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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Sep 30. 2020

인문학도의 코딩에 관한 명상

엄마가 말했다. 그러지말고 코딩이라도 배워라. 인문학도의 우는 얼굴.

퇴사를 한 지 벌써 1년이 지나간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부는 바람처럼 얼굴로 후갈겨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서서히, 욕조 물에 몸을 넣는 듯이 깨달아가는 지난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손끝, 그다음에는 마디, 그 다음에는 손등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온 몸에 뜨거운 물이 끼얹어지는 느낌. 나는 잠수한다. 아아아, 나 정말 망했구나. 왜 하필 욕조의 은유를 썼을까. 퇴사 후 공백기 1년이 지난 인간의, 물경력의 은유인가.


그렇지만 위의 은유는 틀렸다. 왜냐하면 내 오래된 집(이 말도 틀렸다. '내집'이라니!)에는 욕조가 있을리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한 평생을 내가 망할까봐 두려워해왔는데 이제야 정말 망한 것이 실감이 난다. 시작은 알바-잘리기 였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우리의 사장님은(사장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노동자가 왜 주인을 존경하는가? 정말...미쳤군.) 어느 날 나에게 잘해주었다. 원래 나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일 잘하는 젊은 학생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당시만해도) 어른들이랑 대화를 하는 데 issue를 겪고 있는 인간이라서 아이, 참 잘된 일이다 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사장님이 잘해주니까 무서웠다. 일이 다 끝나고 창고로 나를 불러서 말했다. "미안해. 내일부터 오지마."


그 여파가 이렇게까지 큰 줄은 몰랐다. 

지금은 내 통장의 액수가 내 수명처럼 느껴진다.


친구에게 미안하다면서 유서를 쓰기로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놓고 나는 내일 공장에 이력서를 내러 가볼 참이다. 닭의 목을 끊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사실 치킨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닭띠다. 


어쩌면 이것은 아마 내 유서의 일부가 될 것이다.

나는 유서는 쓰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어쩌면 모든 것을. 아, 자영업에 기대어 사는 것은 힘든 일이구나. 내가 일문학과를 나와서 가장 유용하게 생각하는 단어는 '프리타'였다. 알바만 하면서 생을 사는 인간들을 일컫는 말이다. 교수님은 은연중에 이 단어에 문제를 제기하라고 했지만, 나는 그것을 꽤나 유용하게 받아들인 셈이다. 아, 저기에 내 인생의 미래가 있다. 저렇게 살아도 되는구나.나는 마감을 치느라 버석버석하게 건조해진 얼굴로 아메리카노의 얼음을 씹으면서 교수님이 틀어준 PPT의 빛나는 화면을 바라봤다. 프, 리, 타. 아름답다. 세상에 이런 단어가 있었구나. 이것이 희망이 아니라면 무엇이 희망인가? 


물론 리포트에는 "프리타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일자리 없음, 좋은 조건 없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음,에 관한 젊은이들의 자학적이며 유희적인 투쟁"을 말하는 것이라고 과도하게 의미화해서 적었다. 나는 A+를 받았다. 학교는 정말 너무 쉽다. 교수님이 생각하지 못하는 의견을 적어서 내면 A+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내는 것은 나에게는 식은 김밥 먹기처럼 별로 하고 싶지는 않지만 굉장히 적극적으로 하게 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배가 고프니까. 그거라도 먹어야지.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과정을 참을 수 없다. 나는 말하자면, 마시멜로 실험의 '성공하지 못하는 아이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인 셈이다.


당장 이 사람이 내게 마시멜로를 준다고 해놓고 주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은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전자레인지에서 땡 소리가 울린다. 친구의 김밥이 이미 다 데워졌다. 나는 왜 편의점 김밥을 데워먹느라고 2분을 낭비하는 지 이해할 수 없지만. (늘 식은 김밥을 주머니에 쑤셔넣듯이 입 안에 쑤셔넣으며 리포트나 기사 마감을 치고 있었다)


"그렇게 살거면, 코딩이라도 배우는 게 어떠냐. 세상이 다 바뀌고 있다."


코로나 이후로 유튜브를 사랑하게 된 엄마는 요즘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얼굴을 돌린다. 코로나로 알바에 잘리니까 이제 코딩을 배워야 하는 건가? 나는 대학교 4년을 꽉 채워서 공부했는데 또 뭘 배워야 하는가? 현실을 도피하려 유튜브에 들어가면 '평생 직장의 붕괴, 위기가 기회다! 재교육이 답이다'이라는 자기계발 유튜버들의 언설들이 뜬다. 그러면 나는 조용히 가만히 콩껍질이나 까는 ASMR이나 보고 영상 속 타오르는 장작이나 보면서(세상에, 살면서 장작 타는 걸 실제로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슬프군) 정체된 상태로 의자에 붙박여 있고 싶지만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명상을 해보는 게 어떨까. 나는 눈을 감는다. 그러나 이 명상은 실패한다. 계속해서 '코딩을 배워야하는 것일까?' '코딩을....'과 같은 언어들이 장작처럼 모락모락 타오르기 때문이다. 아. 나 진짜 망했다. 


아아, 우리집은 정말 망할 일만 남았다.

하지만 코로나가 아니었다고 망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볼 것도 없다!)


나는 유튜뷰를 끈다. 까만 밤하늘의 단무지같은 달이나 쳐다보고 있다.(담배는 피지 않는다. 비싸고 생각보다 건강 챙기는 편이다.)


달님, 내가 바란 건 프리타처럼, 나 먹을 양식을 챙기면서 해야하는 일(좋아하는 일이라고 부르기에는 고통이 크니까!)을 하는 것이었어요. 부자 되게 해달라고 한 적 없잖아요. 안 그래도 낮은 기준으로 살고 있는데, 나한테 기준을 더 낮추라고요? 아니 글쎄, 아니면 코딩을 배워서 또 언택트 사회에 맞춰서 재도약하라고요? 아니, 그럼 지금까지 배운 건 뭔데요? 세상에. 제가 인문계간 거 잘못이고, 영화나 글쓰기 같은 것들 사랑한 건 죄라고 쳐요. 그런데, 세상에. 코딩은...어디서부터 어떤 책으로 몇쪽부터 시작해야하나요?


*


그러나 나는 코딩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얄팍한 것을 살려 새로운 곳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 

그런데 왜, 한달을 4일 채우지 않고 꼬박 일했는데. 

세상에 왜 내 통장에는 100만원만 꽂혀있을까. 사무실에서 월급을 확인한 뒤 환장하고 기절한 척 하려다가 사회인의 겸허한 마음으로 자제하고 두 시간의 지하철을 거쳐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는 순간 만큼은 코딩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멈출 수 있으므로. (그렇지만 회사에서 내 노동이 100만원으로 산정되는 것에 관해서는 제대로 생각을 해보고 말을 해볼 예정이다! 그렇지 않으면...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 브런치 첫 글이 될 것이다.

브런치 관계자 여러분, 제발 저 좀 작가 좀 시켜주세요. 

이제와서 코딩 배우기엔, 전 사랑하는 글쓰기의 시간도 부족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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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그렇게 이 글이 브런치의 첫 글이 되었다. 나는 3개월째 어떤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저 글에 언급한 회사), 아, 여기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또다시 대하 드라마 분량이 필요하겠다. 그저 나는 이렇게 적는다. 지금 이 글을 중얼거리고 있는 이곳은, 그 회사의 가장 끝에 있는 내 자리다. 오늘은 추석 연휴 첫 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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