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집에 대한 애착이 유달리 남달랐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일구어낸 결과물과 같다 여겼기 때문이다.
20년 전만 해도 우리 가족은 해도 안 들어오는 12평 되는 지하 빌라에서 살았었다.
떠올리기조차 꺼려지는 그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하나님께서 내 눈물을 보시고 지금의 아파트로 옮겨주셨다고 확신한다.
바퀴벌레가 항시 득실대던 그곳, 빨래 도둑들과의 전쟁, 수시로 출몰했던 배변 도둑들, 소음은 말할 것도 없었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옆집 아줌마였다. 얼마나 부지런한지 걸레를 들고 살았던 반면, 나는 깊은 우울증으로 인해 삶의 희망조차 놓고 살았었다. 그런 나를 아줌마는 이해하지 못했고, 시어머니 마냥 잔소리를 해댔다.
위층에서 계단 청소를 한다고 물을 뿌려대는 바람에 지하층까지 물이 들이찼던 일은 다반사였는데, 조금이라도 늦게 나오면 따발총을 쏘아댔다.
내가 보기엔 진짜 말끔해 보여도 그 아줌마의 눈엔 레이저가 장착이 됐는지 기가 막히게 먼지를 찾아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잔소리를 해대는 통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가슴앓이만 했던 시절이었다.
그즈음 나는 습관처럼 하나님께 이사 가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었지만 현실을 보면 사실 희박한 꿈에 불과한 망상이었다.
시내에 볼일이 있어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자주 눈에 띄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아파트였다. 지금은 그냥 일반 서민아파트로 전락했지만 당시만 해도 전국에서 손꼽히는 아파트 중에 하나였다. 튼튼한 집 구조는 물론 대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조경들은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곳이었다. 그곳을 바라보는 일이 내겐 너무나 힘들었고, 버스 안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친 일도 많았다.
당시 남편은 강사 일을 했었는데 강사일이 불규칙하다 보니 수입에도 차질이 있었고, 나중에는 그마저도 줄어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용산에서 작은 사무실을 열게 되었는데 IMF를 만나면서 환율이 두 배로 뛰는 바람에 더 이상 운영할 수 없어서 문을 닫아야 했다. 그로 인해 남은 빚이 자그만 치 3억이 훨씬 넘었다. 서울에 분양받은 아파트를 팔아서 일부 빚을 갚았으나 세상 말로 껌 값에 불과했다.
거래처에서 미수금을 받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남편에게 연락을 했으나 해결방법은 없었다. 급기야 남편이 감옥에 갈 결심까지 굳혔음을 알고는 그날부터 작정기도에 들어갔다.
강대상 앞에서 채권자 5명의 명단을 놓고 한 달 동안 살려달라고 죽을 듯이 매달렸다. 목사님과 함께 명단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쏟았다.
한 달이 지나, 남편이 5명의 채권자들을 만나는 날이 되었고, 마치 사형수처럼 심장이 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전화기를 붙들고 계속 도와달라는 기도를 올렸고 반나절이 지나 드디어 연락을 해왔다.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채권자들이 남편을 고소하는 대신에 그 자리에서 80%를 탕감해준 것이었다. 남은 20%도 우리에게는 큰 금액이었으나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 중에 남편이 친한 형을 따라 미장일을 배우게 되었는데, 힘든 노동에 비해 수입이 꽤 짭짤하다는 것을 알고는 그날부터 그 형을 따라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강사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은 것이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한마디를 건넸다.
“당신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 언젠가는 큰일을 할 테니까 희망을 버리지 말아요”라는 위로를 건넸다. 그것은 단순한 격려의 조언이 아닌 진심이었으나, 남편은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되레 화를 냈다.
얼마가 지났을 까 남편 후배의 소개로 용산에 있는 제법 규모가 있는 J기업체로 취직을 했는데 채권자들에게 돌아갈 20%의 빚을 그 사장님이 갚아주는 조건으로 입사를 했다. 그렇게 해서 3억이 넘는 빚이 100% 해결된 것이다.IMF시절의 3억이니 지금기준으로 계산해봐도 아찔한 금액이다.
남편이 새로 입사한 곳에서 받은 첫 월급은 50만 원 남짓이었다.
강사일로 벌어들인 수입에 비해 너무나 작은 월급이었으나 빚도 해결하고 전공을 살릴 수 있다는 것에 그나마 안도감을 느꼈다.
당시 그 기업체는 큰 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어렵게 들어간 곳이 하필이면 힘든 곳이라는 것을 알고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입사 첫날부터 영업용 큰 캐리어에 물건을 산더미처럼 잔뜩 쌓아 들고는 용산 전체를 헤집고 다니며 물건을 팔기 시작했는데, 언변에 뛰어난 재주가 먹혔는지 반나절 만에 물건은 동이 나는 적이 많았다.
그곳에서 4년 넘게 최선을 다해 일을 하는 동안 남편의 활약이 점점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당시 그 기업체는 미수금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금액만 해도 십억에 가까운 금액이었으나, 거래처에서는 배째라식으로 일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포기상태에 있던 중 남편이 그 일을 전담을 했는데, 일 년 만에 모든 미수금을 받아내는데 성공을 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남편의 성격이 그대로 먹힌 것이었다.
남편에게는 사람을 다루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는데, 그것이 영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그 사업체가 남편으로 인해 점점 회복해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기존 영업의 열 배까지 올라가게 되었는데, 사장에게는 남편이 천군만마나 마찬가지였다.
그즈음 남편이 사장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는데 기본 시급 4백만 원에, 아파트를 요구한 것이다. 다 쓰러져가는 회사가 남편으로 인해 안정적으로 회복한 것이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사장은 남편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을 하고, 계약을 했다. 50만 원에서 시작한 월급이 4백만 원까지 오른 것이다.
그곳에서 4년을 넘게 몸담아 일하는 동안 사업체는 점점 더 성장해갔으나 사장은 약속했던 아파트는 이행하지 않았고, 죽을 고생을 하며 일으켜 세운 곳에서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몇 달 동안 큰 배신감에 너무나 힘들어했으나 다행히 남편에 대해 잘 아는 거래처에서 남편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해왔고, 그곳에서 남편의 요구대로 월급 4백50과 아파트를 제공하겠다고 한 것이다. 몇 달이 지나 사장은 약속대로 우리가 원했던 아파트를 매입하며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일 년 동안 자신의 명의로 하되 일 년이 지나 명의를 넘겨주겠다고 제안을 한 것이다. 순간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졌고,이 일에 대해 일 년 동안 절대 침묵하라는 응답이 왔다.
12평이 조금 넘는 지하빌라에서 31평 아파트가 생겼다는 것은 실로 꿈같은 일이었다. 일 년 동안 침묵해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주변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입이 근질거리고 조바심이 났지만, 일 년만 참으면 진짜 아파트가 생긴다는 기대감에 조급증들을 억누르기에 바빴다. 심한 날은 하루에 1킬로씩 빠진 적도 있었다.
이일로 인해 침묵이 얼마나 고된 훈련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일은 아이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았고, 남편과 나만 아는 비밀로 부쳐졌다.
일 년이 지나 사장으로부터 명의를 넘겨받았던 날, 예상외로 덤덤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 침묵 훈련은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자만심을 꺾는 다룸이었고, 덕분에 나는 이후로 입을 닫는 일에 조금씩 적응할 수 있었다.
바퀴벌레가 득실대던 빌라에서 해방되던 날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야말로 애굽을 탈출한 것이다. 전부 다 버리고 간단한 옷 몇 가지만 챙겨서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빌라를 매매한 돈으로 가구와 살림살이 일체를 새로 구비도 했다.
꿈만 같았다. 조망도 너무 좋았고, 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조경도 너무나 근사했다.
우리가 아파트로 이사했다는 사실을 알고 주변에서는 난리가 났다.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것을 잘 알았던 이들이 무슨 돈으로 이사를 했는지 궁금해했으나 하나님이 사인을 주실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마음에서 정리가 되자, 그제야 그동안에 겪었던 일들에 대해 조심스럽게 간증을 했다. IMF 시절에 3억이 넘는 금액을 지금의 환율로 계산하면 수십억은 족히 넘을 것이다.
수억에 달하는 빚 일체를 탕감받은 일과 31평 아파트로 이사를 한 일에 대해 부러움과 시기심들이 주변을 맴돌았다.
이런 비밀을 말을 한들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믿지도 않겠다 싶어서 가능한 말을 하지 않았다.
이후로 남편은 여러 힘든 과정을 겪었고 하나님께서 지금의 사업체를 운영할 수 있도록 도울 손길들을 만나게 하셨다.
아무 가진 것 없던 남편은 주변의 도움으로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게 되었고, 현재는 법인체로써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사업체가 많은 반면 남편 회사는 오히려 그로 인해 운영에 큰 도움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깊은 은혜 이리라.
한편 남편이 처음 입사했던 J기업은 남편이 퇴사한 이후 몇 년이 지나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부도를 맞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일할 장소가 없어서 남편이 사무실 한 곳을 내주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 앞날은 알 수 없다더니 J사장님이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쨌거나 그 사장님 덕분에 우리가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만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