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밀듯이 쏟아지는 회식을 거절하지 못했던 시절
물론 내가 할 일을 잘 챙기는 것으로도 기꺼이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인싸가 되면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입사 후 초대받았던 회식 자리는 하나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당일에 번개가 열려도 항상 갔다.
그런데 그런 모임의 단점이 있다. 서로 너무 어색하다 보니 술을 많이 마시게 된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친해진 것 같지만 다음날에 또 어색하다.
생각해보니 이런 일은 예전에도 많았다. 대학교 때 숱한 술자리에서 이미 경험했던 일이다.
지금도 인생에서 술을 가장 마신 날이 언제냐고 물어보면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입사한 해의 4월에 있었던 신입사원 환영 회식이었다.
당시에 회사에서는 팀별로 1박 2일 워크숍을 의무적으로 보내는 행사가 있었다. 내가 사무실에 출근하기 시작했던 게 3월 중순이고, 4월 초에 워크숍이니 이때가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다들 생각하셨던 것 같다.
워크숍 장소는 경기도 모처의 호텔이었는데, 오후에 도착해 세미나를 듣고 저녁부터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노래방에서 양주 + 맥주 조합으로 마시면서 팀원 대부분이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고 (신입사원은 무조건 필수로 해야만 했고), 또 열심히 호응해야 했으니 정신이 없었다.
그 자리가 끝나고 객실로 올라와서 씻고 있는데 같이 방을 쓴 선배에게 나를 호출하는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호출 전화를 통해 안내를 받은 다른 호실로 가니 매트리스가 치워져 있었다. 커다란 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거기에 팀장님과 여러 팀원들이 모여서 또 술을 마시는 자리에 신입을 부른 거다.
당시의 나는 어떻게든 버티면서 많이 마셔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긴장 놓지 말자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준다.
작은 소주 종이컵도 아니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종이컵이었다.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열심히 마셨다.
계속 그 종이컵에 소주를 받았고, 몇 시간을 있었으니 아마 인생에서 가장 많이 마셨을 것이다.
자리가 끝난 건 새벽 2시였다. 그래서 숙취는 오전 늦게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너무 힘들어 이후에 점심도 먹지 못하고 물만 마시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그때 이후에 사무실에 '로봇처럼 술을 마시는 신입'이 왔다는 소문이 퍼졌고, 덕분에 회식 초대를 여기저기서 받았다.
술자리에 가도 별로 나누는 말은 없이 술만 마시니까 인싸는커녕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아주 소득이 없었던 것만은 아니다. 내가 여기저기 술자리에 있는 모습을 목격한 선배들은 나를 안쓰러워했다.
(물론 자의로 참석한 것은 맞지만, 신입의 입장에서 어디까지가 자의일 수 있겠냐고 생각하신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회식 다음날에는 따로 불러서 숙취해소제를 사주거나, 일부러 티타임에 데리고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래도 건강을 해치고, 또 혼자만의 휴식 시간을 강제로 줄여가면서 회식에 참여하는 건 나에게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입사 후 6개월쯤 지났을 때 새로운 신입이 팀에 오는 타이밍에 맞춰 회식 참여 횟수를 줄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