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0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파이더맨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앤드류다. 내가 만난 첫 스파이더맨이어서 좋았다. 앤드류가 자기가 만든 거미줄과 기깔나는 말빨로 악당의 뺨을 이리저리 후려치는 게 좋았고, 화려하게 뉴욕 거리를 활강하는 게 좋았다. 특히나 길쭉한 팔다리가 유달리 거미다워서 좋았다.
사실 어스파 시리즈는 서사가 충만한 샘스파나 엄청난 자본 냄새가 나는 홈스파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많은 영화라 스파이디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평이 낮은 시리즈다. 그 덕에 셋 중 유일하게 트릴로지를 완성시키지 못한 시리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어스파가 너무 좋아서, 나에게 어스파는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다.
어스파를 볼 때면 "피터한테 왜 그르냐 진짜아아아......"하며 오열하게 된다. 어스파 2의 시계탑 장면에서 그 감정은 절정을 찌른다. 이 감정은 이번에 홈스파 노웨이홈을 보면서도, 노웨이홈을 보고 난 후 다시 찾아 본 샘스파를 보면서도 느낄 수 있다. 영화사 놈들아 니들 피터한테 왜 그르냐 진짜아아......
홈스파 시리즈 3편의 개봉을 앞두고 스파이더맨 시리즈들을 다시 보면서 새로운 것에 눈이 갔다.
샘스파는 1편을 보는 동안 단 한 번도 어스파에서 스파이디가 했던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거미줄을 쏴서 사람을 붙잡는 일을 본 적이 없다. 무조건 자기가 뛰어내려가서 몸으로 사람을 잡아 바닥에 내려놓는다. 반면 어스파에서는 피터가 스파이더맨이 되자마자 어린아이를 거미줄로 구한다. 추락하는 차 안에서 아이를 거미줄로 붙잡아 떨어지지 않게 막았는데 이건 시계탑의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샘스파고, 어스파고, 홈스파고, 다들 머리 좋은 공학도들이니까 추락하는 사람이 어쩌구 반동이 어쩌구 해서 거미줄로 사람을 구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걸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왜 샘스파는 그걸 계속 알고 있고 어스파는 잊어버리고 만 것일까.
생각을 해봤다. 어스파에서는 왜 그랬을지.
경험 때문일 거라고 나름의 답을 내렸다. 1편에서 거미줄로 아이를 구해봤으니 시계탑에서도 분명 구할 수 있을 거라 믿었을 거다. 해봤으니까. 그땐 됐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계탑에서는 몸을 날려 구할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았다. 여러 시계 부품들이 같이 떨어지면서 추락하는 그웬의 모습이 가려졌다. 피터가 그웬을 찾으려면 그 부품들을 다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엔 시간이,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 짧은 시간에 피터가 부품을 헤치면서 낙하했다면 분명 그웬은 바닥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분명 어스파 피터도 안 된다는 걸 알았을 거다. 어린아이를 구했을 땐 아주 짧은 거리에서 거미줄을 쏘아 잡아챈 거지만 그웬은 너무 멀었고 이미 떨어진 시간이 있어 가속도 붙었을 테다. 그런 상황에서 거미줄을 쏘아 그웬을 잡는다면 분명 나쁜 일이 일어날 거란 걸 피터도 알았을 거다.
수만 번을 생각해도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추락하는 그웬이 땅에 닿기 전에 잡을 수 있는 건 피터도 아닌 피터의 거미줄뿐이었다. 거미줄만이, 피터의 손의 형상을 한 그 거미줄만이 그웬에게 가닿을 수 있었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간절했을 것이다. 간절하게 기도했을 것이다. 물론 기도는 통하지 않았지만.
노웨이홈에서 엠제이를 구함으로써 어스파 피터는 과거의 실수를 조금이나마 만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고 해서 과거의 죄책감마저 사라지진 않았다. 피터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피터는 아직도 그웬을 그리워한다.
그리운 마음 또한 감당해야 할 큰 책임이기에,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터는 과거의 실수를 부여잡고 기꺼이 무거운 책임을 견뎌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