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수국 이야기
저번에 이어 이번에도 식물 이야기다. 6월이 되었고 점점 공기가 축축해지고 있다. 길가에 핀 수국을 볼 수 있는 시기다. 수국(水菊)은 한자 그대로 풀면 물국화. 물을 좋아하면서 풍성하게 피는 수국은 장마철 산책 중에 만나면 그 자태가 아름다워 눈을 뺏기고 만다.
여름에 가끔 갔던 카페에는 야외 한 구석에 항상 수국이 피어 있었다. 산그늘에 자리 잡은 카페여서 위치상 햇볕도 잘 들지 않아 공기가 꽤 축축한 카페였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좀 기분이 나빠 보이는 데 실제로 좀 음습해서 자리에 앉을 때는 바지에 습기가 배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였다. 물론 방문객의 사정과는 별개로 수국은 아주 잘 자랐지만. 주인장의 취미였다. 대체 왜 이런 곳에 카페를 열고 수국을 키우고 있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지만 아무튼 코로 들어오는 공기는 습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고(곰팡이 냄새도 좀 났고) 그래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람 많은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아주 좋은 쉼터였다. 곰팡이 냄새는 그럭저럭 참을 만했기에.
수국의 꽃말은 여러 개가 있지만 가장 어울리는 것은 역시 변덕이지 싶다. 수국의 색을 보면 토양의 산성도를 알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토양이 알칼리성을 띠면 수국은 붉은색에 가깝게 피고 반대로 산성 토양에서는 푸른 수국이 핀다. 그래서 수국을 키울 때 비료의 산성도를 조절하면 수국 색도 변한다. 변덕스럽지만 변덕의 비밀이 밝혀진 이상 베란다에서도 신비로운 푸른색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카페의 수국도 화분별로 색이 가지각색인 것이 주인장이 비료를 편집증적으로 조절하고 있는 듯 보였다. 수국 칼라 컬렉터라 할 정도로 미세한 그러데이션의 조화는 뭐랄까 ‘이 인간도 고집이 엄청 세겠구나’하는 성격의 단적인 면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식물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묘하게 섬세한 집착이 분명 있다. 식물을 키우다 보니 이런 집착이 생기는 것일 수도 있는데 뭐 아무튼. 식물의 의사표현을 잘 캐치하는 것이 어려운 관계로, 건강하게 식물을 키우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일이기에.
우리가 흔히 아는 풍성한 수국은 사실 품종개량이 되어 전해진 수국이다. 눈을 즐겁게 해 주는 이런 풍성한 수국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바로 캐치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바로 무성화라는 것. 수술과 암술이 없고 꽃잎만 예쁘게 달려 나비가 둥근 공으로 뭉쳐진 것 같은 모습으로 여름의 비밀을 꽁꽁 둘러싸고 있다. 그 모습이 나는 어릴 적부터 좋았다. 아직 어렸을 때 나비를 그려보라고 하면 한동안 점 하나 찍고 그 주변에 수국 잎처럼 생긴 날개를 두 개 그려 넣었었다. 그때는 그 모습이 내 마음속 나비였다. 수국이 활짝 핀 날 비가 그치면 항상 텁텁한 공기 속에는 무지개, 나비도 어딘가에서 날아와 자리를 잡고 그 모습을 가만히 앉아 지켜보다가 해가 서서히 이동해 그늘에서 벗어나면, 환한 빛 속에 나비와 함께 수국도 한 장 한 장 날아가버리는 것이 아닐까. 예전에는 그런 상상도 했었다.
초여름 카페 창문을 통해 수국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가끔 햇빛이 내려올 때면 예전의 상상이 환각으로 보일 때가 있다. 수국의 또 다른 꽃말 중에는 진심도 있다. 장마철에는 주인장도 나도 부스스한 곱슬머리. 카페에 손님이 너무 없으면 주인장은 가끔 화분에 비료를 주러 나갔다. 창문을 통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숙였다 펴지는 허리에 맞춰 풍성해진 뒤통수가 들썩였다. 여름에는 그렇게 산책 중에 가끔 변덕을 부려 들른 카페에서, 풍성해진 뒤통수를 보며 풍성해진 수국만큼 공기 중에 꽉 찬 커피 향을 맡으며 커피를 홀짝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