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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Jul 14. 2022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이유


어제 친구와 긴 시간 통화를 했다.


나와 같은 공동체에 있던 그 친구는 인간관계 때문에

공동체를 떠났다. 떠날 때와, 떠나고 나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친구는 당시 겪었던 '상처' 때문에, 그 '상처'를 준 사람들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과 함께, 건강하지 못한 말들을 내뱉는다. 그러나 하나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면, 그렇게 부정적인 말을 내뱉음에도 친구는 이 공동체로 다시금 들어오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 있음에도, 이 공동체가 자신에게 큰 의미였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공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시금 이곳으로 들어오고 싶어했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나는 2년 전 통화를 할 때나,

어제 통화를 할 때나 같은 말을 했다.


너의 감정을 정확히 봐야한다. 아플 수 있지만, 파고 들어가봐야 한다. 심연 깊은 곳에 박혀있는 것 같은 그 감정이 두려울 수 있지만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상대방이 어떤 부분을 건드렸기에 그 부분이 트리거가 되어 너에게 상처로 남게 되었는지. 상대방이 너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너의 행동은 어떠했는지. 상대방의 공격적이고 무례한 언사에,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아서 그저 회피하지는 않았는지. 상대방이 너의 상처를 후벼 팔 때도, 사람 좋은 척 그냥 웃고 넘기지는 않았는지.


이런 친구들의 특징 중 하나는, 겉으론 괜찮아보여도 속으론 그 상처가 곪고, 썩어들어간다는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땅히 표현되었어야 할 방어막이 거친 칼날이 되어 내부를 향하게 되고 결국 자신의 마음만 갉아먹게 된다. 자신의 용기없음을 자책하기도 하고, 그 마음이 커지면 자신을 공격한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점점 키우기도 한다. 그 분노는 해소되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져, 내 안의 또 다른 트리거로 작용하게 된다.


그 분노는 하나 둘, 내 속을 끊임없이 갉아먹는다. 속을 갉아먹던 분노는 마침내 혐오와 분노, 냉소라는 이상한 형태로 변화되기 시작한다. 인간에 대한 혐오나 사회에 대한 분노, 공동체에 대한 냉소 같은 것들이 자라나고  이런 것들은 어떻게든 내 삶과 가족, 인간관계, 나아가 사회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친구는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너무 커서, 그 사람을 생각만 해도 욕이 나오고 눈물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공동체를 찾고, 새로운 곳으로 가면 된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지난 상처들을 깨끗이 잊어버리고, 새 출발을 하면 된다. 그러나 이 친구는 다시금 이 공동체로 들어오고 싶어했고, 이곳에서 새 출발을 하고 싶어했다.


그런 상대가 몇명이나 되냐고 물었다. 3명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상대방을 찾아가라고 이야기했다. 찾아가서 너의 감정을 이야기하라고 했다. 너가 어떤 말에서 상처를 받았고, 상대방의 어떤 행동에서 화가 났는지, 어떤 부분에서 무례하다고 느꼈는지 똑바로 알려주라고 했다. 대신 감정적으로가 아닌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대화'를 통해 너의 의도를 전달하라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관계가 틀어진 경위에는 어느 한 쪽만의 잘못만 있는것이 아니기에 너의 부족한 부분 또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너가 상대방에게 느꼈던 서운함이 있는 것 처럼, 상대방 또한 네게 느꼈을 서운함과 혹시 모를 분노가 있을 수 있기에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서로가 받아들이고 서로 대화를 통해 풀어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여야 만나는 것이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공동체로 돌아오고 싶은 그리움과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만든 누군가에 대한 분노가 공존한 상태에선 영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좋지 못한 생각들이 계속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기에, '문제'와, '걱정거리', '두려움'을 똑바로, 정면으로 마주하고, 대면하라고 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우리 앞에 범람한 흐릿한 안개를 걷어내고, 곪은 상처를 깔끔하게 도려낼 수 있다.






피터슨은 이런 류의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이런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우선 상황은 나빠지는 게 아니라 더 좋아져야 해'  라는 아주 순수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둘째, 실수와 솔직하게 마주할 각오를 하고, 어느 지점에서 어떤 이유로 올바른 길에서 벗어났는지 밝혀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셋째, 기꺼이 변화를 결심해야 한다. 하지만 이 결심은 어떤 문제를 뒤에 남겨두고 돌아보지 않겠다는 결심과 다르다. 둘을 혼동하면 가장 손쉬운 대응법을 선택할 위험이 있다. 눈을 딴 데로 돌리고,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동시에 넘을 수 없는 벽을 쌓아 진정한 대화를 차단하는 것이다. 이런 고의적인 외면이 장기간 지속되면 삶은 안개에 싸인 듯 흐릿하고 눈에 보이는 어떤 형체도 없이 공허하며 혼돈으로 가득 차버려서 결국 우리를 당황과 경악에 빠뜨린다.


...


가장 좋은 것은 진실을 밝히는 것, 즉 안개를 걷어내는 것이고, 거기 숨어 있을 것 같은 날카로운 모서리가 '진짜'인지, '환상'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


세계에는 숨겨진 위험과 기회가 가득하다. 위험과 마주치기가 두려워 모든 걸 안개 속에 묻어둔다면, 그토록 외면해오던 것을 향해 돌진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을 때 당신은 이미 다리가 풀려 있을 것이다. 당신은 의식의 밝은 빛으로 흐릿한 안개를 깨끗이 날려버릴 수 있다.


원치 않는 것을 안개 속에 묻어두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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