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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서기 Jun 25. 2022

팔할 인생

근래들어 멍 때리는 일들이 점점 늘었다.

우여곡절 끝에 넘어 든 이 고개가 낯설기도 하고 잘나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마음만은 청춘의 팔할을 즐겨내고 있는 것이다.

확연히 다른 시간들을 맞닥뜨리고 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감사한지, 십여 년 전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생각이 자주 들었던 까닭에 가슴이 먹먹할 때가 많았다.


사실 나는 그닥 착한 딸이 아니었다.

치매와 암으로 투병하다가 돌아가실 때까지도 나는 사랑한다는 단 한마디도 못 해드렸었다.

어머니 나이가 되고 보니 어머니의 사랑의 방식이 조금 남달랐을 뿐 그것 역시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족히 수십 년이 걸렸다.

내게 남달리 재능이 많다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주변으로부터 자주 듣게 되면서 부터였다. 그러한 모든 재능은 사실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었다.


글을 배우기 시작한 때부터 낙서를 하거나 늘 상 뭔가를 쓰곤 했었다.

한참 예민했던 청소년시절, 스스로 고립될 때가 많았었는데 그러한 나를 잡아주던 힘이 바로 일기였다.

그렇게 결혼이후까지 꽤 많은 양의 일기들이 쌓여져갔다.     

어느 때부턴가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하면서 추구하는 글의 세계가 조금은 달라져있었다.

어느 날 예전 일기들을 살펴보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내 스스로가 얼마나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날 보물처럼 애지중지 아끼고 간직했던 수십권의 일기들을 전부 소각해버렸다.      

내가 글쟁이가 되리라고는 단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 날 수많은 시행착오들이 지금의 그 글 소재가 되는 데에 큰 전환점이 된 것이 사실이다.




글이라는 것이 단순히 재능만으로 필사되어지는 것이 아닌 작가의 풍부한 삶의 경험에서 고백되어져야 진솔한 글이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또 한 가지 캘리그라피 강사로 활동하는 요즈음 세상 말처럼 살맛이 난다.

한글자한글자 마다 삶을 풀어내고 때로는 한풀이를 하기도 한다.


몇몇 수강생은 캘리를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하고 힐링이 된다는 말에 큰 보람을 느낀다.

늙는 게 아니라 익어간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요즘, 좀 더 아름답게 익어가는 비결을 살펴보고 있다.


마음에서, 손에서 인생에서 움켜쥐고 있던 것들이 조금씩 풀어지는 감사한 요즘이다.


캘리그라피 반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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