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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경원 Mar 19. 2020

나도 모르는 새에

글쓰기 사랑의 시작

당신이 나에게, ’언제부터 글쓰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까?’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아주 많다. 그러니 내게 단지 인사치레로 그 심오한 질문을 하려 한다면 그만두길 바란다. 당신이 어떤 의도로 물었든 난 당신에게 내 삶에 있어 글쓰기가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잘 설명하기 위해서 몇 날 며칠을 내내 당신을 잡고 그 이야기만 하려 할 수 있다. 밥을 먹다가, 길을 걷다가, 무얼 보다가, 글쓰기에 대한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풀어내고 싶어 안달이 날 것이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아마 내 글사랑의 시작은 편지를 좋아했단 말부터 해야겠다. ‘편지’라는 단어를 얇게 읊조렸던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빠가 시골의 은행 직원, 엄마가 육아를 위해 전업주부일 적에 엄만 아빠의 점심 도시락을 꼬박꼬박 싸서 챙겨줄 정도로 극진했고 성실했다. 그 도시락은 멋은 없고 맛은 그럭저럭 했으나 사랑만큼은 빼어났는데, 도시락 뚜껑을 열기만 하면 To. 사랑하는 평기씨에게 혹은 To. 사랑하는 경재 아빠에게 로 시작하는 편지가 나타났다. 글은 말보다 항상 좀 더 차분하고 친절하기에, 엄마의 편지엔 고맙다거나 지난밤엔 평기씨가 조금 밉기도 했지만 더 잘해보자는 다정한 말들 뿐이었다.

아빤 한 번도 엄마의 편지에 답장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끼워진 편지를 빠짐없이 차곡차곡 모으는 일만큼은 열심히였다. 아마 내가 아는 그라면, 속이 아기의 피부마냥 순정하여 아무리 배가 곯아도 마음을 먼저 대우하기라도 하듯, 편지를 뜯어보고서야 식사를 시작하는 자신만의 순서를 지켰을 것이다.


내가 중학생 2학년일 때 우리 집에 큰 불이 옮겨 붙어 건진 건 몸뚱이 하나뿐인 사건으로 그들의 은밀한 밀담은 재로 소멸되어 버렸다. 둘만의 것에 내가 끼일 수 없단 게 두고두고 야속하다고 생각한다. 둘만의 것이 영원해졌으니 오히려 둘에겐 잘 된 일이기도 할까.



엄마는 현명한 부인이고 싶었고, 따뜻한 엄마이고 싶었다. 모든 엄마가 그렇게 시작하듯 말이다.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드는 욕심을 품었고, 자신이 망가지면서도 가족을 위해 욕심을 버리는 일만큼은 미루기를 더디 했다.
내가 초등학생으로 들어서면서 우리 집은 횟집을 차리게 되었다. 아빠, 엄마의 직장과 직업은 달라졌고, 살던 집도 옮겨야 했다. 모든 것이 새로이 시작되던 설레고도 긴장되는 날들이면서 동시에 너무 열심히 해서 안쓰러운 날들이기도 하다.

두 분이 맞벌이를 시작하면서 우리 가족의 풍경엔 함께하는 아침 식사 자리가 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넓고 그늘진 집에 통통한 두 볼을 자랑하는 꼬맹이만 둘이었다. 우리 남매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이불을 개고 양치를 하고 옷을 꺼내 입으며 학교 갈 준비를 스스로 마쳤다. 그리곤 신발장 앞이나, 식탁 위에 올려진 엄마의 편지를 읽었다. 아마 일을 마치고 난 후 간밤에 쓰였거나 일터로 나가기 전, 이른 새벽녘에 쓰인 편지였을 것이다. 엄마는 일상의 고됨과 싸우는 와중에도 우리 남매에게 사랑을 알려주는데 애를 썼다.



‘사랑하는 우리 딸 경원아.
엄마는 경원이가 요즘 양치를 잘하지 않고 자는 것 같아서 많이 속상해. 양치를 잘하지 않으면 경원이 입 속에 사는 병균들이 경원이 치아를 썩게 할 텐데, 그래서 경원이가 아파할까 봐 걱정돼.
경원이가 양치를 더 잘했으면 좋겠는데 노력해줄 수 있을까?
엄마가 경원이 많이 많이 사랑해.’


우리 집에 불이 났을 때, 나를 위한 엄마의 편지 역시 모두 재가 되고 말았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기에, 몇 안 되는 단어와 엄마의 말씨를 겨우 조합해보면 저런 식이었다.

엄마는 자신만의 묘사로 날씨를 표현했고, 무얼 해서 예쁘다느니, 미안하다느니, 그럼에도 고맙다느니 하는 따뜻하고 정돈된 말들을 건네었다. 그다음엔 어떻게 답장을 하면 좋을까 고민을 했던 어린 내 모습도 남아있다. 내용보다도 들쭉날쭉한 글씨체가 맘에 들지 않아 잘못 없는 종이를 자주 북북 찢어내었고, 때문에 전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지만 말이다.


나는 편지를 좋아한다. 마음을 잘 전해보려 하루 온종일 ‘어떻게 전해야 내 진심을 알아줄까.’ 고민하고, 그러다 문득 떠오른 말들을 모으고, 모아놓은 모든 문장을 배치하고, 다듬고 다듬고 다듬는데 애를 쓰고, 또 한참을 옮겨 쓰고 옮겨 쓰다, 해가 뜰 때쯤에야 잠자리에 들 만큼, 나는 편지를 좋아한다.

수많은 당신에게, 가장 처음은 엄마에게. 마음을 전하려 애쓴 새벽녘이 모여 지금의 글쓰기가 되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쓰인 To. 사랑하는 평기씨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로부터 일지 모른다.
그러니까, 날카로운 말 끝을 갈고 갈아 부드럽고 포근한 말들로 채우려 노력한 그녀의 젊은 날이 탯줄을 타고 내게로 전해진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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