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무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범인 Feb 24. 2023

겨울방학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이겠지만 나의 일상은 일주일단위로 흘러간다. 일 년이라는 시간을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단위로 접고 접으면 수많은 일주일이 수북이 쌓이게 될 것이다. 계절이나 특별한 행사로 인해 미세하게 변화하는 것이 있을지 몰라도 나에게 주어진 거의 모든 일주일의 시간은 비슷하게 흘러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정해진 일과에 따라 주어진 일을 하고 주말과 휴일에는 재충전을 하는, 별다를 것 없는 일주일들의 반복이다.


일주일 단위로 나의 일상이 반복되며 흘러가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 일 년 단위로 쌓여있던 일주일들이 4개의 묶음으로 쪼개진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의 단위가 아닌 1학기, 여름방학, 2학기, 겨울방학이라는 학사일정에 따라 분류된다. 나의 학사일정이 아닌 아이들의 학사일정이라는 것이 조금은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학기중과 방학기간 동안의 일상은 내게도 확연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학기 중으로 맞추어져 있는 나의 일상 루틴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는 방학이 되면 변화한다. 아이들은 자유로워지지만 나의 자유시간은 줄어든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서 평범하다고 생각한 생활은 산산이 깨어질 수밖에 없다.


아들이 학교에 입학하고 4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방학을 몇 차례 보냈다.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는 딸도 두 해의 방학을 함께 보내면서 이제는 나도 방학 기간의 일상이 익숙해졌다고 생각이 되었다. 집에서 세끼 밥을 해 먹고 조금은 뒹굴뒹굴 게으름도 부리고 가끔은 여행이나 체험학습 프로그램들을 예약하여 특별한 이벤트들을 만든다. 방학 동안 학습 스케줄을 짜서 공부를 바짝 하는 아이들도 있다던데 이런 건 우리 아이들에게는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이 공부는 때가 되면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웠다. 약간은 느리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한두 달의 시간이 지나고 개학을 하게 된다. 사실 아이들이 이런 방학기간을 알차게 보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 기간 동안은 미루기와 게으름, 느긋함과 여유로움을 더 많이 배웠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혼자 있는 시간을 거의 가질 수 없었던 나는 많이 지쳐있지만.


그런데 이번 겨울방학은 특별했다. 아니, 특별하다기보다는 많이 바빴다. 방학인데도 아이들이 준비하고 목표하는 것들이 많아서 우리의 일주일은 빠르고 분주하게 흘러갔다.

유소년 축구선수로 활동하는 아들의 경우 겨울방학은 체력을 키우고 경기에 대한 감을 익혀야 하는 기간이다. 그래서 지난 1월에는 아들의 축구팀에서 제주도 전지훈련을 17일간 다녀왔다. 많은 걱정을 했지만 이런 나의 걱정들이 무색하게도 아이는 건강하고 부쩍 자라서 돌아왔다. 아이의 얼굴은 겨울 햇살에 타서 새까맣고 거칠었고 머리카락은 뻣뻣해졌다.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으로 몸은 탄탄해졌다. 아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부모 없이 2주가 넘는 시간을 운동하고 돌아온 아들이 참 대견했다. 그러나 쉴 틈도 없이 훈련을 다녀온 후 아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2월에 참가한 피아노 콩쿠르를 위해 피아노 학원에 가서 연습을 했다. 축구 일정 때문에 연습할 시간이 많이 부족했는데도 축구클럽에 가기 전후로 틈이 날 때마다 연습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2월 말에는 축구 대회를 8일간 참가했기 때문에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하나도 없었다. 또한 이런 와중에도 아들이 갑자기 뜨개에 푹 빠졌는데, 뜨개기법을 익히라고 준 실과 바늘을 시간 나는 틈틈이 잡고 있다. 성격이 나와 닮은 아이라 한번 꽂히면 정신을 못 차리는가 보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는 것은 "엄마 나 뜨개 하는 건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이야." 이렇게 신신당부를 한다.

딸아이는 2월 태권도 국기원 1품 심사를 다녀왔다. 1년 정도 배운 태권도의 심사를 간 것인데 평일은 한 시간, 주말은 두 시간씩 태권도장에 가서 열심히 준비했다. 매일 가서 연습하는 것이 힘들 만도 한데 늘 일찍 가서 더 많이 연습하고 오는 딸이 대견했다. 또한 피아노 콩쿠르를 위해서도 딸아이는 주 6일 학원에서 한두 시간씩 연습하며 방학 내내 준비를 했다. 나중에는 너무 익숙해져서 지루했을 텐데 불평 한번 없이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갑자기 시작한 한자는 훈장님의 권유로 7급 시험까지 신청하게 되었는데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쉬웠다는 딸의 말로 예상컨대 합격할 것으로 믿는다.

이번 방학 동안의 일주일들은 이토록 바빴고 매일이 분주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아서 참 만족스럽고 보람차다. 여행이나 체험과 같은 활동을 할 시간은 부족했지만 지금까지 즐겁게 해 온 것들에 대해 경연하고 스스로를 평가할 수 있음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하는 활동인데 나는 왜 바빴느냐고 묻는다면 아이들 학원 라이딩과 함께 스케줄을 체크해 주고, 세끼 밥을 차리고 중간중간 간식을 챙기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아이들에게는 성장하고 뜻깊은 기간이 된 반면 나에게는 일상의 규칙이 깨어지고 하고 있던 모든 활동들이 중단되는 시간이었다는 것이 조금은 힘겹기도 하였다. 매주 반복되던 일들 중에 글쓰기 모임에 매주 보내는 글을 쓰는 데에는 글 쓸 시간과 감정이 부족해서 애를 먹었고 그나마 보내는 글은 형편없어 보여서 부끄러웠다. 독서모임과 뜨개모임은 나갈 수가 없었고 함뜨에 참여한 뜨개는 진도가 너무 안 나가서 마감 날짜를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난 방학 동안의 일주일들을 잘 보냈다고 기록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 자신만의 일들을 잘 완수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우리 가족의 보람되고 가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좋은 경험을 하며 성장했고 나는 그 성장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 행복하다.

그리고 아이들의 개학도 일주일 남짓 남았다. 이제 일주일, 나도 이제 조금만 버티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베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