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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윤로윤 Jun 23. 2023

[괜찮은 인생을 살고 싶어] 과수원집 딸

아빠의 마음만 생각해도 뭉클해지는 여름 일기

봄이 지나고 초록빛 짙은 여름이 시작되면 나는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365일 중 360일을 과수원으로 출퇴근하는 아빠를 보면, 고작 더운 여름의 날씨를 불평하는 것은 어느새 나에게는 사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이었다. 여느 때 와 다름없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웬일인지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복숭아 재배 책을 좀 구해야 하는데, 서점에 가도 없고 도서관에 가서 찾아도 안 보이는데, 인터넷으로 구해볼 수 있겠니?”​


한창 일중독으로 살아가던 시절이라, 아빠의 주문이 달갑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빠가 나에게 구체적인 주문을 하는 경우를 손에 꼽을 정도였던 지라,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복숭아 재배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빠는 목수 일을 하셨고, 집에 문제가 생기면 고쳐주고 하는 설비도 꽤나 오래 해 오셨다. 집을 짓고 고치는 일을 해오던 아빠에게는 농사라는 최종의 목표가 있었으며,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남겨주신 황무지와 다름없는 산 아래 길쭉한 밭이 있었다.


복숭아 재배 책 이 도착하고 나서 아빠는 그 책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공부를 해가며 2년 정도를 황무지의 땅을 직접 일구며 준비를 하셨다. 목수였기에 쉴 수 있는 목조주택 또한 뚝딱뚝딱 만들어 내셨다.


여름이 되면 맛 좋은 복숭아를 실컷 먹을 수 있는 ‘과수원집 딸이 되었다’ 주변에서 복숭아를 사고 싶다는 주문이 종종 있었지만, 이미 경매시장에서 좋은 값을 받고 있었고, 직접 나르며 돈 계산까지 하고 싶지 않아 마다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몇 해가 잘 흘러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엄마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올해 복숭아 경매 값이 너무 떨어졌어, 아빠가 속상해서 경매시장에 팔고 싶지가 않데”,​


그동안 크게 미동이 없던 나였는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외운다고 했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했다. 마케팅부라는 곳에서 10년 가까이 일을 해온 나에게, 복숭아를 팔아보는 일은 두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일이었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아빠가 회사로 복숭아를 실어다 주면, 평일에는 퇴근과 함께 열 박스 안 팍으로 배달을 해주었고, 주말이면 빈틈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복숭아 박스를 꽉꽉 채워 하루에 50박스씩, 주말 동안 100박스씩 나르곤 했다.


꼼꼼하다면 빠지지 않는 나인데, 아빠는 나보다 한수 위 일뿐더러 철저한 원칙주의자였으니, 맛과 모양만큼은 어디 내놔도 자신 있는데 맛 보여줄 기회가 없는 게 아쉬워, 직접 집 앞까지 가져다주자고 생각을 했던 터였다.


주말이면 5킬로씩 되는 복숭아 박스를 종일 실어 내리는 딸이 안쓰러웠나 보다.


“너희들 키우면서 남들처럼 제대로 해준 게 하나 없는데, 아빠 도와준다고 쉬지도 못하고 이렇게 고생해서 마음이 좋지 않아, 미안해”​


무뚝뚝한 아빠의 진심 담긴 말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돈다. 애써 참으며 말을 이어 갔다.​


“아빠는 일 년 내내 과수원에 살면서 고생하는데, 이까짓 건 고생 축에도 못 끼지, 당연히 해야지 어떻게 안 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니까 괜찮아”​


그리고서는 붉어지는 눈시울이 들킬까 서둘러 과수원을 빠져나왔다.


한 해를 발품 팔아 보내고 나니 다음 해, 그다음 해의 복숭아는 점점 인기가 높아졌다. 이제는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배달을 하지 않는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주문이 시작된 만큼 과수원의 일이 바빠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복숭아를 따기 시작하면 온 가족이 과수원으로 매달린다. 각기 맡은 역할을 잘 해내고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는지 모색하는 일은 당연시되었다.


그렇게 여름이 시작되면, 평소에는 한 달에 한 번이나 할까 하는 아빠와의 통화가 하루 열 통화는 기본으로 늘어난다. 나는 주문, 발주, 홍보, 마케팅, CS까지 모든 역할을 통틀어 하는 관점이지만, 아빠는 원칙주의자인 농부의 입장만을 내세우곤 한다. 아빠랑 나는 잘 해내고 싶어 여름만큼은 꽤나 많이 싸운다. 열 번을 싸우면 아홉 번은 이기고 마는 못된 딸이지만.


우체국 아저씨, 시골 동네 어르신들, 아빠의 친구들이 과수원으로 다녀가는 날에는 아빠는 종일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주고받는 대화는 매번 똑같은 내용으로 흘러간다.

“어쩜 이렇게 딸들을 잘 키우셨어, 아주 든든하시겠어요”.​


매번 듣는 질문에도 질리지 않는 모양인지 아빠도 매번 똑같은 답을 하신다.​


“억지로 시켜서는 절대 안 할 텐데, 지들이 회사 다니고 바쁘면서도 알아서 도와주고 하니까 그게 고마운 거지, 나는 아무것도 못해주고 키웠는데 그게 제일 미안해”.


아빠의 묵묵한 세 계절이 비로소 지나고 나면, 아기 엉덩이 같이 탐스러운 복숭아들이 주렁주렁 뽐을 낸다.​


매번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키웠다는 아빠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탐스러운 복숭아를 키우기 위해 아빠는 눈이 내리는 한 겨울에도 복숭아나무를 살피고 한 그루 한 그루 짚 옷을 입혀준다. 눈이 내리는 한겨울에도 따뜻한 온기를 지키고 싶어 먼지 묻은 외투 속에 꽁꽁 숨겨오던, 아빠의 붕어빵 한 봉지를 기억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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