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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인 Feb 20. 2023

나의 베프

"자니"

술자리에서 장난스레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 12시가 지난 시간이지만 이 친구는 반갑게 전화를 받아줄 것 같았다. 친구는 "왜, 무슨 일이야?"라고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나 지금 술 마시는데 친구 이야기가 나와서 전화했어. 네 생각이 나서." 이 말을 들은 친구는 맥이 풀린 목소리로 이 시간에 전화가 와서 너무 놀랐다면서도 반가운 기색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조만간 만나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당시에는 친구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충동에 갑자기 전화를 한 것이었지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날의 술자리에서는 베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각자가 자신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나에게도 '어떤 사람이 베프라고 생각하나요, 베프가 있나요?'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나는 늘 마음속으로는 나를 이해해 줄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질문에 잠시 머릿속으로 그런 사람을 헤아려보려니 단번에 생각나지 않았다. 갑자기 내 삶이 잘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고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중 아무 계산 없이, 편견 없이 서로를 대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떠오르는 사람은 몇 명 있었다. 그렇지만 너무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서 상대방도 마음속으로 나를 그렇게 인정하고 있을까, 나만의 착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이 좁게도 그런 의구심에 선뜻 누구 한 명을 고르기가 힘들었다.


그날 전화했던 친구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 친구와는 주변에 다른 친구들도 함께였지만 나와 가장 친밀했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는 특별함이 있었다. 중학생 시절 만난 우리는 교환편지장을 주고받고 고민을 털어놓으며 서로에게 스스럼이 없이 대했다. 자연스레 우리 사이에는 비밀이란 없는 듯했고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다른 곳으로 진학했고 대학생이 되며 서로의 삶이 너무 바빠졌지만 그때에도 우리는 자주 연락했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우리 사이는 앞으로도 늘 가깝고 친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로의 가정을 꾸리게 되고 사는 곳이 멀어지다 보니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못하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다. 가끔 만날 약속을 잡아도 많은 친구가 모일 수 있는 날짜로 정해서 다 함께 만나고, 연락마저 용건이 있을 때만 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우리의 삶은 너무도 달라졌고 본인의 삶에 집중하며 상대방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일도 점점 사라진 것 같았다.

그날 그 술자리에서 나의 베프를 생각하며 이 친구와는 예전과 똑같은 마음일까 스스로에게 물으니 단호하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내게 가장 많이 생각나는 친구였고 이런 내 마음도 얼마간은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전화를 한 것이었다.


예전에는 아주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났던 친구처럼 편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과 함께한 물리적 시간이 길었고 서로에게 마음을 터놓았던 깊이가 존재하기에 오랫동안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아도 관계에는 변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 내가 나의 삶에 충실하듯이 상대방도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내가 모르는 소중한 것들이 많아졌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서로 공유하지 않은 시간이 길어지는데 과연 여전히 서로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진정으로 편하고 절친하다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은 변치 않다고 여기지만 예전과 똑같을 수는 없다.

내가 마음을 나누며 지냈지만 이제는 내가 상대방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옆집 사는 이웃보다도 더 아는 것이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관계가 꽤 많아졌다. 만나면 웃고 이야기를 하지만 현재의 이야기보다는 과거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돌아오는, 아름다운 추억 속의 사람들. 

나는 왜 이런 관계가 많아졌는지 알고 있다. 내가 만나지 못해도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 메시지 하나 보낼 마음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 마음은 한결같다고 믿으며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 12시의 전화통화를 한 다음날 친구가 내게 전화를 했다. 우리도 그 시간까지 같이 술을 마셔보자고, 함께 늦은 시간까지 있었던 적이 기억이 안 난다며 서운하다고 했다. 사는 곳이 멀어서 정말 크게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핑계로 그런 기회를 만들지 않았던 나의 무심함을 후회했다. 나는 꼭 그러자고 내가 만나러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한밤의 전화를 걸었던 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전화를 걸어 준 친구에게 너무 고마웠다.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런 노력 역시 우정이고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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