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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Jul 08. 2023

크림 파스타 두 개 주문하겠습니다

인생이 압도적으로 즐거워진다는 것은 행운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할 수 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인간 관계도 원만하고 경제적으로도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 아닐까. 마치 매일이 생일인 듯한 기분이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냐면 말이죠, 생일이 곧 다가오는데 아무 느낌이 안 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에 만약 (직업으로든 취미로든) 내가 글을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된다면 유년기의 이야기를 많이 쓰지는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성장 환경이 고통스러웠거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정신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아서 뭐 그런 이유로 이런 생각을 품게 된 것은 아니구요. 그냥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워낙 재미가 없었던 어린 시절이었기에 내가 유명한 몇몇 소설가들처럼 (그것이 꾸며낸 것일지라도) 어린 시절의 신기한 체험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그래서 지금도 어린 시절에 관해 써 보라고 하면 쓸 말이 없다. 생일이라는 소재를 들고 글을 적어나가려고 시도했지만 글의 진전이 없어 지금 새로 쓰고 있는, 어떻게 보면 알맹이가 없고 가벼운 글을 적어나가고 있는 이 순간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축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7월 생이어서 어릴 때는 생일이 좀 외롭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이유는 별 것 없고, 7월은 항상 방학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떠들썩한 생일 파티 같은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고나 할까. 어릴 적엔 외로웠지만 나이가 들어 돌아보니 그것은 그것대로 참 행운이었다고 본다. 옛 여자친구가 언젠가 했던 말인데 자신의 생일이 거의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날이라는 것을 절감할 때 좀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나. 그 말에는 아직도 공감하는 입장이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그러나 잠깐, 50명만 모여도 생일이 같은 사람이 있을 확률이 대략 97퍼센트라는 수학적 관점에서 보면 ‘대다수’라는 부분은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 지하철만 타도 50명은 족히 넘는 사람들이 열차에 끼여 타서 어딘가로 가는 중인데 그중에서 생일이 같아 비슷한 두근거림을 안고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리는 없다.


 여자친구의 말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고 생일에 대해 별다른 감흥도 없긴 하지만 생일을 보내는 방식을 굳이 선택할  있다면 항상 평소보다 조금은 자유롭게 보내고 싶었다. 예전부터 그랬다. 마치 지리를  모르는 도시에서 노선도를  보고 아무 열차나 타고 떠돌아다니다가 근처에 눈에 띄는 식당에서 대충 저녁을 때우고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한 밤을 보내다 돌아오는 식의 하루를 보내는  같은,  대충 이런 느낌이다. 가끔은 맥주를 마시다가 익숙해지지 도시에서 익숙하지 않은 잠을 청해 보기도 하고.


어른이 되어서 느낀 생일의 유일한 좋은 점을 말해보면 생일은 좋은 구실이 된다는 것. 생일이니까 좀 어색한 사이여도 인사 한 번 정도는 서로 나눌 수 있고, 좀 가까운 사이면 근사한 저녁을 함께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이 오늘 내 생일이니까 이 정도는 좀 봐주라고.’ 하는 식의 태도가 살짝은 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조금은 멋대로 굴어도 괜찮아지는 점이 생일의 좋은 점이다.


사람이 없는 공원을 질릴 때까지 걷다가 같이 저녁을 먹고 근사한 저녁 시간을 보낸 것이 아직까지는 최고의 생일이다. 저녁에는 파스타를 먹었는데 파스타는 물론 내가 정한 메뉴였지만 조금만 더 멋대로 굴어보고 싶어서, 오일 파스타 대신 몰래 크림으로 바꿔서 주문을 넣었다. “평소에는 오일 파스타랑 크림 파스타 두 개 시켰는데 오늘만큼은 크림 두 종류를 시켜도 괜찮잖아?” 물론 이후 살찐다고 혼이 났지만(그래도 밸런스를 고려해서 크림 파스타는 매운맛과 느끼한 맛 두 개 시켰는데 말이죠) 아무튼 생일은 그런 날이었다. 앞으로도, 질릴 정도로 변함없이 찾아오는 생일에는 유목민처럼 돌아다니다가 배가 슬슬 고파올 때 따뜻한 파스타나 먹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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