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당사자 3명으로 이루어진 '양가감정' 팀에서 <우아한 또라이로 살겠습니다>를 읽고 인터뷰 요청을 주셨습니다. 팀 이름이 제 마음 같아 무척 마음에 들었고, 다양한 방식과 매체를 고민하면서 총력으로(!) ADHD 당사자와 세계를 연결할 길을 찾아나가시는 모습이 진심으로 멋졌습니다.
인터뷰 때도 편안하고 즐겁게 이끌어 주셔서 힘든 시기에 했음에도 참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눴어요. 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이 인터뷰 내용이 실린 책자가 나왔습니다.
ADHD 당사자와 주변인의 에세이를 모아 나온 독립출판물인데, 저도 인터뷰 외에 에세이를 기고했어요.
글이 길어질 것 같아 오늘은 인터뷰 내용만 옮겨 봅니다.
<우아한 또라이로 살겠습니다> 민바람 작가 인터뷰
Q. 인터뷰를 수락해 주신 이유에 대해서 먼저 말씀해 주세요. 다른 당사자들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던 걸까요?
A. 제 세대에는 정말 정보가 없어서 제가 ADHD인 걸 알기가 더 어려웠거든요. 정보 하나하나가 고마웠고, 찾아 헤매던 정보를 봤을 때는 그 문장 자체로 치유받는 기분도 들었어요. 누군가는 필요로 할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도 썼어요. 정말 힘들었던 사람으로 제가 할 수 있는 한은 인터뷰에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제가 느꼈던 고마움을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요.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지금은 편의점 알바생이자 작가입니다.주 3일 편의점에서 일을 하고, 나머지 4일은 책을 읽고 글을 써요. 요새는 시를 계속 쓰고 소설을 수정하고 있어요. 간간이 강연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 단계를 통해 ADHD인 걸 알아차린 케이스예요. 고등학교 때 친구들한테 특이하다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나 좀 이상하구나’ 인지했어요. 그때는 수업시간에 집중을 못하고 공상하는 것이 스스로도 좀 불편해서 ‘나는 남들하고 참 다르다’고 막연히 생각했었어요.
대학교에 가면서 대인관계에서의 불편함으로 구체화 되더라고요. 저는 일대일 관계에서도 말을 잘 못 알아 들었어요. 22살에 한국어 교사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는 정말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제가 질문을 하고도 학생의 답을 안 듣는 거예요. 그리고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고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원까지 졸업을 하고 본격적으로 한국어 교사로 일을 하면서도 비슷한 상황들을 계속 겪는 거예요. 수업 내내 뭘 찾아다니고, 제가 하는 말에 스스로 집중을 못하고,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까먹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뭔가 이상한데 이게 뭘까’에 대해서 국어학, 심리학, 사회학 책을 보며 연구했어요. 그때는 ADHD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고, 또 제가 해외에 많이 다니다 보니까 한국에 정보가 있어도 더 늦게 접했던 것 같아요.
30살쯤에 ADHD라는 걸 인터넷에서 보고 ‘이거 완전 내 얘기인데’라고 생각했었어요. 제가 ‘물건을 너무 많이 잃어버린다’, ‘길을 너무 못 찾는다’ 같은 증상들을 써놓은 게 있었는데 자가진단 항목이랑 거의 겹치는 거예요. 저한테는 유레카였죠. ‘나 이게 맞구나’라고 200% 확신했는데 그때까지도 정신과를 막연히 두려워 했어요. 약을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컸어요. 그리고 검사 비용이 저한테는 비싸다 보니까 망설여지더라고요. 지금 같으면 ‘내 삶의 질이 개선되는데 그게 얼마라고’ 생각할 텐데 그때는 모든 게 막연했어요.
그래서 ADHD라는 심증만 가지고 상담센터에 갔어요. 상담센터에서는 제가 ADHD가 아니라고 단언하셨죠. 우울증과 헷갈리는 면도 있기 때문에 저도 ‘아닐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 다음에 기록이 남지 않는다고 해서 한방신경정신과를 갔어요. 거기에서 ADHD일 수 있다는 애매한 진단을 받았었죠. 다음으로는 ADHD를 전문으로 하지 않는 정신과에 갔죠. 거기서도 우울증 약을 처방해 주셨는데 제가 부작용을 너무 심하게 겪으면서 안 가게 됐어요. 마지막으로 지금 다니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를 갔어요.
그렇게 38살쯤에 ADHD 확진을 받았죠. 세 가지 검사를 다 했고 ‘확실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Q. 진단을 받으시고 나서, ADHD가 나를 설명하는 개념이라는 명료함을 얻으신건가요?
A. 제가 너무나 원하고 찾아 헤맸던 것을 확인한 경우였기 때문에 ‘드디어’, ‘역시 그렇구나’라는 안도감과 소속감이 생기는 기분이었어요. 소속감이라고 표현해도 될까요? 자신이 이방인 같은 기분을 진단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다들 느끼셨을 것 같아요. 김초엽 작가는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외계성’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규정되지 않는 나는 무엇인가’라는 의문과 비슷한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소외감에 둘러싸여서 살다 보니까 나 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속감이 들었어요. 제일 컸던 건 해방감이에요. 자가진단으로 ADHD라는 걸 알았을 때는 못 보던 것이 확 열리는 느낌이었어요. ‘그래,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있을 것 같았어’라고 생각했죠.
Q. 가지고 계시던 어려움들은 약을 드시고 나서 많이 해결이 되셨나요?
A. 크게 세 가지가 달라졌어요. 일대일 관계에서도 상대방 말에 집중을 못하는 현상이 많이 줄었어요. 지금도 멍해질 때가 간혹 있지만 횟수는 현저히 줄었어요. 그리고 버스를 타고 내릴 때에 예전에는 버스 번호를 안 보고 타거나, 핸드폰 보다가 한참 더 가서 내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약을 먹으면 확실히 그렇지 않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시간 감각이 조금 생긴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는 걸 전혀 못 느끼잖아요. 준비하는 데에 40분쯤 걸리겠지 했는데 2시간이 걸린다든지요.
관계에서는 제가 치료 전에 사회 불안 장애가 심해서 3명만 모여도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모임을 못 했는데 이제 참여할 수 있는 선택의 영역이 넓어졌어요. 제 취약점이 뭔지를 분명히 아니까 어디까지 참여를 하고, 어디는 참여를 안 하겠다라는 기준이 생겼어요. 이 활동에서는 내가 어떤 한계가 있을 수 있으니까 운영진에게 ADHD가 있다는 얘기를 하기도 하고요. 굳이 ‘병밍아웃’을 안 해도 내가 이런 부분에 취약하다는 것만 말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말을 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없다는 기준도 생겼어요.
Q. 저는 <우아한 또라이로 살겠습니다>를 읽으면서 책에서 담고 있는 메시지가 자기 긍정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자기를 긍정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을 몇 개만 말씀해 주시겠어요?
A. 자기 긍정은 저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인데, 이게 되는 줄 알았다가도 상황이 달라지면 내가 이 정도로 나를 안 좋아하나 싶더라고요. 이 책을 쓰고 나서는 그동안 부정을 당해오면서 쌓인 서러움을 풀고, 제가 스스로를 용서하게 됐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일단 저는 원인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정체성을 규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를 받아들이는 게 어려워서, ADHD인 것을 확인을 하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요. 자신의 어떤 부분들이 ADHD의 영향을 받았는지 알면 인정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첫 번째는 인정. 인정도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고 계속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내가 여기는 잘 안 되고 있지. 하지만 이만큼 노력했어.’하며 계속 들여다봐주고 느껴주는 게 인정인 것 같고요.
그리고는 자기가 용서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용서요. 저는 용서가 정말 안 되더라고요. ADHD 있는 사람들이 자책을 많이 하잖아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지적을 많이 받다 보니까, 관계 안에서 50대 50으로 일어나는 문제에서도 내가 잘못한 부분에 훨씬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자기 용서가 어떤 걸까, 생각해보면 자기가 자기를 소외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거예요. 내가 나를 이해하고 보듬는 게 어찌 보면 자기에 대한 책임이잖아요. 그걸 방기하고 이상적인 나를 향해서 계속 채찍질을 하는 건 나를 소외시키는 일이에요.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면 용서해 주고 잘해보자고 화해를 해야 되잖아요. 계속 자신을 자기 밑에 두는 자책을 그만두는 게 자기 용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세 번째로는 자기 표현인데요. 주눅이 잘 들고, 자기가 판단하는 게 옳은지 그른지 확신이 없기 때문에 힘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제 느낌 믿고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말해도 될 때도 멈추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이 마음에 쌓여서 자존감을 낮춰요.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고 작은 경험부터 쌓아가야 해요. 내가 순간마다 생각하고 느끼는 게 뭔지를 인지하는 연습을 해서, 당장 말로 안 된다면 잠깐 침묵을 하거나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연습을 해 가는 거죠. 그게 내가 나의 인생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 저를 긍정해주는 방법인 것 같네요.
Q. 작가님께서는 가족에게 ADHD임을 밝히셨잖아요. 밝힌 후에 새롭게 받았던 오해나 관계적인 어려움이 있는지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A. 일단 가족 관계에서의 일을 좀 말씀드리면 처음에는 엄마가 주방에서 저를 한번 쳐다 보시고 ‘너는 그렇게 환자가 되고 싶냐’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제가 ADHD가 있다고 하는 게 핑계를 댄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저는 몇십 년을 열심히 찾아 헤매서, 드디어 답을 얘기한 건데 그렇게 받아들이셔서 상처를 좀 받았었죠.
그런데 어머니께서 제가 인터넷 신문에 연재하는 걸 읽으면서 굉장히 달라졌어요. 첫 화를 읽고 바로 ‘네가 이렇게 힘들었구나’라고 이해하더라고요. ADHD가 어떤 건지 알면 소통과 해결이 되는데 선입견이 많다 보니 거기에서 받는 상처가 처음에는 많았어요. 친구한테 얘기를 했을 때도 ‘왜 한국 사회는 병 아닌 걸 병으로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제가 붙잡고 설득을 하는 상황이었죠. ‘나는 진단을 받고 얘기하는데 왜 내가 이 사람을 설득시켜야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ADHD 주변인을 위한 교육이나 상담 프로그램이 제공이 되면 좋겠어요. 무료면 좋고요. 본인뿐만 아니라 부모나 형제, 배우자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들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어요.(웃음) 그리고 ADHD인이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 만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ADHD니까 뭘 못할 거야’라는 오해를 제가 직접 들은 경험은 없어요. 속으로 어떻게 짐작했는지는모르지만요.(웃음)
Q. “작은 안전감들이 반복되고 사소한 선량함을 꾸준히 마주했던 공간이 편의점이었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물론 안전감은 누구에게나 중요하겠지만 작가님에게는 왜 이렇게까지 중요했을까요?.
A. 그만큼 위험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지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일상이 제게는 다 넘어야 되는 숙제가 되고, 내가 어떤 실수를 해서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지내니까요. 제가 했던 한국어 교육도 변수가 많은 일이었어요.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하는데 그걸 듣는 사람들의 다양한 문화권과 한국어 수준을 고려해야 했죠. 또 제가 계획했던 활동의 결과가 그대로 안 나온다든지, 말실수를 해서 학생들에게 좋지 않은 반응을 얻는다든지 같은 변수들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했어요. ADHD가 있으면 무조건 강사 일이 잘 안 맞는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마다 ADHD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제 경우는 사회 불안, 우울이 더해져서 남들 앞에 서는 일에 취약한 특성이 더 있었던 것 같아요.
제 행동도 통제할 수 없는데 결과까지 통제를 해야 된다는 압박감을 느끼면서 10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변수가 없는 평온함이 절실했어요. 반복성을 느끼기에 편의점처럼 적당한 일이 없었어요.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조금만 마음을 기울여서 소통하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단순한 일을 조금만 잘해도 좋은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편의점 일을 할 수 있었던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Q. 작가 활동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어요. 활동을 계획하시게 된 계기가 따로 있으셨나요?
A. 저는 9살 때부터 꿈이 작가였어요. 작가가 되겠다고 쭉 생각해왔지만 그 확실함에 비해서 실천을 늦게 한 편이죠. 한국어 강의도 그 일에 대한 흥미와 애정도 컸지만 일단 직업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뛰어든 거였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너무 어려움이 많아서 글을 쓸 수가 없었고, ‘이제는 더 못하겠다’ 싶을 때 그만두고 글을 쓰기로 한 거죠. 작가 활동을 계획하게 된 계기가 따로 있지는 않아요.
어떤 글을 쓸 것인지 ADHD가 정해주기는 한 것 같아요. 제가 인터넷 신문의 시민기자로 활동을 하다가 딱 한 줄, ‘ADHD를 가지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도~’ 이런 내용을 썼어요. 그걸 보고 편집 기자님이 ‘ADHD를 가지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연재해보면 좋지 않을까요?’라고 아이디어를 주신 거예요. 그때는 듣고, ‘맞다. 나 이거 엄청 쓰고 싶은 얘기인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연재를 하다 보니까 책이 된 경우예요. 편집 기자님이 기획을 제안해 주신 것이 책을 쓴 계기가 될 수 있겠네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우아한 또라이로 살겠습니다>를 쓰시고 나서 시간이 흐른 만큼 축적된 경험들이 있으실 텐데, 만약 시즌 2를 쓰신다면 추가하거나 조금 더 다듬고 싶은 부분이 있으실까요?
A. 제가 책에 하고 싶은 말을 다 썼거든요. 그래서 분량이 많아진 게 동시에 아쉽기도 해요. 많은 분량이 장벽이 되어서요. ADHD 있는 분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분량을 조정하면 좋겠고요. 그리고 삽화를 넣고 싶어요. 아니면 에피소드를 요약해서 보여줄 수 있는 만화요. 조금 더 읽는 사람을 고려해서 시각적 자극이 많은 책이 되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