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육아도 다 잘하고 싶은데 서러워
“엄마, 다른 친구들은 다 엄마가 데리러 오는데, 나는 왜 매일 할머니, 할아버지가 데리러 오는 거야?”, 아이가 네 살 즈음 처음으로 물어보는 질문에 너무나도 현실적인 답변 을 해주고 말았다. “엄마도 회사 안 다니고 다른 엄마들처럼 집에 있고 싶긴 한데, 그러면 맛있는 간식도 조금밖에 못 사주고, 갖고 싶은 장난감도 사줄 수 없을 텐데 괜찮겠어?”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할 줄 알았던 나의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 돌아온다. “아니야, 아니야, 지금처럼 할머니, 할아버지가 데리러 나와도 돼, 엄마 회사 다녀” 이 콩 알 만한 녀석도 그새 세상을 알아차렸다는 안도감 바로 뒤에 씁쓸함과 미안함이 흘러갔다.
예고 없던 회식이 잡힌 날이었다. 다행히 남편이 일찍 끝날 수 있다고 하여 회식에 동참할 수 있다며 자신 있게 말했다. 삼겹살, 곱창, 치맥, 이자카야, 하나만 택하기란 어려운 호불호 없는 메뉴들이 직원들 틈에서 이리저리 자리를 찾는다.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적당히 먹고 들어가서 푹 자고 싶다는 생각으로 잠시 들떠 있는데, 갑자기 어머님한테 전화가 왔다. “어린이집 갔다 온 뒤로 힘없이 처지더니 열이 엄청 나,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어쩌니”.
당연히 나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야 할 것을 알지만, 알겠다는 나의 대답이 이어지기 전까지, 수화기 너머 짧은 적막이 잠시 흐른다. 회식의 참석을 취소하고야 만다. 아이가 아프면 왜 엄마만 챙겨야 하는지에 대한 화풀이가 또 애꿎은 남편에게로 쏟아진다.
기침과 열이 잡히지 않아 처음으로 입원을 했다. 혈관이 보이지 않아 몇 번의 주삿바늘로 양쪽 팔과 손등을 들쑤셔 놓은 탓에, 금방이라도 베일 것 만 같은 날카로운 종잇장이라도 된 냥 예민함이 하늘을 찔렀다. 3일 정도 입원을 해야 한다는 말에, 내가 회사를 이틀 쉴 테니 남편에게는 하루만 쉬어 달라고 했다. 하필 남편은 회사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민함이 극에 달하는 나의 눈치를 보며 남편이 제안한 것은, 어머님 아버님께 부탁을 드리는 일이다. 형님네 아이들까지 도맡아 봐주시는 어머님 아버님께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아, 이틀만 쉬겠다고 했던 연차를 하루 더 늘렸다. 그렇게 회사 일은 가득 쌓여 갔고, 상사들의 아쉬운 말 또한 오고 갔으리라 추측할 수밖에 없는 복잡한 마음과 함께, 3박 4일의 입원 기간 동안 아픈 아이 곁에서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흘러갔다.
낙엽이 지고 코끝 시려 오늘 계절이 오면, 언젠가부터 회의감에 사로 잡히고는 한다. 회사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아닌, 똑같은 직원으로 항상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평가 결과가 나오고 나면 늘 상 뒷전이다. 우스갯소리로 남자가 1번, 미혼 여자가 2번, 애가 없는 기혼자는 3번, 워킹맘은 순번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한탄을 드러내기 에는 자격지심이라는 단어로 되돌아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마음속으로만 삭이고 코 끝 시린 계절이 지나기까지 원망과 자책을 반복하다 보면 다시 새로운 해가 돌아오고, 순번 없는 희망고문이 시작되는 연속의 날 들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커리어를 위해, 결국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내가 선택한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힘들었던 순간들을 보상받고자 하지 않는다. 나의 이런 삶 또한 누군가에게는 그저 부러운 사치라는 것도 알고 있다.
다가올 미래를 위해 버티는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순간의 버팀들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날 즈음에는 워킹맘으로 살았던 그 치열했던 시간들이 그리워지는 날이 오기 마련일 테니 말이다. 워킹맘에게는 오늘도 어김없이 고된 하루의 시작과 끝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워지는 날들이 되기 전에 한마디면 족하다. “덕분에 고마워”라는 여섯 글자이면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