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정갈하게 차려진 일본 가정식
효섭투어의 서막
어제 새벽까지 마신 술에 다들 숙취로 느릿느릿 일어났다.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이른 아침부터 깨워댔지만,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으나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어제의 전야제는 뒤로하고 오늘부터 부지런히 도쿄 시내를 돌아다녀야 하기에 어른들도 하나둘 강제 기상을 했고, 세수도 안 한 채로 식탁에 앉자, 호텔 조식 저리 가라는 아침 식사가 비아 어머니의 주도하에 세팅되기 시작했다.
오늘의 아침은 생각지도 못한 일본 가정식 샤부샤부 ‘스키야키’였다.
응? 분명 한국에 있을 땐 막 아침 차려주고 이런 분이 아니었습니다만?
한국에 있을 때 비아 어머니는 회사 다니느라 아이들 케어하느라 늘 시간에 쫓기고 정신이 없었다.
비아네 집에 놀러 가서 술 한잔을 한 다음 날에도 집주인이 일어나지 못해 내가 냉장고를 뒤져서 아이들 아침밥을 차려 주기도 했는데, 정갈하게 차려진 가정식을 일본에서 먹게 될 줄이야.
비아 어머니가 달라졌어요.
그러고 보니 수상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어젯밤엔 도착하자마자 짐부터 풀고 술 마시기 바빠서 미처 눈치채지 못했는데, 맨 정신으로 본 비아네 집은 너무 깨끗했다.
아, 우리가 온다고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를 했나 보다.
아니, 이건 며칠 만에 된 스킬이 아니라 정말 정리 정돈 잘하는 사람의 정리 스킬인데?
물건이 없는 것이 아닌데, 질서 정연하다.
몇십 장은 족히 되어 보이는 수건이 차곡차곡 깨끗하게 화장실 앞에 쌓여있다. 각종 스틱커피와 차 종류가 바구니에 질서 정연하게 꽂혀있다. 한국에서 가져온 꽤 많은 아이들 책 또한 크기별로 종류별로 보기 좋고 찾기 쉽게 꽂혀있다.
크지 않은 일본 가정집의 네 식구 살림살이. 줄이고 줄인다 해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마치 무인양품의 한 코너를 들여다보듯 물건을 숨겨놓지 않아도 이렇게 정리가 되어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그 신기함은 곧바로 한국에 두고 온 집안 꼴과 함께 자기반성으로 이어졌다.
나 두 번째 수술을 앞두고 프로심플러,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고 다짐한 게 올 초 아니었나?
부끄러움은 뒤로 하고 일단 차려준 밥부터 맛있게 먹기 시작한다.
아니…! 음식까지 잘하는 언니였는데 그동안 그 실력을 숨겨두었던 거야?
이건 내가 차린 게 아니라서 맛있는 것인가 진짜 맛있는 것인가? 잠시 생각을 해봤으나 결론은 둘 다인 거로.
일반 간장 샤부샤부가 아닌 듯하여 나중에 물어보니 일본 스키야키용 간장을 사용한 거였다.(결국 한국 돌아가기 전날 돈키호테에서 찾아내서 한 병 사 갔다)
어쨌든 도쿄 시내 관광을 위해 길을 나선다.
아이들은 집에서 쉬고 싶어 했지만 그러려고 도쿄에 온 것은 아니었기에 반강제적으로 끌려 나왔다.
효섭 맞춤 투어의 서막이었다. (효섭=비아 아버님 존함)
일본은 몇 번 여행했어도 도쿄는 처음인지라 여행계획을 이야기할 때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도쿄타워, 디즈니랜드, 시부야 정도가 다였다. 마치 서울 여행에 롯데타워, 롯데월드, 강남 정도밖에 모르는 격 아닌가.
그만큼.. 여행계획 짜는 데 진심이 아니었다. (MBTI를 테스트하면 언젠가부터 J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아니,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평온한 것을 보니 아마도 F와 J의 경계 어딘가인 듯하다) 아이 둘을 데리고 하는 여행인지라 내가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을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도쿄의 분위기 있는 서점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갈 자신도 없고 의지도 없었다. 그런데 비아네가 내 맞춤형 여행을 짜주었다.
효섭 맞춤 투어 첫날의 첫 번째 코스가 진보초 고서 거리였던 것이다.
이 거리는 정말 아이들의 취향과는 전~~ 혀 관련이 없고, 심지어 우리 집 전님의 취향도 아니다. 오로지 나를 위해 넣어준 코스였다. (코끝이 찡~)
진보초는 집에서 가까웠다. 전철로 몇 정거장 지나니 금세 도착했다.
진보초역은 역 디자인부터 ‘책’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