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볼과 나마비루
저에게 일본은 지브리의 나라, 생맥주가 맛있는 나라, 여행하기 좋은 나라 정도였습니다.
일본 문화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습니다.
그런 제가 일본어를 배우게 된 계기는 작년 초, 두 번의 수술 후에도 또 경계성 종양이 재발했을 때였습니다.
한국에서만 살았고, 한국말만 하며 살던 제가 외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강하게 들었습니다.
다른 언어들 다 제쳐두고 오직 일본에서만 써먹을 수 있는 일본어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가까우니까. 비행기 한두 시간만 타고 가면 금방 써먹을 수 있겠다는 단순한 마음.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1년 하고 3개월이 지났습니다.
처음 몇 달간은 매일 2~3시간씩 책을 펴고 공부했습니다.
팟캐스트를 깔고, 일본어 교육 유튜버를 구독하고, 괜찮다 싶은 일본어 교재가 보이면 바로 구입해 읽었습니다. 처음엔 이러다가 또 말면 어떡하지 하는, 나를 믿지 못하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처음의 열정은 곧 사라져서 지금은 매일같이 단어를 외우고 책을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금은 편하게 일본 노래를 듣고 드라마를 보는 것이 어느 정도 일상이 되었습니다.
J-POP은 전혀 모르던 제가 호시노 겐과 요네즈 켄시의 노래를 즐겨 듣고,
<니게하지>, <언내추럴>, <중쇄를 찍자> 등 한국에서 꽤 알려진 일본 드라마들도 하나씩 도장 깨기 하듯 정주행 했습니다. 최근에 재미있게 본 일본 드라마는 <사자의 은신처>, <간니발>이었습니다.
사실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실력은 크게 향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일본어에 흥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관한 이야기를 써야지 맘먹고 처음 지었던 제목은 <도쿄 친구 집>이었습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가 도쿄로 이민 간 친구 가족과의 교류 때문이었고,
그 가족의 집에서 머물렀던 며칠간의 시간이 너무 큰 의미로 남아 있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쓰다 보니 이 이야기는 도쿄에 사는 친구의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었기에
최종 제목은 <하이볼과 나마비루>가 되었습니다.
저는 세 번째 종양의 재발로 수술이 아닌 약물 치료를 하고 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좋아하던 술은 끊은 지 오래입니다. 비록 지금은 알코올을 마음껏 마실 수 없게 되었지만, 일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제가 한때 너무 사랑했던 '하이볼과 나마비루(맥주)'입니다.
최근에는 일본인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해 홈스테이를 해보았습니다.
정해진 가이드 없이 일본인들에게 한국 요리를 대접하고 동네 산책을 하고,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고, 함께 한국 프로그램을 보며 하루를 보낸 날들이 너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책에는 일본에 있는 인연들과 교류를 하고, 일본어를 공부하고, 일본 문화를 접하면서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한국에서 일본인 홈스테이를 해보기도 하는 여러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하이볼과 나마비루>를 통해 담아내고 싶은 저의 이야기와 그림.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