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날만 지나면 다시 돌아올 야무진 초승달을 위해
주말 저녁, 신나게 몸으로 놀아서인지 평소보다 이른 잠자리에 든 나의 두 남자, 만두 씨와 미니만두씨, 나의 남편의 어릴 적 별명이 만두였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서 얼굴은 바라보고 있자 하니, 신기하게도 생김새마저 만두를 닮았다. 그때부터 나의 남편은 만두 씨가 되었고, 우리의 아들은 아빠를 닮아 자연스레 미니만두씨가 되었다.
셋 중에 둘이 잠들고 나면 집에는 고요한 시간이 찾아온다. 혼자 있는 시간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창밖 풍경에 빠지는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다.
어느덧 밤이 깊다. 얼핏 보면 깜깜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짙은 푸른색을 감추고 있는 밤하늘에, 끝과 끝이 야무져 보이는 초승달이 떴다. 그 야무진 초승달은 집 아래 흐르는 무심천 줄기에 얼굴을 비춘다. 모난 것 없이 야무진 모습이 얄미웠는지 바람이 제법 매섭게 몰아친다. 그 바람에 초승달의 얼굴이 이리저리 망가진다. 일렁이는 바람결 따라 이대로 어디론가 떠나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갑자기 나의 마음이 저 야무진 초승달을 닮지는 않았나 생각에 빠져본다. 마음이란 것은 꽁꽁 묶어 두지 않으면, 바람처럼 흩어지기 일쑤 고,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 되어 저 강물처럼 흘러가기 마련이다.
마음이 흘러간다는 것에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한다. 손으로 움켜쥔다면 흘러가지 않고 못 내 아쉬운 채로 내 손에 쥐어질까? 언제 흘러갈지 몰라 손 한 번 펴지 못하고 꽉 움켜쥔 채로 산다면 그것은 과연 만족스러울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움켜쥐었던 손을 다시금 펴 초승달을 흘려보낸다.
서글퍼하지 말자. 어쩌면 다행인 것은 바람처럼 흩어지기에 가벼울 수 있으며, 강물처럼 흘러가기에 떠나보내 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일그러진 얼굴의 초승달이 되어 간신히 버티는 것보다는, 서른 날만 지나면 다시금 야무진 초승달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다행인 것이다, 바람에 흩어지고 강물에 흘려보냈던 지나간 시간만큼이나, 서른 날 동안의 다가올 시간에게 더욱 다잡고 다잡아보는 마음이 새겨지는 일, 다시 돌아올 야무진 초승달을 기다리며 살아 보는 일, 그것이다.
깊고 어두운 밤이 지나간다. 우리 집 두 남자는 번갈아 가며 코를 고는데 꽤나 행복한 꿈을 꾸는 것 같아 보인다. 행복한 표정의 똑 닮은 두 얼굴을 바라보는 일은 어느새 나의 얼굴에도 행복이 깃드는 순간의 그것, 그것에 대해 온전히 마음을 쓰는 주말 밤이 이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