지' 하는 고민을 하는 시기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지금 와서 보면 대학교 2학년의 당연한 증상이었다. 중2병만큼이나 무섭다는 대2병.      

         

 영문학과는 보통 복수전공이 필수다. 크게 교육 아니면 경영, 신방, 정외 등등 두 갈래로 많이 선택한다. 아니면 아예 다른 어문 계열이거나. 선생님이 되는 건 정말 싫었다. 거기서 거기인 학교 복도를 30년 이상 거닐어야 한다니, 나 같은 사람에게는 세상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복수 전공과목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놀랍게도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었다. 복수전공을 결정하는 순간부터, 나는 그걸로 먹고살아야 할 텐데. 그 생각이 스치자 앞이 깜깜해졌다.      

         

 그 순간, 수능이 끝난 후 나를 옆에 앉히시고 상담하시던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 들렸다.


'그래. 잘 결정했다, 00아. 이 학교에 애니메이션과도 있던데…. 혹시 나중에 00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할 수도 있고.'


나는 3  애니메이션 감독을 하고 싶었다. 일전에 진학 상담에서 말씀드렸던  어린 시절의 꿈을 담임 선생님기억하고 계셨다.  말씀은 당시에 굉장히 의아하게 느껴졌다. 수능을 망친 제자에게 그래도 희망을 심어주고 싶으셨던 걸까?    

           

 어쨌든 그때부터 나는 또 다른 복수 전공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 애니메이션 과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던 중,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예체능은 복수전공을 할만한 시간표가 아니었다. 영문과는 어떤 수업이든 두 시간씩 칼 같이 잘려있는데, 애니메이션과는 네 시간짜리가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었다. 전과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건 복수전공을 할 수가 없다. 전과도 미친 짓이다. 하려면 입시를 다시 해야 한다.' 그런 결론에 이르고야 만 것이다.  

             

 2011년. 21살의 봄. 나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한다. 대한민국의 미술 입시 제도는 1도 모르면서 겁 없이 전공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영어영문학과에서 애니메이션학과로.           

    

 그로부터 9년 후에나 졸업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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