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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윤로윤 May 27. 2023

[괜찮은 인생을 살고 싶어] 나의 집

미운 곳 하나 없는 나의 공간



스무 평 남짓했던 집에서 서른 평이 넘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오래된 낡은 아파트에서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꿈에 그리던 평수였다. 더할 나위 없이 벅찼지만, 가슴 한 켠 에는 대출이라는 부담감이 시작되었다.


1남 4녀에 부모님까지 하면 일곱 명 의 가족이었다. 둘째인 나의 기억으로는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까지의 우리 집 은, 방 이 한 칸 이거나 작디작은 두 칸이었다. 셋째가 태어나던 해,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세 살이 를 벗어나 조그마한 단층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부모님은 연신 ‘우리 집’이라며, 집안 곳곳을 자랑처럼 내세우시곤 했다. 그리고 그 집에서 넷째가 태어나고, 큰언니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때부터인지, 아니면 사춘기가 시작되었는지, 내 방 하나 없는 집이 비좁고 어둡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가 끝나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쩐 일인지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을 엄마가 작은방 문턱에서 무언 갈 열심히 적고 계셨다. 반가운 마음에 엄마가 집에 있는 이유를 물었더니, 다음 달 이면 우리도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는 것이다. 아파트라니,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삿날이 되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반쯤 정도 실망으로 번졌다. 아파트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엘리베이터 가 없는 5층짜리 낮은 아파트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전 집에 비하면 대궐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언니랑 같이 쓰긴 했지만 기다리던 방도 생겼으니 이 정도면 행복하다 싶었다.


새로 이사한 집의 기운이 좋았는지, 그 집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다섯째 막내아들이 태어났다. 딸만 내리 넷을 낳아야 했던 엄마 아빠의 마음고생이 감격으로 번지는 순간이었지만, 대궐 같던 우리 집은 어느새 다시 작디작은 낡은 아파트로 변해갔고, 친구들을 집으로 부르는 일이 점점 거리껴지는 시간들로 흘러갔다.


일곱 식구 꽉 찼던 집에서 언니가 먼저 시집을 가고, 나에게도 집을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결혼 일정이 잡히고 신혼집을 알아보기 시작할 즈음, 아버님께서 주택을 지어줄 테니 살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새로 지어 주신다는 주택은 좋았지만, 새 집이 지어질 그곳의 부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행으로 나와 만두 씨는 고민할 겨를 없이 곧바로 죄송한 거절을 드리고, 형편에 맞는 아파트를 골라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거실에 소파 하나 제대로 놓을 수 없는 아담한 공간이었지만, 마음 내키는 대로 짜 맞출 수 있는 집이었기에 안락하고 좋은 곳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고 했는가, 처음 느꼈던 안락했던 신혼집은 아이가 태어나고 짐이 늘기 시작하면서, 어린 시절 살았던 그 집 들처럼 부족한 부분들만 보이는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보다 자연스레 밖을 찾는 시간들이 많아지고 나니, 더 큰집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청약의 열풍이 강하던 시기였는데, 보란 듯이 청약당첨과 추가모집의 기회까지도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고, 당첨 발표가 나던 자정에는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뜻이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꽤나 오랜 시간을 찾고 헤매어, 드디어 우리가 바라던 이점들을 모두 갖춘 집을 구해 이사를 했다.


그러나 이사의 설렘도 잠시, 주택담보 대출이라는 생애 가장 큰 빚을 지게 되니 꿈에 그리던 집의 경치를 한동안은 마음 놓고 즐기지 못했다. 가을에 이사를 했고, 다음 해의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니, 그제 서야 이 집의 그림 같은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실 통 창 너머 에는, 추수를 앞둔 황금빛 논들이 줄지어 서있고 그 아래에는 무심천의 줄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아직까지도 이름은 모르지만 꽤나 성격 좋아 보이는 야트막한 동산이 지켜주고 있다. 아침에는 동쪽에서 해가 떠 안방까지 그 빛줄기를 비춰내고, 점심을 건너간 빛줄기는 남쪽 통 창으로 흘러가, 따뜻하고 포근한 햇살을 연신 줄지어 쏟아낸다.


세어보니 어느덧 5년이 다다른 집이다. 휴직을 하고 나서는 종일 마주하는 집안의 모습들이지만, 지겨울 겨를 없이 매일이 포근하고 안락한 기운이 넘친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나만의 방은 없다. 그러나 나의 손길 하나하나로 가득 채운 서른네 평 의 이곳은, 어느 곳 하나 미움 둘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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