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발걸음의 시작
새벽 5시 30분, 미라클 모닝을 하기 위해 기상하는 시간이다.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창문을 열어 아직 동이 트지 않은 푸르스름한 하늘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다. 깜깜했던 하늘은 본연의 색을 드러내기 위해 조금씩 어둠을 벗어낸다. 어둠 속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하늘 끝에서 시작되는 짙은 남색의 빛은 산자락에 맞닿기 위해 붉은색의 물감을 타는데, 그 색감이야 말로 오묘하고 신비한 새벽의 그라데이션을 선사한다.
서른일곱이 되던 새해 아침이다. 남들만큼 분주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밀려오는 공허함과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는데, 꽤나 시간을 쏟는 일이 생기곤 했다. 별안간 내가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이제껏 쉬어본 적 없이 열심히 일 해가며 가정을 꾸려왔다. 분명 완벽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왜인지 쉴 틈 없이 완벽을 돼 뇌이며 더욱 매섭게 몰아치기도 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면서 뜻 모를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직전이었다. 이대로 눈물을 쏟고 나면 그대로 주저앉아 펑펑 울 것만 같아 쉼 호흡을 크게 하고 그대로 소파에 누웠다.
“나의 소리를 들어야겠구나”, 소파에 철썩 눕고 나니 갑자기 마음의 소리가 귓가를 맴돌기 시작하면서, 하고 싶은 일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하는 그런 일 말고, 내가 정말 해보고 싶은 것 들을 찾아내고 싶었다. 내가 어떤 일을 마주할 때 나는 행복해지는 가를 생각해 본다. 책 읽기, 음악 듣기, 식물 기르기, 그리고 손으로 만들어 내고 하는 그 어떤 일들이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퇴근 후 저녁시간을 나에게 투자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장애물이 너무 많다. 퇴근시간을 뚫고 시댁에서 아이를 챙겨 집으로와 씻기고 먹이고 치우기만 해도 아홉 시가 되는 날들이 일상이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의 출근 후 야간조를 끝내고 나면 푹 쉬어버린 파김치 마냥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으로 서둘러 잠들기 일쑤였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저녁에는 답이 없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새벽 네다섯 시쯤 이면 저절로 눈이 떠져 시간을 확인하고는 다시 부족한 잠을 청하는 날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일곱 시 까지는 거진 눈만 감고 아쉬운 마음으로 누워있는 것이 다였는데 말이다. 그제 서야 뾰족한 수가 뇌리를 스쳐간다. “아, 저녁에 못하면 새벽에 일어나야겠구나”
알람을 맞춰놓고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났다. 고작 한두 시간 이른 시간인데도 침대에서 일어나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까지 많이 버거웠다. 거실로 나가보니 온통 어둠이 짙게 깔려있다. 동이 터오는 동쪽의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어본다. 어스름한 하늘에 아파트 가로등불 들이 차분한 인사를 건네 온다. 어쩌면 살면서 몇 번 보지 못한 풍경이라 서둘러 휴대폰 사진으로 담아 본다. 세 식구 중 혼자만 일어났으니 온 집에는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으슬대는 몸을 녹이고 싶어 따뜻한 보리차를 한 잔 가득 마셔본다. 보리차의 고소하고 따뜻한 기운이 몸속으로 퍼지면서 움츠렸던 몸이 긴장을 풀어놓는다.
음악이 흘렀으면 좋겠다. 새벽풍경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 잔잔한 뉴에이지 연주곡을 틀어놓고, 매번 사놓기만 하고 반절도 읽지 못했던 책들을 꺼내 조용히 몇 장 넘겨본다. 평소에는 한 장 읽어 내리는 것 도 버거웠는데 새벽시간의 독서는 거뜬히 챕터 하나를 읽어 낸다.
따뜻한 보리차 한 잔과, 새벽을 어우르는 잔잔한 음악과,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읽어 내리는데, 가슴속 깊은 곳에 사는 진짜의 나는 울기 시작한다. 책의 내용이 슬펐던 것은 아니다. 고작 조금 일찍 일어나 몸을 녹이고, 마음을 보듬어주는 음악을 듣고, 읽고 싶었던 책을 몇 장 읽었을 뿐인데 나는 왜 울고 있는 것일까. 서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이제 서야 진짜의 나를 꺼내줘서일까? 서러웠던 마음이 먼저였으리라. 그다음은 누군가의 아내도, 엄마도 아니고, 승진에 매달리는 워킹맘도 아닌, 진짜의 나를 찾아서였는지 모른다.
짙은 어둠이 가라앉고 푸르스름한 하늘이 열리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것 많고 하고 싶은 것 많았던 어린 소녀가 동이 터오는 새벽길을 걸어간다. 총총 발걸음을 내딛으며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올려다본 하늘 끝 산자락에는 말갛게 씻은 고운 해가 얼굴을 비추기 시작한다. 소녀는 이윽고 다시 이어 길을 걸어간다. 고운 해는 얼굴을 마저 드러낼 때까지, 소녀의 길을 말갛게 비춰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