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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르 Apr 27. 2020

용기 있는 겁쟁이 #02

_ 열정은 가득하지만 어쩐지 허술했던 나의 독일 입성기



2014년 3월 1일. 나는 브람스와 맥주와 괴테의 나라 독일로 떠났다.

비행기가 움직이자 처음 겪어보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으로 내 마음도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열두 시간 후 나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아, 독일 냄새.  어느 멋쟁이 할머니의 향수 냄새 같기도 하고 건조기에서 꺼내온 뽀송뽀송한 빨래의 냄새 같기도 했다. 처음 맡아보지만 따뜻한 독일의 냄새를 맡으며 나는 이 낯선 땅에 첫 발을 내디뎠다. 


컨베이어 벨트가 나의 노란색 캐리어를 뱉어내길 기다리며 나는 공항의 무료 와이파이를 연결했다. 이미 충분히 조사를 해왔지만 공항에서부터 마인츠 대학까지 찾아가는 법을 한번 더 검색해보고 싶었다. 나는 특히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기차를 타러 가는 길과 티켓을 사는 법을 사진과 함께 자세히 적어놓은 어느 블로그를 크게 의지했었는데,  독일로 떠나기 전 그 글을 얼마나 읽었는지 나는 눈을 감고도 티켓을 사고 기차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네이버의 친절한 글쓴이와 내가 놓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바로 내가 심각한 길치라는 것이다! 


공부한 대로 티켓을 무사히 구입한 나는 마인츠로 향하는 기차 대신 마인츠에서 출발한 기차에 올라탔다. 이 세상의 모든 길치들이 그러하듯 나는 잘못된 방향의 기차를 탔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지 못했다. 마인츠로부터 빠르게 멀어져 가던 나는 한 시간 후, 하지만 여전히 아리송한 상태로 이름 모를 기차역에  내리게 되었다. 점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면 될 거라며 애써 용기를 그러모았다.  30분을 더 기다려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고, 그로부터 또 한 시간 후 나는 겨우 마인츠에 도착했다. 


열두 시간의 비행과 일곱 시간의 시차.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잘못된 기차를 타고나니 나의 몸과 마음은 매우 지친 상태였다.  이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더 가 기숙사에 도착하면 힘들었던 오늘의 여정도 끝이 날 참이었다. 


블로그에 의하면 중앙역에서 대학교로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사진 속 버스 정류장 표지 위에는 큼지막한 H 가 적혀있었다. 나는 이제 H라고 적힌 버스 정류장만 찾으면 되었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현실은 이번에도 친절하지 않았다.  마인츠 중앙역 앞에만 다섯 개가 넘는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모든 정류장 표지 위에 H라고 적혀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정류장 A, 정류장 B, 정류장 C가 있고 어딘가에 정류장 H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H는 독일어로’ Haltestelle’, 즉  ‘정류장’의 약자였던 것이다!


여기저기 보이는 H 사이에서 나는 울고 싶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내가 아는 말로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고 내가 아는 버스를 타고 내가 아는 엄마를 보러 가고 싶었다. 

나를 합격시켜주었던 독일어과 교수님들 앞에서 패기 넘치는 젊은이인 척했지만 사실 나는 용기도 없고 길 하나 못 찾아서 울고 싶어 하는 겁쟁이라고 털어놓고 싶었다. 


중앙역 앞 간이 빵집에서 마감을 하고 퇴근을 하려는 여자에게 다가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마인츠 대학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녀는 친절하게 나를 어느 H로 데려가 주었다. 그곳에서 55번 버스를 타면 된다고 했다. 


시간은 이미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독일의 길거리엔 어둠뿐이었다.  마인츠 유니버시티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나는 황급히 버스에서 내렸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좌절감을 느꼈다. 대학가의 밤이라 함은 거나하게 취한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웃고 떠드는 소리로 가득한 시간이 아니었던가. 적어도 내가 아는 한국의 대학 가는 그러했다. 하지만 나는 허허벌판에 서있었다.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뜨문뜨문 서있는 가로등의 불빛도 흐릿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는 네온사인 간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제발 아무나 만났으면 좋겠다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멀리 보이는 건물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독일의 울퉁불퉁한 돌길 위로 캐리어 끄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주택가인지 대학교 건물인지 알 수 없는 건물 앞에서 나는 무작정 기다렸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가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고 나는 후다닥 그쪽으로 뛰어가 물었다. 여기 인터원이 어디에 있냐고. (내가 찾아가야 할 기숙사 이름이 Inter 1 이였다) 내가 말을 걸자 그 아저씨는 신경질적으로 여기 인터원은 없다고 쏘아붙이고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에야 낯선 곳에 가도 데이터 로밍을 이용해 구글맵을 보면 되겠지만 그 당시엔 해외에 나가서 한국 데이터를 쓰면 엄청난 요금 폭탄이라도 맞는 줄 알았다. 


목이 꽉 막혀 마른침을 삼키기도 힘들었다.  분명 친절한 블로그에서 마인츠 대학교까지 가는데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고 쓰여있었는데. 이제까지 고마워했던 그 사람이  괜히 미워졌다.  3월 초 독일의 밤은 쌀쌀했다. 


노란색 캐리어 옆에 쭈그려 앉아 다시 누군가 나타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이번엔 금발의 젊은 여자가 지나갔다. 익스큐즈미 하며 인터원이 어디에 있냐고 나는 물었다. 나의 질문에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하던 그 여자는 내가 쭈그려 앉아 있는 곳이 그 기숙사의 앞뜰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건물은 인터 원이 아니라 인터 아인스라고 말했다. 


아뿔싸, 기숙사로 Inter1 가 배정되었다는 메일을 받았고 나는 그 이름을 내 맘대로 인터 원이라고 읽은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도이칠란트, 인터 원이 아니라 독일식으로 인터 아인스 (Inter Eins)라고 읽었어야 하는 것이다!  이곳에 인터원은 없다는 쌀쌀맞은 아저씨의 말에 기숙사를 코앞에 두고 한 시간 동안 추위에 떨었다는 사실에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인터원이 아닌, 인터 아인스에 마련된 나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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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6년 뒤, 나는 여전히 독일에 있다. 그때보다 훨씬 많은 독일어를 알아듣게 되었고 그때처럼 길을 잃지도 않는다. 모든 것들이 적당하게 편안해진 요즘, 낯선 세계에 속으로 던져졌던 그 날의 아찔함이 가끔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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