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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핑거 Jul 10. 2023

9화. 세계여행 초심자의 행운

무슬림 커플의 말할 수 없는 비밀


다음 날 또 다른 카우치 숙박 게스트를 픽업하기 위해 로이와 공항에 갔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커플이었다. 나딘은 노란색 히잡을 두르고 있었고 동그란 얼굴에 큰 눈이 매력적이었다. 함께 온 그녀의 남자 친구 자크리는 장발에 동그란 안경과 콧수염이 잘 어울렸고 한눈에 봐도 예술인처럼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그라피티 아티스트라고 했다. 둘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회사에서 프로젝트 협업 차 만난 사이라고 했다. 


우리 넷은 곧바로 쿠알라룸푸르 근교로 짧은 여행을 가기로 했다.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푸트라자야라는 행정도시였다. 나딘이 여기 있는 핑크 모스크를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나도 처음으로 이슬람 사원을 방문해볼 수 있었다. 무슬림들과 함께 방문해서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다.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 / 핑크모스크



“난 무슬림 하면 온몸을 덮은 검은색 히잡 사이로 눈만 내놓고 다니고, 자살 테러를 일으키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어. 근데 너희는 나와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젊은이들이네.” 



나딘은 매체에서 무슬림의 이미지가 그렇게 비쳐서 안타깝다고 말하며, “그런 무슬림은 정말 극소수이고, 우리 대부분도 그런 극단적인 무슬림은 싫어해.”라고 덧붙였다.



나딘도 밖에 나갈 때는 꼭 히잡을 둘렀는데, 그녀의 히잡은 형형색색의 패션 아이템이었다. 집안에 들어와서도 로이가 없을 때만 벗었다. 그 이유는 다른 남자들한테 ‘유혹’의 상징인 머리카락을 보여줘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 문화에서 나단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다채로운 히잡으로 개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보유한 히잡이 300장이 넘었다. 옅은 노란색, 조금 덜 옅은 노란색, 짙은 노란색, 더 짙은 노란색, 무늬 있는 노란색, 무늬 없는 노란색 등등 하나씩 모으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노란색 종류만 해도 이렇게 다양한데 다른 색들도 그럴 테니 300장 쯤이야 그럴만했다. 나딘이 히잡 하나를 선물해주고 쓰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무언가 색다른 경험에 신이나서, 다음 날 나도 그녀와 함께 히잡을 두르고 다녔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자 로이는 업무 때문에 저녁에만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낮에는 주로 나딘 커플과 함께 시내 구경을 다녔는데, 둘 사이에서 조금도 불편하지 않아 금세 친구가 되었다. 앞으로도 연락하고 지내고 싶은 마음에 내가 페이스북 친구를 하자고 제안했다. 나딘과 자크리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둘은 서로 페이스북 친구가 아니며, 동시에 둘을 태그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유는 이랬다. 나딘은 7년째 만나온 남자 친구가 따로 있었다. 그 남자 친구와는 오는 5월에 결혼하기로 양가 부모님께 허락도 다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1년 전 자크리를 만난 것이었다. 나딘은 둘 다 사랑하지만 자크리를 더 사랑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 때문에 그 결혼을 깰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크리는 지금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 나딘은 스물여섯 살이라 그 문화에서는 혼기가 꽉 찼는데, 자크리와 함께하면 결혼이 더 늦어질 것이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매일 히잡을 두르고 다녀야 할 정도로 보수적인 사회에서 이런 양다리 연애도 가능했단 말인가. 어딜 가나 사람들 사는 건 다 똑같았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규율이 있는 종교 문화에서도 몰래 연애할 사람들은 다 하고 바람피울 사람들을 다 하는구나 싶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남겼다. 

'결혼이란 무엇인가?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일까 아니면 사회적 계약인 것 일까? 결혼 적령기라는 것이 꼭 있어야 하는 걸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내가 만약 나딘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마음은 대체 어떤 것일까?' 



이와 같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로이에 이어 나딘 커플도 ‘이런 사람은 이럴 거야’ 하는 내 알량한 고정관념을 깨부수어 주었다. 



그리고 인연이라는 게 참 얄궂은 것 같았다. 그 후로 2년 뒤 나딘과 자크리의 페이스북에는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자녀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올라왔다. 기분이 묘했다. 





로이는 우리 셋을 살뜰히 챙겨주고 신경 써주었다. 업무를 마치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와서 픽업해 같이 저녁도 먹으러 가기도 하고, 배고프지 말라고 숙소 냉장고에 음식도 가득 채워 주었다. 가끔 로이가 천사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로이는 정말 많은 것을 내줬다. 낯선 사람에게 이렇게 자신의 집도 선뜻 내주었고, 시간이며 돈이며 진심 어린 마음까지 기꺼이 다 내주었다. 그의 배려는 이제 막 출항한 배에 순풍이 되어 주었다. 



로이네에서 신세 진 지 6일째 되는 날 새벽 버스를 타고 북쪽에 있는 페낭이라는 도시로 가기로 했다. 나딘 커플은 다음 날 인도네시아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었다. 로이와 나딘 커플은 새벽까지 버스 터미널에서 나를 에스코트해주며 앞으로의 여정을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웠다. 그새 정이 들었는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특히, 로이는 내 평생 정말 잊지 못할 카우치숙박 호스트가 될 것이었다. TV에서 보는 것만큼 세상이 그렇게 각박하고 무섭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로이와 나딘 커플의 응원을 받으며 쿠알라룸푸르를 떠난 이후 페낭과 크래비를 거쳐 태국 방콕에 이르렀다. 초심자의 행운은 나와 계속 함께 했다.  






여기서는 찐짜이와 민 모녀를 만났다. 찐짜이는 젊었을 때 군인이었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고 귀여운 외모를 가진 40대 아주머니였다. 매번 식사 때마다 메인 요리는 물론이고 신기한 디저트에 과일까지, 태국 음식을 한상 가득 차려주었다. 냉장고도 열어 이것저것 보여주며 언제든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꺼내 먹으라고 했다. 찐짜이는 싱글맘이었지만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어서 인지 16살 민이 참 잘 자란 것 같았다. 



민은 태국어를 하나도 모르는 나와 영어를 잘 못하는 찐짜이 사이에서 통역사가 되어 주었다. 어릴 적부터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혔다고 했다. 마침 방학이어서 회계사인 찐짜이가 출근하고 나면 민과 둘이 시간을 보냈다. 우리나라 고1이면 여름 방학 때는 학원 다니느라 바쁠 텐데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찐짜이의 교육 방식이 정말로 현명했다. 방학 때마다 카우치 숙박 게스트들을 초대해 세계가 그녀의 집에 오게 했던 것이다. 민은 각국에서 온 게스트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세상을 경험했고 방콕 시내 관광 가이드 역할까지 해내며 자연스럽게 사회성과 리더십을 기르고 있었다. 



찐짜이는 나중에 민이 커서 나처럼 배낭 메고 세계를 여행하길 바랐다. 자신이 젊었을 때는 경제적, 사회적 여건 때문에 하지 못 했지만 딸에게는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원래는 3일 정도 머무르는 걸로 게스트 요청을 했었는데, 거의 2주 가량을 머물게 되었다. 찐짜이의 사랑 가득한 태국 음식으로 포동포동 살이 오른 채로 북쪽 치앙마이로 향했다. 



그동안 말레이시아와 태국에서 받은 어마어마한 환대는 마치 나의 꿈의 여정을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로이 말대로 '어떤 신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그 신이 사람들을 보내 나를 돌봐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떻게 다들 처음 본 낯선 사람에게 이렇게 잘해줄 수가 있지. [연금술사]에 나오는 말처럼 내가 자아의 신화를 위해 살고 있으니 하늘이 돕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하늘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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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배낭 여행을 다녀온 이 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블로그에 쓰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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