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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achyoo Aug 03. 2015

브로콜리

짧은 채소 이야기2


그녀는 항상 버스의 앞자리만을 고집했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앞자리에 타고 있을만하다. 앞좌석은 꽤 불편한데도 그녀는 늘 그자리에 앉았다. 왜냐고 물으면 기사아저씨의 등뒤에 앉아야 마음 편히 출퇴근을 하는 기분이라면서.

우리가 헤어진 장소도 버스 맨 앞자리였다. 나는 그닥 버스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만나면 늘 버스를 탔다. '윤오야 그만두자' 나는 그녀의 한마디에 무엇을 그만둬? 되묻지 않았다. 10 정거장 정도를 지났고 안내멘트가 쩌렁쩌렁 울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내 대답을 바라고 뱉은 말은 아니었다.

그녀와 사귀는 동안에 느낀건 그녀가 외로움을 참 많이 탔다는 것이다. 그녀 밑으로 남동생이 하나 있었지만, 그녀와 친하지 않았다. 그녀가 있는 친구라고는 고등학교 동창 한명과 대학에 와서 마음을 기댄 동기 언니뿐.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 아버지와도 거리를 두었고 만나는 그녀의 남자에게나 가족에게 기대는 듯 기대던 그녀였다. '윤오야 우리집으로ㅇ•'

그녀에게서 이런 문자가 오면 그는 별 생각 할 것도 없이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평소 친가친척들과 두터워 주말이 되면 펜션을 운영하는 그녀의 큰아버지댁에서 낚시를 즐기러 가셨다. 그럴 때면 그녀는 그에게 연락을 했다. 허겁지겁 달려온 그를 그녀는 반기지도 않고 온 것만 확인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럼 그는 자연스럽게 식탁에 앉아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나 맞을 뿐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집에 오면 한상 샐러드를 볼에 담아 한가득 해주고는 했다. 그녀의 얼굴만한 브로콜리를 씻으면서 시덥잖은 농담을 했다. '왜 다른 과일이나 채소를 자르면 다른 모양이 되잖아? 그런데 브로콜리는 되게 웃겨. 생긴것도 참 웃긴데 잘라도 작은 브로콜리 그 모양뿐인게 왜 그렇게 웃긴지 몰라.' 혼자 구시렁거리며 또각또각 브로콜리를 자르는 그녀였다.

'윤오야 냄비에 소금좀 뿌려봐' 그녀가 샐러드 채소를 손질하는 동안 그는 이유를 물을 것도 없이 소금을 냄비에 무심하게 쏟았다. 그녀는 소금이 물의 끓는점을 맞춰준다면서 혼자만 아는 이야기인 양 신나게 떠들어댔다.

"아삭하게 삶으려면 샐러드를 손질하기 전에 넣고, 손질이 끝날 때 건져내면 되."


워낙 요리에 관심이 없던 그는 그녀가 하는 말은 듣는둥 마는둥 그저 그녀가 부엌의 동선을 참 잘 쓰는구나 생각했다.

그녀는 샐러드 위에 발사믹오일을 잔뜩 뿌리고는 바람부는 창문께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브로콜리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브로콜리를 삶을 때 냄새는 풀 죽은 잔디밭을 모두 깎아놓은 냄새가 났는데, 먹어보니 전혀 다른 맛이었다. 푸득 웃음이 나면서 따듯한 맛이었다.

버스에서 둘은 헤어졌다. 그날도 그녀의 집에서 샐러드를 먹은 날이었다. '집에 데려다주려고' 하며 쇼파에 걸쳐놓은 가디건을 걸쳐 벌떡 나가던 그녀를 따라 나왔다. 굳이 말리는 그를 듣지도 않고 우리집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번 정류장은 동신사거리입구, 다음정류장은 한성아파트 3단지 입구입니다.' 그가 매번 내리던 정류장은 한성아파트 앞이었고 그녀는 말없이 전 정류장에서 내렸다.

둘이 만난지는 사실 1년도 되지 않았는데 그는 가끔 그녀를 생각한다. 포슬포슬하던 브로콜리와 진취적인 이 채소들의 맛을 그녀가 떠난 뒤에야 느끼고 있었다. 경치가 껏 좋은 식당을 예약해놓았다 말하면 기껏 그녀는 화를 벌떡 내면서 그를 집으로 데려갔다. '너에게 요리를 해준다는 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요리를 하면서 중얼거리던 그녀의 얼굴이 생각났다.

"기억나는 건 별로 없어. 엄마와 아빠는 일하느라, 또 휴일이 되면 나가 노느라 바빴고, 식탁에는 만원짜리 한장을 바꾼 오천원짜리 두 장뿐. 그럼 배달 전단지를 뒤적거리는 동생을 끌고 슈퍼에 가서 채소를 샀어. 불은 건드리지 못했고 나는 누군가의 손이 묻어난 음식을 먹고싶었는지 몰라. 그러다보니 내가 할 줄 아는건 그런 것 뿐이었는지도.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음식은 많지만 샐러드를 손질하는 건 내게 참 따듯해. 차갑게 씻어놓은 맛없는 채소뿐이지만 그건 참 따듯해."

그녀가 쓴 편지를 사실 지금도 지갑에 넣어두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는 왠지 모르게 버스를 더 많이 타고 다니고, 앞자리에서 두번째 칸에 늘 앉게 된다. 지금 이 시간, 퇴근길에 그녀가 앞자리에 앉을까 상상하면서, 유별난 그녀와의 추억은 어디선가 소금을 넣은 냄비에 브로콜리를 보슬보슬 삶는 냄새로 새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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