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ADHD 노동자입니다>
2022년 11월 출간한 성인ADHD 에세이 <우아한 또라이로 살겠습니다>의 리커버링판이 출간되었습니다.
제목과 부제, 그리고 표지가 바뀌었어요.
이전에 제목을 정할 때 '우아한 또라이로 살겠습니다'와 이번 제목인 '나는 ADHD 노동자입니다'를 두고 편집자님과 고민을 했었거든요.
<우.또.살.>의 제목도 좋아해주신 분이 참 많았지만 제목에 ADHD가 들어가지 않았던 점은 아쉬웠습니다.
이번엔 ADHD의 톡 튀는 이미지를 민트색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는데,
'배민'이 떠오르기도 해서 은근히 '노동'이라는 열쇳말과 맞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뒤표지는 문구 하나하나 직접 고민해서 써봤는데, 책의 색깔이 잘 보이면 좋겠네요.
이 책을 출간하고 어느새 3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오은영 박사님의 활약과 미디어의 영향으로 ADHD는 이제 많이 알려진 병이 되었습니다. ADHD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도 전보다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ADHD를 가졌다고 밝혀도 '그게 뭔데?'나 '무슨,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라는 말을 듣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 신기한 기분마저 듭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ADHD라는 용어에 친숙해지고 진단이 늘어난 만큼, ADHD의 개념 자체가 가볍게 치부되는 경향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 책이 ADHD를 가지고 삶을 통과해온 사람의 복잡다단한 경험과 감정을 가감없이 전하는 도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사이 저도 ADHD 약을 꾸준히 먹으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허둥지둥하는 일 없이 차분해졌고, 부딪치거나 물건을 떨어뜨리는 횟수도 줄었어요. 버스나 지하철을 잘못 타는 일도, 물건이나 시간 감각을 잃어버리는 일도 이제는 많지 않습니다. 상대의 말을 듣다가 멍해지고 내가 말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도 눈에 띄게 나아졌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머릿속의 안개가 걷혔으면 좋겠다'고 염원하던 때를 생각하면, 이건 두 번째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과장 같을 수도 있겠지만 제게는 정말 기적 같은 일입니다. 물론 여전히 단약을 고민하기도 하고(제 경우 ADHD 약을 먹으며 창의력과 폭발적인 단기 생산성은 예전 같지 않아졌다고 느껴요), 다른 지병들에 답을 찾아나가느라 여념이 없기는 하지만요.
책 속의 저를 보면 이제 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책을 쓴 후, 적어도 ADHD에 얽힌 많은 감정들과 복잡한 생각들에서는 많이 자유로워졌어요. 30년 가까이 ADHD 증상들을 겪어오며 몸과 마음에 새겨진, 절대 씻기지 않을 것 같던 감정과 생각들이었습니다. 책에 등장한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지금은 때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주변 사람의 도움이나 이해보다 저의 내면, 저의 노력에 더 무게를 두게 된 것 같습니다.
ADHD라는 산만 넘으면 평야가 나온다고 말하고 싶지만, 삶은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다른 이유로, 다른 모양으로 아팠고, 전보다 더 강렬하게 힘든 시간들도 찾아왔습니다. ADHD의 고통 밑에 묻어두고 살았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새로운 사건사고들도 있었습니다. 제자리처럼 보이는 청각과민증과 복합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지속성 우울장애 속을 통과하면서 '왜 내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치료법이 마땅치 않은 병들만 찾아온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하지만 만일 지금까지도 ADHD라는 병명을 찾지 못하고 치료를 받지 않았다면, 제 삶에 일어나는 다른 문제들을 이겨낼 여력도 가질 수 없었을 거예요. 무척 고통스러우면서도 살아냈던 이전의 시간들이 계속 살아갈 근거와 자부심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읽어가는 과정이 읽는 분들께 ‘내가 내 편이 되어주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살아온 나’가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실감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감히 바라봅니다.
# 책 속에서
떠오르는 장면 하나. 일개 학부생이던 나는 친한 대학원생 선배와 강사 선생님들이 계신 연구실에 찾아가 음식을 나누어 드렸다. 문을 닫기 전 농담이랍시고 선배를 향해 신나게 외쳤다.
“고수레!”
한순간 선배의 얼굴이 험상궂게 달아오르고 그보다 무시무시한 정적이 지나갔다. 등을 지고 있던 한 강사 선생님이 선배 쪽으로 돌아앉으며 말씀하셨다.
“참어.”
더 뜨악한 건 그때 공기가 왜 싸해졌는지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깨달았다는 거다. 당시엔 ‘엥?’ 하며 애매하게 웃고만 있었다. ‘알 만한 애가 왜 저러지?’ 나에게 실망한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청소년기에도 내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콕 집어서 무엇이 힘든지 몰랐다. 스무 살이 되어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확실히 느꼈다. 정말 이상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아무 일도 없이 힘들어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일상적인 상호작용 하나하나가 내게는 버거웠고 숨만 쉬어도 심장이 찔리는 듯했다(그땐 그게 ‘불안’인 것도 몰랐다).
--- pp.19-20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안도감: 이름을 안다는 것의 의미」 중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ADHD 질환 진료 데이터’를 살펴보면, 20~ 30대 젊은 여성의 ADHD 발병률은 최근 10년간 7배 가까이 늘었다. 20~30년 전까지 아동 ADHD의 남녀 비율은 9대 1 정도였다. 세계적으로 전체 성인 인구의 5% 정도가 ADHD를 가졌다는데, 그 많은 ADHD 여아들은 어디 있다가 이제 나타난 걸까? 여러 학자는 ‘사회나 가족의 기대치가 남아와 여아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점’을 하나의 원인으로 꼽는다. 남자아이가 남자다움을 강요받듯, 여자아이는 정신없이 뛰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경우 직간접적으로 더 많은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여자아이는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를 내면화한 아이는 산만하고 충동적인 성향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방법을 찾아낸다. 수업시간에 박차고 일어나는 대신 머릿속으로 온갖 모험을 한다. 눈에 띄게 몸을 흔드는 대신 낙서를 끄적이고 손가락을 꼬물거린다. 하지만 내면에는 좁은 울타리 안을 빙빙 도는 야생마가 있고, 숙제와 준비물을 자주 빠뜨리거나 엉뚱한 말을 하는 등 공동체에서 안정감을 갖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병을 일찍 발견할 기회는 한층 멀어지고 성인기에도 힘든 시간을 보내기 쉽다.
--- pp.47-48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라서: 성 역할이 진단에 미치는 영향」 중에서
ADHD에 대해 알고 나서는 무엇이 증상인지, 무엇이 기질이고 무엇이 순수한 나인지 궁금할 때도 있었다. 증상을 골라내고 남는 게 진짜 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렇게 병의 기전과 증상을 탐구하는 건 내가 가진 생각의 습관과 행동 특성, 세상을 보는 눈만이 아니라 개성이라 생각되는 것들을 이해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됐다. 하지만 ADHD와 나를 정확히 분리해서 보려는 노력은 의미가 없다. 살아오면서 생긴 정체성에서 ADHD를 가진 내 모습만 생선 가시 발라내듯 가려내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증상이 나는 아니지만, 내 장단점 중에는 증상 때문에 고민하고 노력하면서 키워진 것도 많다.
--- p.74 「경험욕과 번아웃의 대환장 파티: 하고 싶음과 할 수 있음의 간극」 중에서
사실 ADHD 증상과 공존질환, 신체적 지병의 한계를 모두 피하자면 이런 일자리가 필요했다. ‘오래 앉지도, 서지도, 걷지도, 무거운 짐을 나르지도 않으면서, 혼자서만 일하고, 적응하기 쉬운 업무면서도 너무 지루해서 도망갈 정도는 아니고, 말을 많이 안 해도 되고, 어울려야 되는 사람들이 없으며, 주변에서 내 실수에 너그럽고, 그럼에도 돈을 주는 곳.’ 저기, 혹시 일하기 많이 싫으세요?
--- p.100 「얻어걸린 ‘궁극의 일자리’: 의지와 가능성을 인정받는 환경」 중에서
“근데 집이 왜 이렇게 어두워요?”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커튼부터 홱 열어젖힌다. 나는 실내에서 불빛이 밝으면 체감상 레이저빔으로 공격받는 것 같다. 밤에도 형광등을 잘 켜지 않고 작은 등을 쓴다. 감각과민 역시 ADHD의 한 증상이다. 모든 사태의 시발점인 우리의 도파민은 불필요한 자극을 걸러내 필요한 데만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기능도 한다. 그래서 도파민이 부족하면 소리, 빛, 냄새, 촉감 등 외부 자극으로 쉽게 주의가 흐트러진다. 한마디로 있어야 할 필터가 없으니 온 세상이 자극 덩어리가 된다.
나는 청각에 제일 민감한데, 총체적 소음 난국인 한 원룸에서 3년간 지내고부터 증상이 심해졌다. 특히 오토바이 배기 소음에 과민해서 심할 때는 외출 자체가 모험이었다. 소리는 마치 살을 찢으며 몸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듯했고, 아무리 들어도 매번 정신이 산산조각나는 느낌이었다.
이게 무슨 ‘내로남불’인지. 보통 나는 소음의 주범이다. 부딪치거나 물건을 떨어뜨려 주변을 자주 놀라게 하는데, 본인은 조용해야 살 수 있다니 좀 행패 같다. 소음은 안 걸러지는데 필요한 얘기는 신경을 곤두세워도 잘 못 듣고, 인생이 지루해 자극을 추구하는데 생활 자극은 힘들다니. 도파민 핑계 그만 대라고? 쩝, 그게, 정말로 역지사지가 안 되는 건 아닌데요….
--- pp.126-127 「제가 좀 가지가지 합니다: 엄살 같은 공존질환」 중에서
병을 인정받지 못하는 ADHD인은 가족 대신 스스로의 지원자가 되어야 하고, 가족에게 병을 이해시키는 교육자 역할까지 맡기 쉽다. 때로는 취업이나 퇴사 문제에서, 때로는 비혼을 택하거나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질병 서사를 꺼내들어야 한다. ADHD와 공존질환의 무게, 이해받지 못한 외로움을 혼자 버티는 동시에 병 자체도 그리고 이 병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도 지속적으로 이해시키는 것까지 당사자의 몫으로 떨어진다.
--- p.161 「엄마 아부지, 저 ADHD예요: 가족에게 병을 이해받는 일」 중에서
웬걸. 언제나 단 한 줄의 불만 사항만 있어도 개선에 골몰하던 나였는데, 그 순간은 이 생각만 들었다. ‘오호라, 다 보였던 거구나! 나 문제 있는 거.’ 그는 정신적 문제가 있다, 그는 정신적 문제가 있다…. 이 문장이 박하처럼 청량했다. … 어차피 비정상으로 보인다니. ‘정상으로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잖아?’ 후들거리며 서 있던 줄 아래로 시원하게 뛰어내린 기분이었다.
--- p.199 「나를 또라이로 지정한 강의평가: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줄타기」 중에서
나는 요즘 모든 사람이 ADHD 스펙트럼 위에 있다고 상상하는데, 맞고 틀리고를 떠나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다. 예를 들어 카페 옆자리에 있는 사람이 마치 영원히 뜯을 것처럼 비닐 포장을 뜯어대거나, 공용 벤치에서 계속 몸을 흔들어 같이 앉아 있는 나를 그네 태울 때면 미칠 것 같다. 그럴 때 ‘저 사람도 충동성이 강하거나 경조증 비슷한 게 있나 보지(나는 전문의에게 경조증 소견도 들은 적이 있다).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겠지’ 하고 상상하면 분노가 싹 사그라든다.
이왕이면 우아한 또라이로 살고 싶다. 소신을 지키고 내 어려움에만 매몰되지 않으면서. 우린 진단명 없이도 적절함의 강박에서 벗어날 자유가 있다. 정상성과 비정상성 사이에 그어놓은 금은 지우고 ‘상식선’을 챙기는 데 집중하는 일. 다같이 ‘으쌰쌰’ 하면 좀 쉬워질 것 같은데, 이것도 말이라 쉬운 것이려나.
--- p.205 「나를 또라이로 지정한 강의평가: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줄타기」 중에서
ADHD 치료제가 증상을 개선할 확률은 80%에 이른다. 그러나 약이 모든 증상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내가 먹는 약은 체내 노르에피네프린의 양을 늘려 주의집중력을 높이고 불안감도 잡아준다. 한편, 도파민 증가에 직접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충동성과 과잉 행동에 대한 효과는 미약하다. 대책 없는 시간 감각이나 당장 끌리는 활동에 정신이 팔려 일의 우선순위를 무시하는 버릇은 그대로 남아 있다.
약이 좀 편하게 걷도록 돕는 신발이라면, 사고방식은 걸음걸이나 자세의 문제다. 좋은 신발을 신어도 걷는 법이 잘못됐다면 몸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자신과 세상을 인지하는 틀인 자동적 사고, 인지 오류, 핵심 신념 등은 따로 바꿔나가야 한다.
--- p.249 「약물치료 도망자의 변명: 요리 재고 조리 재도 알 수 없는 마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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