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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보살과 민바람 Sep 24. 2023

퀴어 ADHD 작가는 요즘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안부와 근황, 신간 예고

글을 올린 지 한 달하고 보름이나 지났네요.

오늘은 가볍게 요즘 얘기를 적어 봅니다.


저는 언제나처럼(하지만 새롭게) 마음 다루기가 어렵기도 하고, 보람도 있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성추행 고소 건이 마무리된 뒤에 피부과 시술 부작용으로 다시 소송을 고민중이고, 공무원의 실수로 큰돈을 손해보는 일도 생겨 손해사정사에 의뢰를 해둔 상태입니다.

사실은 이런 일이 생길 때, ADHD가 있다는 사실이 진실을 소명하는 데 걸림돌이 되곤 합니다.

병원에서 시술의 부작용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과 의료적인 실수를 한 것은 사실인데 제가 가진 ADHD적인 면모(평소 잘 못 알아듣고, 결정을 여러 번 번복하고, 감정기복 있어 보이는 것)에 모든 원인이 덮어씌워지기도 했고, 공무원이 저에게 서류를 잘못 준 것도-ADHD가 있다는 정보와 함께 제3자가 판단할 때는-제가 뭔가 잘못 말했거나 공무원의 말을 기억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가 쉬운 거죠.


이렇게 일로 얽힐 수 있는 관계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ADHD가 있다는 걸 최대한 안 밝히는 게 좋고, 중요한 설명을 듣거나 문의를 할 때는 꼭 녹음을 해서 증거를 남겨야 한다는 걸 이번에 다시 한번 느끼게 됐습니다.(저는 지난 사건 이후 바디캠을 샀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비슷한 상황을 겪어, 펜타입 녹음기를 다시 샀습니다.) 그 순간에는 흐름에 휩쓸려 무감각하게 있기 쉬운데, 나중에 자신에게 중요해질 수도 있는 일이 아닌지 감지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ADHD가 있는 분들께 비관적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그게 쉽게 맞닥뜨리는 현실이니 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걸 피할 수는 없지만, 이제 덜 힘들어하고 빨리 받아들일 수 있게 됐습니다. 저에게 ADHD가 있어서, 충동적이고 잘 확인하지 않아서 그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그 후에 노력했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해도, 그게 저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걸요. 그리고 같은 실수를 자꾸 반복하는 듯해도 저의 대처가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과 마음으로 이별하는 일도 계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과보를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사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에도 신청했었는데, 봉사자라는 여러 사람에게 전화가 오는 것부터 저한테는 장벽이더라고요. 이번에는 취소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토요일마다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마음 강의에 나가면서 마음의 기술이 조금 는 것 같아요.

지나가버린 일. 그리고 내가 아닌 사람의 마음.

이 두 가지를 통제하려 애쓰는 건 내가 깎여나가는 일 뿐인 것을 이제는 받아들여가는 것 같습니다.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당장 보아 '나쁜 일'에 쉽게 가려지는 좋은 일들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좋은 일들.


그동안 퀴어 커뮤니티에서 하는 소설 수업을 들으며 퀴어 단편 소설을 한 편 썼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 때 생각없이 썼던 것 말고는 소설 쓰기에는 번번이 실패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소설은 안 되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늘 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A4 18장의 소설을 완성해서 기쁩니다.

퀴어 작가님이 하시는 수업이어서 제 이야기를 쓰는 것도, 내용을 이해받는 것도,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편하고 좋았어요.


사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있는 얘기를 쓰다 보니 창작의 고뇌를 제대로 겪지는 않았습니다. 3주만에 초고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고민할 부분이 많지 않아서 였던 것 같아요. 물론 실화를 쓸 때는 또다른 고충이 있긴 합니다. ADHD의 특성인지 저의 특성인지, 저는 글에서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거든요(이런 점이 편집하시는 분들을 고생시킵니다). 에세이를 쓸 때는 어느 정도 용인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소설은 그래서는 안 되니까, 앞으로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어쩌면 계속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자신이 없었는데 한 편을 써냈으니까요. 제 퀴어 연대기를 단편 연작으로 써서 한 권을 만들고, 나중에 장편도 쓰는 게 지금의 꿈이에요.


그동안 작년 봄에 계약했던 순우리말 에세이의 교정 작업도 있었습니다.

이제 2교를 시작하는 단계고요. 책은 10월 말쯤 나올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퍈집팀장님의 노고로 유능한 사진 작가님이신 신혜림 작가님과 협업을 하게 되어서, 책에는 사진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배우 이성경 님과 하연수 님의 사진으로 유명하신 분이라고 해요.

내용면에서도 콘셉트와 디자인면에서도 담당 팀장님이 공을 많이 들이셔서 어떤 책이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책이 나오면 대대적으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D


하루를 평범하게 보내는 게 대단한 일로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뭐 이런 식으로 살아있어도 나쁘지 않아, 생각합니다. 아닌 것처럼 보여도 다들 그런 날들이 있을 테니까. 경계선 위에 까치발로 딛고 선 듯 아슬아슬한 날들. 그래도 내일하고 모레는 다를 수 있으니까.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는 것 같아요.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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