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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윤로윤 May 27. 2023

[괜찮은 인생을 살고 싶어] 나에 대해 잘 안다는 것

결핍을 마주해야 찬란해진다


나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유복하지 못했다. 딸만 내리 넷을 낳고 나서야 엄마는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품에 안았다. 나는 둘째 딸로 태어나, 내성적이고 꽤나 느린 성격으로 자랐는데, 사춘기가 지나 뜻이 맞는 친구들을 만나고 나 서부 터야, 여느 여학생들처럼 하고 싶은 것들이 넘쳐나는, 꿈 많은 소녀로 자라났다. 하지만 첫째로 태어난 언니는 아래로 넷이나 되는 동생들을 의무처럼 챙기곤 하였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 또한 하고 싶은 것들을 적당한 선에서 택하거나, 애시당초 셋이나 되는 동생들의 순서를 위해, 하나둘씩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속에서 자라났다.


대학에 미끄러지면서, 집안 형편을 감안하여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했다. 반쯤은 다행이었나,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을 채찍질로 바꾸어, 부지런히 교내활동을 해가며 취업준비를 했고, 덕분에 남들보다 일렀던 첫 취업의 단꿈을 맛보았지만, 부풀었던 희망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고작 인턴 생활만 하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내려와야 했다.


스무 해 하고 조금 넘은 인생에서 절망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 절망의 순간에서 나는, 다시 일어나기 위한 짤막한 글귀를 써 놓았다. “부러지지 않는 날개를 만들기 위해, 지금은 준비하는 과정이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자.”라고..., 불과 스무 살 언저리에 썼던 글귀인데, 어쩌면 실패와 절망 속에서 굴하지 않고 재빨리 딛고 일어나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었던, 지금까지의 인생 경로를 만들어준 작은 불씨였다는 생각이 스쳐 간다.


사회 초년기의, 누구나 겪을만한 다소 평범했던 절망을 몸소 느끼고, 세상을 향해 다시 일어날 즈음, 남편 만두 씨를 만났다. 분명 이상형은 아닌데 어느새 마음이 가 있었고, 같이 있을 때 면 단순히 재미있는 것을 넘어서 항상 즐거웠던 사람이었다. 소소한 다툼과 우여곡절이 없지는 않았지만,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5월이라는 꽃들의 계절에 맞춰 신부가 되었고, 어느 지인이 건넸던 말처럼 ‘단풍에 물 들 듯이’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느덧 결혼 10주년이 된 지금에서 돌이켜 보면, 여유롭지 못했던 삶 속에서, 한번씩 불쑥불쑥 생겨났던 나의 불안한 감정들이 분명 있었는데, 결혼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평생 함께할 배우자를 만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자식을 키워가며, 늘 상 시간에 쫓기기는 했지만, 사회적인 성장 또한 겪게 해 준 직장생활까지 쉬지 않고 이어 가 보니, 나의 불안했던 요소들은 점점 익숙해지고, 제법 너그러이 인정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흘러가,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되었다.


나는 나의 불안한 감정과 결핍을 잘 알고 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많은 안정을 찾게 되었지만, 어느새 마흔이 가까워지는 나이에, 아직도 조금은 결핍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유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과, 남들과 견주어 내기에는 부족한 학벌과, 대출이라는 세상의 커다란 봇짐과, 또 그 이외의 여러 가지 것 들. 그렇게 결승선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 같은 경주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을 치곤 하는데, 또 한 번 ‘단풍에 물 들 듯이’ 인생에 대한 가치관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결핍을 피해 도망가지 않고 마주하며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스스로를 성장의 길로 이끄는 원동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결핍의 아픈 마음을 숨기고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거짓말쟁이가 되어 언제 들킬지 모르는 전전긍긍 속에서,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야속하게만 느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결핍을 잘 알고 있기에, 한번씩 가라 않는 마음에 대해서도 다시 올라갈 수 있는 탈출구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탈출구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린다. 여러 관계 속에서의 지쳤던 마음을 달래주고, 하루쯤 쉬게 해주는 것일 뿐이다. 오로지 나를 위한 영화 한 편을 보고, 달달하고 부드러운 바닐라 라테 한 잔을 사서 마시고, 좋아하는 서점에 가 따뜻한 구절을 만나고, 이따금씩 가보는 화원에 들려, 햇살 가득 머금은 초록의 식물을 들이는 일, 고작 이런 일들로 하여금 나는 다시 세상에 발을 내딛고, 이제는 결승선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해, 멈추지 않고 달려 볼 수 있는 바통의 힘이 생겨난다.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마음만 알아차린다면, 세상의 힘듦과 절망이야말로 오히려 나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세상사는 모양이 제각기 달라도 나는 나를 알아주는 방법으로, 어둡고 습했던 절망과 결핍의 경계를 허물게 되어 어느 나이 즈음에는, 아마도 호연지기 설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해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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