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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Sep 06. 2021

어느 회사원 윤미 씨의 일탈

단문

 윤미 씨는 냉장고에서 식빵 두 조각을 꺼내 버터를 두른 후라이팬에 올렸다.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미 씨는 수시로 빵이 타진 않는지 확인하며 식빵을 구웠다. 고소한 버터 냄새가 주방을 감쌌다.


 윤미 씨는 삼십 분이 넘는 고민 끝에 카트 안에 빵을 집어넣었다. 윤미 씨는 무식한 밥파였다. 인생은 밥심이다. 윤미 씨의 본가 거실 액자에 적혀 있는 문구였다. 흔한 가훈이었지만 윤미 씨의 가족들은 다소 과했다. 아버지는 식빵 한 줄을 먹고도 배가 든든하지 않다며 기어코 밥을 새로 지어 먹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간식으로 과자 대신 동글동글한 주먹밥 한 그릇을 내오는 사람이었다. 그런 집안에서 자란 윤미 씨 또한 마찬가지였다. 윤미 씨는 집에서 식사를 하든 외식을 하든 쌀밥을 사수하기 위해 늘 고군분투했다. 떡볶이를 먹고 나서도 무조건 소스에 밥을 비벼 먹었고 치킨을 먹을 때도 함께 먹을 밥 한 공기를 꼭 퍼왔다. 쌀국수를 먹으러 가서는 볶음밥을 시켰고 파스타 집에 가서는 고심하고 고심하다 리조또를 골랐다. 친구와 분위기 있게 스테이크를 썰러 가서 친구에게 여기는 공기밥 안 주겠지? 따위의 질문을 했다가 경멸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친구 A는 질린다는 듯 말했다. 너만큼 밥에 미친 사람은 없을 거다. 친구 B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놀려댔다. 얜 아마 외국에서는 절대 못 살 거야. 그 말이 묘하게 기분 상했던 윤미 씨는 소심하게 반박했다. 외국에서도 쌀은 팔 걸.


 그런 윤미 씨가 아침에 일어나 갑자기 빵을 굽게 된 건 인생에 변주를 주기 위해서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후 현관 앞에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윤미 씨는 별안간 큰 소리로 외쳤다. 이건 아니야! 매일같이 반복되는 루틴과 매일매일 똑같은 식단. 어제도 그제도 그저께도 같은 반찬을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윤미 씨는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미세해도 좋으니 변화가 필요했다. 냉장고에 음식이 충분히 남아 있는데도 피곤하다고 외치는 몸을 이끌고 마트로 직행한 것도 그 이유였다.


 식빵이 다 구워졌다. 불을 끄고 노릇노릇해진 식빵을 큰 그릇에 옮겨 담은 뒤 윤미 씨는 과일과 식빵에 발라 먹을 사과잼을 꺼냈다. 사과잼 또한 어제 마트에서 식빵과 함께 구매한 것이다. 향긋한 사과 냄새에 어쩐지 들뜨는 기분이 들었다. 또 똑같은 하루를 살겠지만 그래도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윤미 씨는 작은 티스푼으로 잼을 한 숟가락 떠 빵에 꼼꼼히 펴바른 후 한 입 베어먹었다.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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