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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냥이 Sep 12. 2023

못 버리는 자의 미니멀라이프 따라잡기





아이들을 학원과 어린이집에 보낸 어느 평일 오전이었다.

한숨 돌리며 소파에 멍하니 널브러져 있는데 그날따라 거실의 지저분함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아이들이 아무 데나 벗어놓은 잠옷, 식탁 위 먹다 만 그릇들, 바닥에 버려져 있는 색종이와 읽다 만 책들… 이런 것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언젠간 쓰겠지, 언젠간 입겠지, 언젠간 읽겠지 하며 버리지 못한 물건과 옷, 책들이 너무 많았다.

못 버리는 병이 있는 나지만, 그 언젠가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도 안다.

커다란 티비장, 거실 중앙에 자리한 원목 테이블, 쓸데없이 많은 아이들과 나의 책…

나름대로 질서 있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모든 물건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2020년, 첫 번째 수술 때는

이렇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출간했다.


3년이 흐른 후, 수술 부위가 재발했다.

복벽에 붙은 종양이라 복강경도 안되고 또 개복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수술은 견딜 수 있다.

(이미 복부는 세 번이나 절개해 봤다)

그런데, 수술하면? 이제 정말 끝일까? 또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는 내 몸뚱이와 내게 놓인 현실이 너무 답답하기만 했다.

생각이 많아진 나는 마취 후 깨어나지 못하는 상상에까지 이르렀다.


그런 상황에서 가만히 소파에 앉아 거실을 바라보니 갖고 있는 물건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때 다 가져갈 것도 아닌데, 뭐가 이렇게 많지?

만약 내가 먼저 죽는다면, 남겨진 가족들은 내가 남기고 간 수많은 흔적과 물건들 때문에 더 오래 슬퍼하지 않을까?


“그래, 다 버리자.”


못 버리는 자의 미니멀라이프는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난 정리의 근본이 없는 사람이다.

방법을 모르니 일단 정의란 무엇인가? 정리란 무엇인가? 기초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정리를 글로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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