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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인 Jul 05. 2023

입맞춤보다 설레는 눈맞춤

독서모임에 처음 나갔을 때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에 어쩔 줄 몰라했던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 웃음이 난다. 나는 누구 한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고 가끔은 허공을 바라보거나 어색해서 말을 뚝뚝 잘라먹곤 했다. 내가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도 다른 사람들은 말을 하는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고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얼굴이 자꾸만 빨개지는 나는 어물어물 말을 이어가면서도 나에게 집중하여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푸딩처럼 말랑말랑 해지는 것을 느꼈다. 모임을 나간 처음 얼마간은 감정의 반 이상이 어색함이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들이 너무 좋아서 괜히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다. 그리고 누군가와 진지하게 눈을 맞추고 이야기한 적이 언제였던가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나의 시선은 말을 하는 사람을 바라본 적이 별로 없다.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아이가 위험에 처하지는 않는지 나의 시선은 늘 주변을 살피고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며 대화를 이어가곤 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서로를 바라보지 않아도 괜찮았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남편과 이야기할 때에도 시선은 아이들이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식탁이나 음식에 시선을 꽂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속 깔끔한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하루를 잘 보내는 미션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그런 장면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없이 참석하는 모임에서 달랐던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간혹 친구들을 만나거나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한 자리를 떠올려 보았는데 여러 사람이 만나는 자리라서 그런지 대화는 이리 튀고 저리 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날들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일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며 상대방과 오랫동안 눈을 맞추는 것은 거의 드문 일이었다. 점점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워졌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집중하면 화제를 전환하거나 다른 곳으로 눈길을 주곤 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해졌고 대화를 할 때에 상대방과 눈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모임에서의 대화와는 다르게 독서모임에서는 한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오랫동안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말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들을 일시에, 오랫동안 받는다. 모임을 나간 초반에 나는 그 시선이 불편해서 한 사람에게 오랫동안 눈길을 주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로 옮겨가곤 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듣다가도 나와 갑자기 눈이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서 그 눈맞춤은 5초를 넘기기 힘들었다. 자꾸만 흔들리는 나의 눈동자는 기댈 곳을 찾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나와 눈을 맞추는 그 시선에 무장해제되는 순간이 왔다.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상대방에게 온전히 마음을 전달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오랫동안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려고 했던 것 같다. 조금은 어색했지만 온 마음을 다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러기로 마음을 먹고 상대방을 바라보자 그동안은 받기만 했던 마음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는 남편과도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려고 해 보았다. 어색해진 남편이 '왜 자꾸 쳐다봐'라고 물어보기에 조금은 마음이 상했던 것 같다.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 이렇게도 힘든 일이었다니, 함께 했던 지난 세월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내가 눈을 맞추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고, 서로에게 집중하는 첫걸음이라고 눈을 보고 이야기하니 갑자기 대화가 부드럽고 진지하게 이어졌다. 늘 티격태격하며 의미 없는 대화만 하던 남편과 참 오랜만에 느끼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는 의미이다. 눈을 보면 서로의 감정과 진심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말을 하기도 전에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자연스럽게 품게 된다. 내가 독서모임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말할 때 나의 눈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거울로 나를 바라보는 시간도 없던 그즈음에 나에게 입맞춤보다 설레게 눈맞춤을 해주었고 지금도 여전히 나를 바라봐 주는 멤버들에게 너무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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