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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팀장님 Dec 28. 2021

모닝타고 서울에서 부산가기






나는 꽤 오래 전부터 운전을 했다. 대학교 4학년이던 1995년부터 운전을 했으니 당시 또래 친구들에 비해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부산에서 운전 면허를 따고 부산에서 운전을 했기 때문에 소심한 마음으로 과감하게(?) 운전했다. 다만 고속도로 운전을 많이 겁냈기 때문에 짧은 거리의 창원, 양산까지는 차로 움직일 수 있었다. 주로 세피아, SM5 를 운전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마티즈를, 결혼하고 나서는 모닝을 운전했다. 임신을 하고 핸들을 돌리는 것이 배뭉침과 더불어 무리였는지 운전이 부담이 되었고, 출산을 하고는 아이가 조심스러워 운전에 많이 위축되었다. 그래도 움직일 때의 짐을 생각하면 운전을 하는 편이 훨씬 나았기에 여전히 자동차는 나의 신발 다음이었다. 다만 경기도로 이사를 오면서 내가 사는 남양주에서 직장이 있는 강남까지의 고속도로를 타기도 조금 두려웠다. 회사를 다니며 1주일에 한 번 나가는 성남의 한 대학교 강의도 꾸역꾸역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했다. 뭔가 신경쓰이는지 낯선 지역을 운전하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2020년, 육아휴직을 시작하며 버킷리스트를 만들게 되었는데, 문득 친정이 있는 부산까지 운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베프가 뉴질랜드에서 한 달동안 아이들과 함께 캠핑카를 운전하며 여행을 다녔다는 소식도 한 몫했다. 내 작은 차, 모닝으로 서울에서 부산을 가다니,,, 생각만 해도 뭔가 머리와 가슴을 짓누르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또 한 편으로는 국제면허를 따서 여행짐을 이고지고 메고 다니지 말고 운전하며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먼저, 인터넷을 다 뒤져 '과연 모닝으로 서울에서 부산을 갈 수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여러가지 다양한 의견들이 많았는데, 어쨌거나 전국일주를 한다는 사람들부터 꽤 긍정적인 반을이 많았다. 다만 새벽 시간에 출발을 하라는 의견이 많았다. 대전까지는 상당히 밀리기 때문이다. 마침 그 결심을 할 때쯤 천안의 한 대학교에서 특강 의뢰가 들어왔다 학교를 검색해 보니 천안IC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게 아닌가! 집에서 1시간 30분 소요! 직장인 강남도 못가는 나였지만 시도해 보기로 했다. 몇 번이나 코스를 확인하고 혼자만의 시뮬레이션을 한 후, 초긴장 상태로 잘 다녀왔다. 정말이지 가의보다 더 큰 뭔가를 이룬 느낌이었다. 천안휴게소에서 아이에게 줄 호두과자를 사들고 기쁜 마음으로 집에 들어왔다. 긴장하여 핸들을 잡은 손에 땀이 흥건했지만 뭔가 하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에 친한 지인의 집이 있는 수원 영통으로 가 보았다. 이천 테르메텐도 다녀오고, 여주 프리미엄아울렛,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에도 다녀왓다. 어쨌거나 갈 만했다. 검색해보니 대전만 지나가면 금방 대구, 부산이라 했다.



찬바람이 부는 늦은 가을, 새벽 5시 출발을 목표로 일찍 일어나 시동을 걸었다. 경기도에서 부산은 너무나 멀지만 대전,대구로 3등분하고 또 그 안에서 다시 반씩 쪼개고 들러야 할 휴게소와 기름을 넣을 곳 등을 정한 뒤 출발했다. 대전을 지날 때 쯤에는 내가 왜 이 긴 운전을 시작했을까 싶다가 대구를 지나 경주 휴게소가 보이자 뭔가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거기서부터는 사람들의 운전이 터프하고 콜락숀 소리가 점점 커진다. 아우,,, 그러나 무난히 2번의 휴게소를 들러 10시에 부산집에 도착했다. 정말 에베레스트라도 등반한 기분이었다. 차가 있으니 해운대며 기장이며 놀러 다니기도 넘 좋았다. 몸이 좀 피곤하긴 했지만 그 성취감이란,,,



그리고 그 해 두 번 더 부산을 다녀왔다. 모닝 뒷좌석에 김장을 꽉 채우고, 트렁크에 밑반찬을 가득 실어서...






© bobzepplin, 출처 Unsplash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하면서 안성스타필드, 롯데의왕몰, 부천, 수원, 청주, 충주 등 왠만한 시와는 차로 다닌다. 터미널까지 가지 않아도 되고 막차 시간, 첫차 시간 계산 안해도 되고 짐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좋다. 무엇보다 장거리 운전에 대한 두려움이 싹 없어진 것이다.



성경이라는 두꺼운 책을 읽을 때, 대략 난감한 프로젝트에 임하는 태도도 조금 바뀐 것 같다. 큰 덩어리를 기준을 가지고 쪼개 보고 기준을 바꿔 보기도 한다. 요즘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추풍령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4시간 반만에 부산에 갈 수 있다. 큰 바위 앞에서 어떻게 쪼개 볼 것인가? 우선 생각해 본다. 이렇게 저렇게,,,작은 것부터 건드려 보기도 하고 쉬운 것부터 건드려 보기도 한다.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는 마음으로 성급하게 저지르지 않게 되었다. 일단 큰 일을 하나 해결하고 나면 나머지 작은 일들이 아주 수월하게 해결되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1년에 두어번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모닝의 시동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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