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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Apr 04. 2021

몸, 긴장과 이완에 대한 명상

의사가 말했다. 척추가 제대로 휘었네. 하하하. 이게 , 웃긴가?


나는 내 몸만한 요가 매트 위에 골반과 흉추를 내려둔 채 누워있다. 불은 꺼져있고, 매트는 땀으로 축축하다. 어두운 천장 위로 나의 지난한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것 같다. 아니 근데,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라는 것은 죽기 직전에 하는 말 아닌가. 맞다. 나는 지금 죽기 직전 같다.


지금은 하루치의 운동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다. 나는 온몸의 뼈가 해체된 뒤 블럭처럼 다시 조합되는 기분이다. 어딘가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냄새의 기원을 천장을 노려보며 추적하니 어제 입은 레깅스를 속옷만 바꿔입고 그대로 입고 간 내 냄새인 것 같다. 혹시나해서 옆 사람을 쳐다본다. 냄새의 근원지를 추적하는 것 같진 않다. 다행이다. 나는 지금 요가원에 있다.

내 몸은 물에 젖어있는 종잇장처럼 매트 위에 늘어져있다.

이것이 이완이라는 것인가. 


이완이라는 단어는 학생 시절의 나라면 결코 몰랐을 단어 중의 하나이다.


나는 세상에 긴장 말고 이완이라는 언어가 있다는 것을, 그것이 외부에서 오는 상황이 아니라 내가 몸에 힘을 푸는 동작과 감각으로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일련의 필라테스와 요가를 배우면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 (이 운동을 강권한 이들은 내 사랑하는 여성 친구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감사하지만, 운동에 재능없는 인간임은 판명났다. 그런데도 그녀들은 말한다. 그래도 해. 계속 하는 게 중요해.) 


나에게 삶은 코에 바람을 넣고 어깨를 편안하게 풀어 지긋이 상대를 바라볼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꼭 쥐어있는 두 손이었다. 그 두 손에는 대부분 풀어야할 숙제들과 마감해야할 기사들, 그리고 하루치의 일당을 위한 노동이 쥐어져있었다. 이 손을 풀면, 아래는 절벽이다. 나는 지금보다 더이상 가난해지고 싶지 않았다.


긴장. 그건 내 가난한 가족이 물려준 언어이자, 내가 가진 유일한 언어였다.

긴장은 나를 글쓰게 했고 촉박한 시간에서 마감을 마칠 수 있게 해주었다.

긴장은 가난한 내가 유일하게 사회에 맞추어 속력을 낼 수있게 해주던 그 무엇이었다.



언젠가, 처음으로 들어간 한 직장에서 나와 무관한 옆 부서의 편집장은 내 굳은 어깨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딱딱하네. 엄청 굳어있네.

그리고 신발 끄는 소리를 내며 다른 부서로 사라져갔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노트북을 바라보다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대체 내게 왜 저런 말을 한 거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그것이 경멸의 신호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내가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맥락없이 어린 여자의 어깨를 만지진 않았겠지. 


이후에 그는 또 한번 내 책상의 근처로 온 적이 있다. 점심시간이었고, 그 주위로는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이제 막 내가 허리를 앞으로 숙인 채 광인처럼 타자를 치는 모습을 흉내내고 있던 참이었다. 나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찡그렸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화면을 보고, 계속해서 타자를 쳤다.


얼마 뒤, 그는 횡령 혐의로 회사를 나갔다. 아마 그가 떠나는 그 순간에도, 나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미친듯이 타자를 치고 있었겠지. 중력에 조금도 저항하지 않은 채 굽어진 어깨로. 오늘 치의 일을 못할까봐 초조해하면서. 온 몸이 앞으로 긴장된 채로.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 기억이 떠오른 것은, 얼마 전 채용신체검사서를 위해 엑스레이를 찍었기 때문이다. 작은 방에 빛이 번쩍였다. 이윽고 남자 원장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척추가 엄청 휘었네. 하하하. 

이것 봐. 이쪽으로 휘니까 또 반대쪽으로 되돌리려고 하다가, 또 휘었네.


그는 검정색에 흰색으로 표시된 내 뼈를 볼펜으로 집요하게 가리켰다.

나는 맨 손을 뻗어 그의 척추를 구부려뜨리고 싶었다. 이유는 적고 싶지 않다. 내가 그를 가만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돌렸다.


나는 다시 물에 젖은 종이처럼 늘어진 요가 매트 위로 돌아온다. 측만인 건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비뚫어진 내 몸을 제대로 마주한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어쩌면 초등학교 때보다 더 단단히 휘어서, 지금에서야 내 걱정 레이더에 들어온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 휘어진 자국이, 내가 열심히 살아온 자국 같아서. 그런데 어딘가 잘못 살아온 자국같아서 병원에서 좀 머리가 어지럽다. 그리고 들린다. 하하하, 웃던 파마 머리 원장의 그 웃음이. 내 삶이 웃겨요? 웃기냐. 묻고 싶다. 희끗한 머리와 늙음을 가리려 파마한 니 머리가 웃기다고 말하고 싶다. 짜증난다.


*


나는 다시 요가원이다. 

오늘의 동작을 반도 못 따라갔지만, 착실하게 휴식 시간은 챙기고 있는 중이다. 불꺼진 방 안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린다. 이제 천천히, 스스로의 힘으로 척추를 반듯이 맞춰 보세요. 선생님, 아니 그게, 힘 준다고 맞춰지나요.  천천히, 다리를 높이 들어보세요. 손도 뻗어요. 허공으로 오늘 내가 했던 잡생각들 모두, 털털털, 털어버리세요. 선생님, 그게, 턴다고 털어지나요. 그리고, 털고 나면 뭐가 남는데요



나는 이제 요가 4일차다. 아직 이완을 한참은 덜 배웠다. 

어쩌면 한 평생이 걸려도 못하겠지. 


종잇장처럼 그저 매트위에 늘어져있는 것. 그것은 몸의 방치이지 이완은 아닐 것이다.


긴장과 이완을 필요한 타이밍에, 적절하게 연주할 수 있는 것이 모든 몸 쓰는 일의 기본이라면 그건 좀 사는 일과 닮은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운동도 삶도 정말 어렵고 두가지 모두에 재능이 없다. 그렇지만 3개월의 요가를 등록했고, 삶도 살려고 하고 있다. 정말, 잘 하고 있다. 요가를 추천한 K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그래도 계속해. 자기 속도대로, 계속해보는 게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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