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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쓰북 Jul 20. 2022

3. 일 없어서 걱정?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어느 순간 폭풍처럼 일이 덮쳐왔다

가끔 팀원분들과 근황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아직 일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다른 팀원을 통해 들으셨는지 나를 불러서 따로 말씀하셨다.


"사실 부탁할 일은 많아. 그렇지만 그동안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던 건, 자네가 맡아줬으면 하는 일이 새로 생길 거 같아서 그랬어."


팀에 일이 많기도 하고, 내가 실직 상태라는 걸 알고 다른 업무에서 나를 보내줬으면 한다는 요청도 많이 왔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선뜻 팀장님이 OK하지 않고 보류했던 이유는 본인 특유의 왠지 모를 예감 때문이라고 했다.

팀장님이 한 고객사로부터 요청을 받아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윗선에서의 협의가 잘 끝난다면 실무자의 관점에서 일을 추진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 팀장님은 나를 예상하고 계셨다. 준비하는 일이 해외 관련 업무로 출장이 잦을 수밖에 없는 건이라 나를 다른 업무에 넣을 수가 없었다고 설명해주셨다.

다른 일과 병행하기도 어려운 성격의 업무라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어떻게 회사에서 바쁜 순간만 있을 수 있겠냐고 다독이셨다. 

팀장님 입장에서 굳이 이렇게까지 설명해주시지 않아도 되는데, 내 입장을 이해해주시고 먼저 말씀해주신 배려에 무척 감사했다.

그래서 팀장님과 대화를 나눈 후에는 한결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여유가 있으니 업무 관련 공부도 하고, 틈틈이 팀 내 귀찮은 행정 업무를 도맡아 했다.


어느새 4월의 마지막 날, 휴가를 쓰고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팀장님이었다.

휴가 중이라 미안한데 복귀하면 독일 출장을 간 팀원과 연락해서 새로운 업무를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당장 연락하라는 말씀도 아닌데 왜 이런 이야기를 카톡으로 하셨지? 잠깐 갸우뚱했지만 바로 알겠다고 회신을 드렸다.

그리고 다음 날 사무실로 출근해서 시차를 기다리다 오후에 독일에 계신 팀원과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독일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일부 과제를 진행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상황으로 내가 급히 투입이 된 것이다.

그런데 당장 다음 주에 출장을 가야 한다고 한다. 일을 한 것도 없는데 당장 다음 주에 출장을 가야 한다고?

출장을 가기 전에 뭐라도 준비해 가야 할 거 같다는 생각에 초조해졌다. 그리고 그날부터 야근이 시작되었다.

팀장님은 출장을 가서 진행해도 되지 않겠냐고 하셨지만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너무 급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크게 데일 예감이 들었다.


평소였다면 팀장님의 생각처럼 여유를 가져도 좋았지만, 이번만은 나의 예감이 맞았다. 

당장 다음 주에 오라고 했던 출장이 조금씩 미뤄졌던 거다. 

차라리 출장을 일찍 갔다면 팀장님 말씀처럼 가서도 일을 할 수 있었겠지만, 미뤄지다 보니 결국 출장을 가게 된 시점에서는 일이 꽤 진척된 상황이어야만 했다.

출장 일자도 나만 가는 게 아니고 팀장님과 함께 가게 되었다 보니 일정 픽스가 쉽지 않았다. 독일 현지와 컨택하면서 상황에 맞춰 조율하다 보니 이것 때문에도 강제 야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출장 일정이 정해졌다. 5월 중순에 내가 먼저 출발하고 팀장님은 하루 뒤에 따라오는 일정이었다.

첫 업무 출장에 잔뜩 긴장한 상태로 비행기를 탔다. 길었던 비행시간 내내 잠을 한숨도 못 자고 도착했다. 

현지에서 맞이해준 팀원과 주변 관광을 하고 저녁 겸 독일 맥주 시원하게 한 잔 하고 숙소로 돌아와 꿀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나니 현지 시각 오전 6시였다. 

일찍 일어난 김에 잠깐 회사 메일을 확인하고 일찍 조식을 먹으러 가야지, 그런 생각으로 메일함을 열었다.


그런데 팀장님에게 메일이 한 통 와있었다. 아래에 이력이 길어 보이는데 내용이 뭔가 싶어 맨 아래부터 내려서 메일을 따라 읽으며 올라왔다.


"팀장님, 잘 지내시죠? 다름이 아니라 아래 인도 출장 건으로 해당 업무를 f/up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업무 담당자가 6월 3일에 출발이 가능한지 여쭙고자 합니다."


이력을 따라 올라오던 중 위와 같이 보낸 문구를 보고 설마... 했다. 혹시 예전에 나를 따로 불러서 시키고 싶다던 그건가.

그리고 팀장님이 쓰신 내용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나는 머리를 짚었다.


"잘 도착했나요? 아래와 같이 출장 지원 요청이 들어왔는데, 일자가 6월 3일이네요. 현재 스케줄에서 무리인 게 분명하니 이건 따로 이야기할게요. 독일에서 봅시다."


독일 출장 첫날에 바로 다음 업무 관련 출장 요청을 받았다. 

참고로 독일 출장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는 날은 5월 30일 목요일이었다. 그리고 6월 3일은 바로 다음 주 월요일이었다.

돌아오자마자 바로 다시 짐만 바꿔서 떠나야 하는 스케줄이었다. 그것도 늦가을의 날씨인 독일에서 한여름의 인도로 가야 한다니... 당황스러웠다.

팀장님이 이야기하신다고 했지만 출장 자체가 없어질 리가 없다. 나는 바로 인도로 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는 건 또 출장 준비를 힘들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연초에 일이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순간을 후회했다. 

실직해서 스트레스받고 일이 없어서 걱정하는 건, 적어도 회사 실무자 입장에서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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