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를 녹이고 계란을 스크램블로 익힌다. 밥을 넣어 볶다가 불을 끄기 전 계란 볶음용 양념간장을 부어 간을 맞춘다. 흰 밥이 간장의 갈색빛을 입고 윤기가 흐를 때가 되면 수수한 한 그릇 요리에 - 농담을 조금 보태어 산해진미와도 같은 맛이 더해진 것이다. 어쩌면 성의 없다고 느껴질지도 모를, 별다를 것 없는 조촐한 요리이다. 하루 세끼 밥을 해 먹는 것이 고되다고 느껴질 때면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이렇게 간단한 한 끼의 밥을 해주곤 한다. 쉽게 완성되지만 아이들도 좋아하는 요리라서 음식이 놓인 식탁에 불평의 씨앗은 없다. 계란볶음밥을 접시에 담아서 식탁에 내어간다. 반찬이라곤 김치와 김뿐이라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 마음이 든 것이 무색하게도 버터로 볶은 계란볶음밥의 고소한 맛에 아이들은 아무 반찬 없이도 연신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어린 시절 아빠가 가끔 차려주셨던 마가린 간장비빔밥이 떠올랐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베어 물며 유년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처럼, 나 역시 버터계란볶음밥을 입에 넣어 오물오물 씹어 삼키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눈앞에 펼쳐졌다. 주발에 뜨거운 밥과 마가린 한 숟가락, 간장을 살짝 뿌려서 비벼먹는 정말 소박한 밥상이었다. 그때도 동그란 밥상의 가운데에 놓인 반찬이라곤 김치 하나였다.
"차라리 암인 게 잘됐어. 깨끗하게 떼어냈다고 하니 관리만 잘하면 괜찮을 거야."
몇 달 전 위에 생겼던 암을 내시경으로 제거하는 시술을 한 아빠는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아무리 시술이 잘 끝났다고 해도 암이라는 병에 걸렸는데 이토록 태연하게 말할 수 있을까 화가 났다. 나는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발끈했다. 하지만 병원비를 걱정하시던 아빠가 선종이 아닌 암이기 때문에 병원비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을 들으니 나 역시도 병원비가 지원되어 다행이다라는 안도와 함께 이럴 수밖에 없는 나의 처지에 서글퍼졌다. 그리고 아빠와의 서먹한 관계 때문인지, 내가 힘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할 말을 찾지 못해 안절부절못했다. 병원에서의 아빠는 편안해 보이셨다. 몸은 이곳저곳 아픈데 만나는 사람들마다 '얼굴 좋아졌네.'라는 말을 해서 자신이 죽을병에 걸린 걸 알았다며 허허 웃으신다. 그리고는 최근에 돌아가신 엄마가 나온 꿈을 몇 번이나 꾸어서 마음이 불안해 건강검진을 받길 잘했다고 말하셨다. 마치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듯 이야기를 하시는 아빠는 어딘지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그 자리에서 화를 내야 할지, 웃으며 그 말을 받아 이어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내 삶 속에서 아빠와 함께한 따뜻한 기억을 세어보라면 열 손가락이 다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아빠와는 무미건조한 시간을 지나왔다. 가정보다는 일이 우선이셨던 아빠와의 지난 세월을 돌아본다. 우리에게 대화는 거의 없었고 아빠의 일방적인 말과 감정이 내게로만 흐른 시간들이었다. 가족에게 닥친 삶의 굴곡을 함께 지나며 나는 서로에게 날을 세우는 것보다는 가만히 그 시간을 흘러 보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화의 순간 내가 입을 닫아버리곤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춘기의 터널을 지나고, 집에서 독립을 하며 관계는 더욱 메말라갔다. 평행선을 그리며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그 간격을 넓히거나 좁히려는 체념도 기대도 없는 관계였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날 병원에서 어색한 미소를 짓고 앉아서 마음속의 달그락달그락하는 소리를 느끼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허허 웃는 아빠의 얼굴과 괜찮다는 말속에 담긴 슬픈 안도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아빠와 나의 팽팽했던 평행선은 삐뚤빼뚤 좁아졌다 넓어지고 굽어지는, 오솔길처럼 긴장감이 없고 규칙 없는 선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아빠와의 편안한 관계를 위해 내가 유지하려고 했던 거리가 과연 필요했던가 하는 감정의 동요를 느끼며 나는 마음속으로 그 자리에서 할 말들을 고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병원에 다녀온 이후 아빠와의 메마른 감정의 더께들이 하나씩 벗겨지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계란볶음밥의 냄새와 맛에 갑자기 어린 시절의 마가린간장비빔밥이 생각났다. 아, 어린 시절 아빠가 이런 밥을 해주셨었구나. 입안을 가득 메우는 짭짤하고 고소한 그 맛에 반찬 없이도 한두 그릇을 단숨에 해치우곤 했는데...... 어린 시절 부엌일은 손도 안 대시는 아빠가 엄마가 안 계실 때면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차려주셨던 이 소박한 밥상은 아빠에게는 최선의 노력으로 차린 것이었다. 그 음식이 생각난 것은 어렸던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자식을 위하려는 아빠의 마음을 이제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서 일지도 모른다. 다정하지 못하고 늘 무뚝뚝하셨던 아빠에 대한 반감으로 외면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나는 감정표현에 서투르신 아빠가 병원에서 불안한 마음을 허허 웃는 농담들로 표현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 갑자기 생각난, 어쩌면 새로운 감정으로 다가오는 그 기억들과 그와 연결된 또 다른 기억들은 앞으로 아빠와 나의 관계에 다른 색을 입혀줄지도 모르겠다. 잃어버렸던 마들렌, 아니 마가린 간장 비빔밥의 시간을 되찾으며 거리를 두고 느끼지 않으려 했던 아빠와의 시간도 되찾길 기대한다. 그리고 오늘, 고체의 버터 덩어리가 뜨거운 팬 위에서 사르르 녹아버리는 모습을 보며 딱딱하게 굳어있던 내 마음도 조금씩 녹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