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를 운영하기 위해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의 일이다. 여러 집을 보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집이 없었다. 구조가 마음에 들면 화장실이 너무 낡았다던가, 올수리를 해놔서 집은 깔끔한데 붙박이가 하도 많아서 개인 짐을 놓을 공간이 없다던가. 그러던 중 42평의 어느 집을 보게 되었다. 집주인은 우리 엄마랑 비슷한 나이대였다. 솔직히 말해서 어머니 세대 취향에 맞춘 인테리어라 세련미는 없었지만 거주 공간으로써는 무난했다. 그럼에도 입주자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대형 평수라 수익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욕심이 났다. 집주인아주머니는 원래 매매를 원하셨다. 신축 아파트에 입주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살던 집을 팔아 잔금을 치를 계획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은 데다 40평대의 대형 평수라 거래는 쉽지 않았다. 부동산 사장님의 설득, 그리고 다행히 은행에서 잔금 치를 만큼의 대출이 나오는 상황이 되어서 그 집을 월세 계약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날 계약서를 쓰기로 약속을 잡고 헤어졌는데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이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있을까..? 만약 공실이라도 난다면....."
아찔했다. 적은 보증금에 맞추느라 월세를 높여 세팅해 둔 덕분에 월세 금액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직장인이나 다른 수입원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외벌이인 남편 월급 외에는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돈은 없다. 간간히 그림 외주 작업을 해서 받는 돈이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일정치 않았다. 아까 낮까지만 해도 자신감에 차올라 수익률을 계산하던 나는 어디 갔는가. 한껏 쭈글쭈글해진 걱정 많은 나만 남아버렸다. 그렇게 밤잠을 설치고 다음 날까지도 고민을 하다 결국 부동산에 연락을 드렸다.
"저.. 사장님, 죄송한데 저 그 물건 못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월세가 너무 비싸서.."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만나게 된 24평의 아담한 아파트. 42평의 대형 평수는 무난하게 깔끔은 했지만 인테리어를 한 지 몇 년은 되었다. 특히나 구축 특유의 화장실.... 이 제일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24평의 아파트와의 첫 만남은 놀람의 연속이었다. 와.... 이런 공간에서도 사람이 살았다고? 전 세입자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부엌 상판에는 녹이 슬고, 20년이 다 되어가는 아파트임에도 수리 한 번 한 적 없는 오리지널 자체의 화장실! 하지만 화장실 올 수리에, 도배/장판, 싱크대 타일 및 웬만한 다른 곳들도 수리를 해주는 조건이었다. 정말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계약을 하기 전 또 다른 걱정이 시작되었다. 대형 평수보다 월세 비용은 낮았지만 방이 너무 작은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었다. 이러한 고민을 부동산 사장님께 말씀드리니 이런 말이 돌아왔다.
"진아 씨, 세상에 내 마음에 100% 쏙 드는 집은 없어요."
어쩌면 너무 당연한 말이다. 세상에 내 마음에 딱 맞는 것이란 게 있겠는가. 사람도 그러하지만, 집도 그러했다. 나에게 호화스러운 궁전을 보여줘도 그 와중에 부족한 점을 찾아낼 게 뻔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나의 기준대로, 내 마음에 들도록 상대를 바꿔보려 노력했던 것 같다. 30년을 가까이 다른 삶을 살아온 남편과 나. 사랑으로 결혼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장점이 단점으로 보이고, 자꾸만 내 틀로 상대를 재단하려 애썼던 것이다. 별 모양 틀을 가지고 너는 왜 별 모양이 아니냐고, 이 틀에 맞춰주면 안 되냐고 다른 모양을 가진 남편에게 졸라대고 때로는 화도 냈다.
"세상에 내 마음에 100% 쏙 드는 건 없는 거야.. 부족한 점은 부족한 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잠든 남편의 뒷모습을 보니 미안함에 웃음이 피식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