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집은 물론 지하상가 2채와 가게도 두 곳이나 운영할 만큼 여유가 생겼다.
자식들 모두를 다 출가시키셨던 부모님은 그 즈음부터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셨다. 미국 버지니아에 계신 큰 삼촌의 주선으로 미국일대를 여행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여행 중에 혼절을 했다는 소식에 우리 모두는 큰 충격을 받았다. 상태가 워낙 위중했던 터라 한국으로 돌아 오실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날로 버지니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큰 병원으로 입원을하셨다.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던 아버지는 그날로 혼수상태에 빠지셨고, 어머니는 피가 마르는 듯 너무나 슬퍼하셨다.
이제야 좀 살만하실 때 저리 쓰러지셨다는 것이 어미니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드셨던 것이다. 산 너머 산이라더니 의료보험없이 일반으로 입원을 하셨던 터라 아버지의 병원비는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올라갔고, 두 달이 넘은 시점에서는 3억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지면서 모든 장기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나중에는 혈소판에 염증이 생기면서 수술을 하며 수혈을 했으나 피는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는 그 큰 병원의 혈액이 소진이 될 정도로 아버지는 생사를 넘나들었다.
한국에서 그 소식을 듣게 되면서 남편에게 아이들을 부탁을 하고는 그길로 기도원으로 달려갔다.
당시 나로서는 믿음이 뭔지 신앙이 뭔지 기도가 뭔지 무지하리만큼 알지 못했다.
일주일을 금식하며 아버지를 살려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금식 삼일 째 되던 날, 문득 기도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엄청난 병원비가 걱정되었다.
막막한 상태에서 아버지를 살려주실지, 생명을 거두실지 어떤 것이 하나님 뜻인지 알려달라며 일주일을 통곡하며 매달렸다.
그야말로 사생결단하는 기도였다. 아울러 병원비도 해결해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꿈속에서 본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
일주일 금식 마지막 전날 꿈을 꾸었다.
오래전 살았던 옛집에서 아버지를 보았는데 내가 아버지의 손을 이끌며 빨리 가자며 재촉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밖에는 파란색 정장을 입은 세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모두가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분들을 따라 도착한 곳은 낯선 큰 강 앞이었다.
강 앞에 도착하자, 세 남자와 아버지는 강을 미끄러지듯이 걸어갔고, 얼마 후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나도 따라가려했으나 뭔지 모를 힘에 의해 가지 못하고 물속에서 허우적대다가 꿈에서 깨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아버지께서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아버지의 영혼을 받으셨다는 확신을 주셨다.
아버지의 시신은 석관에 모셔서 한국으로 이송 되었는데 체중이 25키로에 불과 했던 탓에 석관에도 불구하고 그리 무겁지는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고향 선산에 아버지의 시신을 안치하던 날, 나는 하늘을 향해, 이 순간을 보고 계실 아버지의 영혼을 향해 마음속으로 소리를 쳤다.
“아버지 고생 많으셨어요. 나중에 다시 만나요. 잘 가세요.”
장례식을 무사히 치렀으나 해결해야 할 한 가지 큰 문제가 남아있었는데, 바로 병원비였다. 이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큰 고민에 싸여있던 어느 날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미국에 계신 큰 삼촌께서 아버지를 위해 병원비가 책정되지 않도록 합법적으로 힘을 쓰셨다는 소식이었다.
아무것도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매달리기만 했는데, 그 부족한 기도를 들으신 것이다. 큰 헌금을 드린 것도 아니었고, 다만 목숨을 걸고 매달린 것밖에는 없었는데 그런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데 대해 심장이 떨려왔다.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세상에나…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었어.”
평생을 정직하게 살아오신 아버지의 청렴함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그 영혼도 받아주신 것이다.
아버지는 성격그대로 평생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오셨다. 어머니를 비롯해 남은 가족들을 위해 마지막 가는 길에 큰 선물을 안겨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