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눈이 떠졌는데 아무 계획이 없는 날, 쉬려고 마음먹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가 ‘안 되겠다,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이 드는 오후,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지만 외출이 하고 싶을 때 나는 도서관에 간다. 내 키보다 큰 높이의 서가에서 책 제목과 작가 이름을 눈으로 쭉 따라가며 읽고 책 냄새를 맡는 것이 좋다. 소음이 없는 중에 가끔 들리는 소곤소곤 말소리가 도서관의 공기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도 재미있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가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다시 서가를 눈으로 훑으며 읽거나 읽지 않은 책을 세본다. 우리 집에 있는 책을 만나면 반가워하고, 사고 싶은 책을 마음속에 저장해두기도 한다. 그러다 주변 사람들이 읽는 책이 무엇인지 슬쩍 보면서 무슨 내용인지 상상해보기도 하고 공부하는 사람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고 무언가에 몰두하는 다른 사람은 참 멋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책을 사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서점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도서관에 가는 것이 더 재미있고 즐겁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책을 많이 빌려보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책을 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책을 빌려보지 않고 내 책을 들고 도서관에 가곤 한다. 나는 도서관이 갖고 있는 분위기와 냄새, 드나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공기와 소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 같은 공간에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지만 각자 자신의 세계에 빠져있는, 그런 개인성을 유지하게 해주는 도서관은 내게 알 수 없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게 해 준다.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은 동네에 있는 작은 도서관이다. 지하를 포함해 총 네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이 도서관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층을 오르내리는 계단 밑에 위치한 '골방'과 '다락방'이라는 이름의 공간이다. 만화책이 꽂혀있고 좌식테이블이 자리하고 있는 아늑한 공간인데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낙서들이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데 한 몫한다. 이곳은 특히 추운 겨울에 가는 것이 좋은데 따뜻한 온돌 바닥에 몸을 나른하게 녹이며 책을 읽는 것이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누워서 만화책을 보기도 하고 문제집 같은 것을 펴놓고 공부를 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나도 마음이 느슨해지곤 한다. 느긋하게 기대앉아서 책을 읽거나 책이 읽히지 않을 때 아주 가끔은 뜨개를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자주 가지 않던 구립도서관에도 가곤 한다. 도서관 바로 옆의 생활체육센터에서 수영수업을 듣는 딸아이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기 좋다는 이유로 처음 가게 되었다. 서가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책을 읽기 좋은 자리를 발견했기 때문에 그곳에 가는 것이 더 즐거워졌다. 커다란 창을 바라보는 1인용 안락의자가 놓여있는 자리인데 그곳에서 책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푹 풀어지곤 한다. 의자에 잠기듯 앉아서 읽다 보니 가끔 졸기도 하는데 나는 창을 향한 자리에 앉아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볼 거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옆사람이 힐끗힐끗 볼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 이곳에서 책을 읽고 졸다가 1시간쯤 지나면 그날의 피로를 다 풀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툭툭 털고 일어난다. 수업이 끝난 딸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분주한 일상이 다시 시작된다.
요즘 자주 가게 된 도서관 중의 하나는 초등학교 교내도서관이다. 올해 아이들 학교의 도서관 학부모 지원단 임원을 맡게 되었는데 사서 선생님이 출장이나 병가로 자리를 비우게 되면 일일 도우미로 봉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책 대출과 반납하는 것을 재미있어하고 만화책을 쌓아두고 다 같이 읽는다. 소곤소곤 이야기 하지 않고 큰소리로 웃고 떠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아 하며 친구들끼리 뛰어놀기도 한다. 정숙시키기는 하지만 아이들 특유의 장난기와 명랑함을 잠재울 수는 없다. 학교도서관은 활기 넘치는 공간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붐비는 점심시간이 아닌 아이들 수업시간이 모두 끝나고 도서관 문을 닫을 시간이 되면 도서관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놀라운 것은 고학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2-3학년 학생들이고 이 아이들은 혼자 와서 책을 쌓아두고 한참 읽다가 시계를 보고 어디 갈 곳이 있는지 서둘러 나간다. 나의 아이들이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책을 읽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일까,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조용히 읽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참 신기했다. 아직 작은 몸집의 아이들이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골라서 하루의 여유 있는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낸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아이들이 책상에 두고 간 책을 정리하고, 서가에 반납된 책들을 꽂아두고도 시간이 남으면 어린아이들이 만드는 도서관의 분위기를 기분 좋게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고 읽던 책을 펼쳐보기도 한다.
책이 놓인 공간은 늘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가도 도서관에 가면 늘 마음이 느긋해지고 여유로워지는 것이 그 이유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이유도 많겠지만 요즘 나에게는 책과 사람들이 만들어주는 이런 여유로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도서관이 최고의 휴식처이자 즐거움을 주는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